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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Y의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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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파스 Y Jan 26. 2024

서문

합리적 시선과 도시의 속도

2023년 3월 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파리에 살고 있다. 조금씩 해는 길어지고 기온은 높아지나 날이 자주 흐린 탓에 코 끝을 스치는 바람은 여전히 차다.

살면서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도시, 파리. 저마다의 기억과 추억이 쌓인 이 도시를 누구는 낭만의 도시라 하고 누구는 추억의 도시라 한다. 다른 누군가에겐 미식의 도시요 또 누군가에겐 건축의 도시, 예술의 도시가 된다. 저마다의 파리가 있고 이처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기이한 도시, 그러나 파리는 그 모습을 바꾼 적이 없다. 그 모습? 해마다 추진되는 서울의 도시재생사업이나 재개발로 인해 바뀌는 우리의 도시풍경을 생각해 본다면 파리는 늘 그대로다.

가히 세계인의 제2 고향이라 할만하다. 10여 년 전에 방문한 사람과 어제 방문한 사람이 한 테이블에 앉아 파리를 말할 때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시기 가운데도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도시가 파리다.


먼저 우리가 흔히 말하고 나누는 파리의 모습은 나폴레옹 3세 당시 센 현의 지사였던 조르주 오스만 남작이 바꿔놓은 모습이다. 중세시대부터 이어져 온 좁은 도로에 가로수를 심어 도로를 넓히고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어 도심부를 재개발하고 사회 기반 시설들을 파리 시내에 갖추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의 엑스포를 개최하며 1889년 에펠탑이 건설되었고, 1900년 엑스포 때 파리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재밌는 사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점령되었던 파리는 원래대로라면 잿더미가 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파리는 연합군과 자유 프랑스군에 의해 해방되는데, 당시 히틀러의 명령은 파리를 내어주기 전에 도시에 있는 문화유산을 폭파시키라는 명령을 했었다. 그러나 이 명령을 받은 콜티츠는 '아돌프 히틀러의 배신자가 될지언정, 파리를 불바다로 만들어 인류의 죄인이 될 수 없다'며 명령을 거부하고 연합군에 항복하는 길을 택했다. 당시 히틀러는 9번이나 전화를 걸어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고 물었는데 이 말은 후에 르네 클레망 감독에 의해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항복을 택한 콜티츠 중장은 종전 뒤에 2년 정도 복역했지만 파리를 위한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장과 명예 시민증까지 받았다.



이처럼 비록 어제의 적이었어도 파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똘레헝스(Tolérance)의 도시 파리.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다 왔어도 이 도시는 그걸 묻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는 묻는다. 당신의 파리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나에게 파리는 반전의 도시다.

아름다운 관광의 도시 향수와 패션의 근원지인 파리는 조금만 걸어 다녀도 길거리에 개똥이 넘쳐나며 거리의 화려함과는 달리 사람들의 위생 개념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첫 번째 반전.


열차표도 마찬가지다. 언제 끊어도 늘 같은 가격인 우리나라의 표 값과 달리 한 달 전에 끊는 표값과 하루 전에 끊는 표값의 차이는 꽤 크다. 예를 들어 '파리에서 그르노블행 기차표값은 얼마야?' 물어봤을 때 '언제 갈 건데?'를 되묻게 된다. 그래야 비로소 얼마 정도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절대적인 가격은 아니고 그저 출발일로부터 오늘을 기점으로 말하는 것이다.

교통카드도 충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루권, 일주일권, 한 달권이 있으며 또 각각 파리의 1 존에서 2 존 혹은 3,4,5 존 어디까지 갈지 그 범위를 정해야 한다. 즉 한 달의 인생계획이 뚜렷하면 뚜렷할수록 그에 대한 보상으로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일주일권은 무조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고 수요일에 충전하면 다음 주 수요일까지가 아니라 일요일까지다. 한 달권도 마찬가지 월초에 충전하지 않으면 뒤로 갈수록 손해다. 나 같이 합리적이지 못하여 알맞은 충전 시기를 놓친 사람들에게는 그 혜택은커녕 오히려 돈을 더 낭비하게 된다. 언제나 불변의 정해진 규칙에 익숙한 나 같은 사람은 늘 피해자였으리라 생각한다. 도시의 시스템이 의외로 융통성이 없다. 두 번째 반전.


프랑스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다는 말 '싸데펑' (ça dépend). '그때그때 다르다'는 표현으로 나 또한 프랑스 살며 제일 처음 배운 표현이다.

프랑스에 사는 나 같은 이방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은 비자발급을 위한 심사과정일 것이다. 가뜩이나 심사가 주는 부담이 있는데 거기에 프랑스어로 그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서류를 다 갖추었다 해도 여간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꼭 받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경시청에 가서 심사를 받기 전에 나의 경우의 수를 다른 사람에게 물었을 때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다. 누구는 된다 하고 누구는 안된다 하고 묻는 사람마다 대답이 천차만별이다. 각자 자신의 경우를 말할 뿐 나의 경우는 또 다르다는 것. 그래서 뭘 하든 간절한 마음을 뒤로한 채 언제나 불확실성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 평이한 기준이나 상황에 대한 절대적 불변의 진리가 없다. 세 번째 반전.


근대건축의 시작을 알린 르꼬르뷔제가 내세운 근대건축의 5원칙이 아직도 살아있고 장 누벨과 도미니크 페로, 크리스티앙 포잠박, 렌조 피아노, 시게루 반, 수 후지모토와 같은 거장들의 사무실이 파리에 있으며 현재까지도 그 절대적 철학아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건축을 만들어내고 있다. 철저하게 기능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건축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합리적 건축과 무관한 비합리적인 삶의 모습. 이것이 마지막 반전이다.



우리의 도시는 언제나 합리적으로 발전해 왔다. 도로의 개량, 마을의 확장과 같은 도시의 발전에 있어 도시계획은 잘 짜인 조직처럼 때론 유기체처럼 작용하여 우리의 환경을 개선해 왔다. 매번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순간마다 그에 따른 공간을 바꿔왔으며 촘촘히 채워진 계획들로 도시를 재단했다. 그러나 늘 우리의 도시, 우리의 삶은 계획과 달리 완벽하지 못하다. 왜냐면 그때마다 나타나는 우리의 욕망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 욕망은 더 많은 것을 담고 싶고 더 먼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속도'라는 형태로 드러났고 이 속도에 대한 욕망은 완벽을 추구하는 도시계획에 불완전한 요소가 됨과 동시에 도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속도는 인류의 도시 발전에 가장 근본이 되면서 지금도 우리가 삶 속에서 가장 많이 추구하고 있는 욕망 중 하나다. 한 번뿐인 삶,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 이 속도를 중심으로 오늘날 우리의 도시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간 추구해 온 속도의 형태를 바꾸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코로나다. 상상을 초월하는 전염과 사망률을 내는 이 질병 앞에 모든 인류는 그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질병은 우리가 생각을 훨씬 웃도는 속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늠할 수 없었고 미지의 영역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파리도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으나 이들은 이 두려움에 대한 극복을 속도의 개념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기존의 빠른 속도를 위한 도시에서 느린 속도를 위한 도시로 환경을 바꾸고 있다.

느린 속도, 그러하다. 나는 현재 우리의 도시 공간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도시 공간의 기본이 되는 이 속도의 성격을 바꾸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믿는다. 비합리적이고 덜 이성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느린 속도가 주는 도시 풍경이 비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지만 꾸역꾸역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그릇된 도시민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나는 코로나 이후 우리의 삶에 필요한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된 연구와 프로젝트를 파리에서 건축학교를 다니며 진행했고 이는 자연스레 나의 건축에 대한 지속적 화두가 되었다. 그리고 이 낯선 땅 파리에서 도심 속 녹지공간과 이를 위한 건축을 내가 맡은 프로젝트와 어떻게든 연관 지어 조금이라도 실현하려 노력해 왔다. 그러나 나는 이들에게 여전히 이방인이며 이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부족함을 매번 느낀다. 때론 의심의 눈으로, 때론 부당한 처사로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나의 역할이 있으리라 믿으며 무언가 더 있을 것만 같은 건축을 붙들며 그렇게 버텨왔다.


코로나 이후 파리 시민들의 삶 또한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며 시행하고 있는 많은 도시정책이 있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현장에서 직접 바라보며 이들이 지금의 필요롤 채워줄 도시공간의 사용법을 눈으로 직접 보며 몸으로 누릴 수 있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인터넷 교육신문 '에듀인 뉴스'를 시작으로 '건축공간연구원(AURI)'에 적지 않은 글들을 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빠른 속도를 추구해 온 파리가 기존의 도시의 모습에서 벗어나 느린 속도를 추구하며 그에 따른 도시 공간의 변화와 사용에 관한 방법들에 대해서 만큼은 나는 언제나 진지했다. 삶의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거나 공간의 쓰임이 온당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그릇된 가치관으로 우리의 삶의 터전인 도시와 건축을 그저 개인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들에겐 조금도 관대할 수 없었다. 또한 공간에 대한 선입견과 허울뿐인 말로 사람을 현혹하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때론 대놓고 조롱하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이제 파리에서 산지 6년 차다. 시간적으로 나보다 더 많은 인생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의 이곳에서의 6년은 누구보다 치열했다 할 수 있다. 특히 재능이나 별다른 언어의 소질이 없는 소심한 나로선 그저 건축과 도시만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신앙과 별개로)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수단 또한 건축이었다. 2021년 4월, 프랑스 국가공인 건축사(HMONP)를 취득하였을 때 비로소 나는 유럽에서 정식으로 건축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으며 비로소 사회에서 인정받은 새내기 건축가가 되었다. 그간의 나의 삶과 이를 둘러싼 지금 혹은 그동안의 내 환경; 파리의 건축과 도시를 점검하고 확인해야 나의 건축철학을 더욱더 확고히 할 시간을 가져야 할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앞으로 이곳에 실게 되는 나의 글은 그간 살아온 경험과 나의 생각을 바탕으로 쓴 글들이다. 아직도 인격과 실력이 불안정하고 완성되지 않았으며 생각의 깊이가 얕아 그저 중언부언에 광야의 외치는 소리 정도밖에 될 수 없으니 실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 공모나 국책연구원에 글을 써서 얻은 소기의 성과들이 작게나마 나에게 용기를 준다. 편협한 시선으로 썼으나 이것이 객관성을 잃지 않은 채 그래도 지식 전달이나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을 만한 최소한의 가치가 있음을 검증받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와 같은 콘텐츠가 많아졌음을 유튜브를 통해 보게 되었고 해외 일상 브이로그가 인기임을 확인했다. 이는 더 이상 사람들은 도시를 단시간에 담는 사진 뒷배경이 아닌 짧은 시간이라도 그 안에서의 삶을 영위하고 집중적으로 삶의 터전을 살펴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음을 나타낸다.

인터넷에 적는 글이지만 이를 통해 파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파리에 대해 알게 되는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고 파리를 이미 다녀온 이들에겐 아름다운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소심한 건축가의 틀에 박힌 생각으로 본 파리가 이들의 추억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염려가 먼저 앞선다.

그러나 그 모든 염려와 두려움을 품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는 파리의 모습을 나누고자 한다. 이를 통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바라보고 비교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의 도시공간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유무종

2023년 3월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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