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는 초등학교 저학년때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누나가 어렸을 때, 피아노를 치고 쉴때 가끔 두손을 들고 허공에서 원을 몇번 그리는 듯한 행동을 한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본인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했다.
맨 처음에는, 단순하게 별일 아닌 것으로 생각해서 가족들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누나가 첫발작을 일으키고 나서, 우리 가족은 이 병이 뇌전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누나의 두번째 발작이 일어났다.
내가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시기에 누나랑 같이 공공도서관을 갔다 오는길이었다.
집에서 도보로 약 20분정도 가까운 거리를 이야기하면서 걸어오고 있는데,
내 이야기에 대한 반응이 없어서 옆에 보니까 누나가 없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까, 누나가 정신을 놓고 차도로 부자연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빨리 뛰어가서 누나를 잡고 인도쪽으로 끌어당겼는데, 누나가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당시 만 13살에 나는 누나의 발작하는 모습을 보고 얼어붙었다. 무서웠다.
순간 머리속이 새하얘지면서 내가 뭘해야할지 감도 안잡혔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이라곤 누나 괜찮냐면서 계속 물어보는 것 뿐이었다.
현재랑은 다르게 그 당시에는 중학생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난 엄마한테 전화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근처에 공중전화도 없었기에 더욱 더 초조하고 무섭고 불안했다.
다행히 지나가던 행인들이 도와줘서 한분의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연락할 수 있었고,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벌써 20년 전이지만 나는 그 상황을 전부 다 기억하고 있다.
당시 누나가 쓰러진 길 주변에 있던 가게들 이름도 다 기억날 정도로.
난 그 이후로 누나가 몇번 스트레스 받으면 쓰러지는 모습을 봤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캐나다로 가게 되면서 이후 누나가 자주 쓰러졌다는 소식을 엄마한테 전화로만 듣게 되었다. 근데 그때는 내가 캐나다에서 적응하기 바빠서 그렇게 크게 신경쓰지 못했다.
하지만 누나는 엄청 힘들었던 것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냥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라고만 말할 뿐, 겪어보지도 않은 내가 당시 누나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져서 몸에 멍들고, 밥먹다가 쓰러지고 학교에서 쓰러지는 등 남들은 인생에 한번도 안겪을 법한 일들을 누나는 사춘기에 다 겪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나이에서 견디기 너무 벅찬 상황이었다.
하지만 잘 견뎌내고 대학을 진학했고 교회를 잘 다니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그리고 본인의 병을 알면서도 이해해주는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약 1년정도 잘 만났을 무렵,
남자친구가 누나에게 이별을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