-형평영화제, 영화 <해야 할 일> 관람후기
11월의 가을이 무르익기 시작하는 저녁,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형평영화제>에 끌려갔다. 늘그막인데도 주말부부로 살면서 일주일 동안 아내를 홀로 버려둔 죄에 대한 속죄 행위라고나 할까. 그날의 영화 감상도 나에게는 또 하나의 <해야 할 일>이었음을 밝힌다.
박홍준 감독의 <해야 할 일>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한양중공업의 인사팀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경기 불황과 수주 감소에 따라 구조 조정이라는 칼바람이 몰아친다. 자재팀에서 인사팀으로 옮겨온 4년차 강준희의 눈을 통해, 가지치기해야 할 인원 150명을 면담으로 희망퇴직을 유도하거나 해고 통지를 해야 하는 인사팀의 갈등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강점은 이제껏 노동 현장을 바라본 관점이 노동자 일변이었다는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전의 노동 영화라 하면 늘 구사대의 쇠몽둥이에 린치를 당하거나 붉은 머리띠를 이마에 두르고 새된 목소리로 투쟁을 외치는, 역동적이면서도 최루탄 가득한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사용자 측의 사람들은 마땅히 맞서 싸워야 할 적으로 간주하였을 뿐, 퇴근 후면 그들도 노동자와 똑같은 남편이자 아내이며, 엄마이자 아버지임을 잊게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용자를 대변하는 듯한 인사팀의 회사원들도 또 다른 노동자임을 잘 보여준다. 누구보다 현장 노동자의 사정을 잘 이해하는 강준희(어머니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로서는 임의적인 해고 기준과 그마저도 주변 이권이나 상황에 따라 무시로 변경되는 부조리한 무자비함에 치를 떨며 아리는 양심을 어쩌지 못한다. 새 삶을 시작해야 하는 예비 신랑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감독은 강준희(심지어는 인사팀장마저도)라는 인물을 통해, 인사팀에 있는 회사원도 엄청난 과부하에 시달리는 정신노동자임을 강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양날의 검인 양 꼭 그 지점에서 약점을 지닐 수밖에 없다. 적어도 <형평영화제>라는 바람벽 위에 걸 영화라면 사회적 불평들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것. 부당하게 대우받는 인권과 불평등한 사회의 그늘 지점을 찾아 카메라를 들이댈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예술은 예술적인 관점으로 본다는 것일 뿐, 우리네 삶의 부조리를 고발하거나 더 나은 삶을 보여주는 것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내 평생을 죽을힘을 다해 일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 초등학교 다니는 늦둥이가 있다’고 외치는 그 중년 사내 같은 현장 노동자가 이 영화를 보았다면 무슨 말을 할까? 사용자나 노동자나 모두 사람이고 고뇌와 갈등은 없을 수 없으나, 서로가 미워질 수밖에 없는 지옥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진정 예술은 누구의 억울함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할까? 누구의 아픔을 더 보듬어야 할까?
우리는 하루에도 열두 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두고 망설인다. 나이가 어릴수록 무람없이 <하고 싶은 일>을 고르겠지만, 나이가 들어 철이 들어갈수록 우리의 문화적 습관은 <해야 할 일> 쪽으로 쏠린다. 그렇다고 광주민주화운동 때에 민중 학살의 손발 노릇을 했던 공수부대원이나 제주 4·3운동 때 서북청년단까지 저들이 먼저 뉘우치며 고해하지 않는 한, 피해자가 앞장서 그들의 만행을 <해야 할 일>이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용서한다고 용서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한없이 가벼우면서도 또한 한없이 무거운 생존적 화두를 우리의 머리맡에 내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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