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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Y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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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파스 Y Jul 24. 2024

제3의 공간

공간의 복잡성과 다양성

서울의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경복궁이나 민속촌을 방문한다는 건 꽤나 흥분되는 일이다. 전통가옥의 모양도 모양이거니와 나의 삶의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부분들이 눈에 띄어서 그렇다. 모두가 평지붕에 사는 요즈음 지붕의 재료에 따라 초가집, 기와집, 너와집으로 불리는 이름도 흥미롭고, 필요한 공간이 밀접하게 붙어있는 아파트의 공간구조와 달리 방과 방 사이에 거리를 두는 모양새도 신기했고 건물에 진입하기 전 마당을 거쳐 들어가는 구조도 재밌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한옥은 조리가 끝나는 대로 식사가 가능한 아파트의 구조와 달리 부엌에서 밥을 지어 대청마루나 방으로 옮기려면 여간 불편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손님이 왔을 때 거실에서 현관문을 열러 나가는 거리와 대청에서 대문으로 나가는 거리를 따지니 비교가 안될 정도로 불편해 보였다.

무엇보다 이해가 안 됐던 것은 대지면적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작은 집 크기였다. 민속촌에서 집보다 큰 마당을 가진 전통가옥들을 보며 어린 나이에 진지하게 어머니께 저기에 마당을 두지 말고 전부 벽으로 둘러 방으로 만들면 집이 더 커지고 좋지 않겠냐며 신이 나서 얘기했었지만 대답 대신 이후 나를 왕이 살았다던 경복궁으로 데려가신 어머니의 센스에 무릎을 탁 쳤다. 그러나 여전히 효율을 따진다면 전통가옥은 나에게 그저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과거의 유산에 불과했다.


이토록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전통가옥을 건축을 전공한 이후 건축도시공간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국가 한옥센터에서 진행된 연구를 살펴보며 다시 보니 가끔 말로는 정의할 수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필요이상의 것을 추구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이 ‘멋’이다.

서양 파이프에 비해 필요이상으로 긴 곰방대의 길이, 양복의 소매보다 풍성한 한복의 소매, 중절모의 챙 보다 커다란 갓, 등 모든 크기는 필요한 기능만큼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필요이상의 여유를 두었다. 그리고 이를 ‘멋’이라는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단어로 정의했다.


건축학적 측면에서 기본적인 거주에 필요한 공간을 ‘제1의 공간’, 일을 하고 작업에 필요한 공간을 ‘제2의 공간’이라 한다. 두 공간의 특징은 기능이 사라지면 공간의 목적마저 사라진다는 점이다. 조리시설이 없는 주방, 혹은 데스크가 없는 사무공간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오래전부터 건축가들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제3의 공간’이 있다. 바로 사색을 위한 공간이다. 우리나라 전통가옥에 ‘문방’이라는 방이 있다. 이 방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 지어진 공간이 아니요, 특별한 가구를 들이지도 않는다. 선비들이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고 때론 손님과 함께 술자리를 갖기도 하는 사색과 놀이의 공간이다. 일과 놀이가 동시에 일어나고 낮잠도 자며 그 쓰임에 따라 방의 성격이 바뀌는 곳이다. 신기하게도 반기능적인 공간을 두었지만 그 누구보다 기능적으로 사용했다. 기능을 넘는 반기능적인 공간, ‘문방’이 그곳이다.

 이처럼 공간에 여유를 두어 삶에도 여유를 두는 선조들의 지혜가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진정으로 인생에서 멋을 추구하고 멋을 즐기는 모습이 아니던가…


프랑스의 주거공간에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문방 같은 역할 하는 곳이 있다. 거리마다 보이는 카페(café)와 비스트로(bistro)다. 가볍게 들려 커피나 맥주를 한잔하면서 사람들과 교류를 즐기며 때로는 토론도 하는 공간으로 쓰인다. 공간을 사용하는 이들의 특징은 토론이든 놀이든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본 프랑스 인들은 특별한 목적이 없이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없다. 공간을 쓰는 형태를 보면 이들은 놀이와 일의 구분이 명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명확함이 그들이 사는 공간과 사용하는 물건에 반영되어 비록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단조로움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효율성은 인정하며 지금 이 시대에 굉장히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그 효율성에만 집중하다 보면 삶이 단조로워질 우려가 있다. 그 단조로움을 막기 위해 우리의 삶에는 ‘멋’이 필요하다. 삶에 멋을 들이기 위해 먼저 내가 사는 공간에 멋을 들일 줄 알아야 한다. 특히나 요즘과 같이 속도가 빠르고 바쁜 세상에서 멋(여유)을 두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다.


멋을 두기 위해 지금 당장 우리의 집을 예전의 한옥처럼 바꾸라는 것이 아니다. 한옥은 여전히 나에게 불편하며 손이 많이 가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집임에는 변함없다.

그렇지만 우리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멋’(여유)은 오히려 바쁘고 단조로운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정신이 아닌가. 치열하고 바쁜 내 삶에 남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가.

내가 기거하는 집은 물론이거니와 나의 정신과 마음에 작은 문방과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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