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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치즈 Nov 12. 2024

아름다운 기억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지난날의 추억도 사실 그때 그 시점으로 돌아가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독서실에 틀어박혀 공부하다 매일 새벽 잠시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행복해했던 ‘꿈 많던 고3 시절’의 그리운 그 시간도 사실은 숨 막히는 입시 스트레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열정이 넘치던 첫 직장 생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월 돌아오는 마감일에 쫓겨 밥 먹듯 야근 및 밤샘을 해야 했던, 지금의 ‘워라밸’과는 거리가 먼 3D직종의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지금에 와서 그 모든 날들이 아름답게만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가 들수록 인생을 바라보는 유연함을 자연스레 체득했기 때문 아닐까 한다. 삶의 작은 변화들을 겪을 때마다 알게 되었다. 그 삶의 여러 단면들마다 각기 다른 고유한 색이 있음을. 그리고  이 색들을 통해 나의 고유한 빛이 다채로운 빛을 발할 수 있었음.  


따라서 어떠한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잠시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것으로 무엇을 배우게 되고 어떻게 성장하게 되는 걸까. 그리고 또 어떠한 나만의 색을 발현시킬 수 있을까.

이 같은 마음 가짐은 대부분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같다. 사실 같은 색이더라도 그 마음가짐, 관점에 따라 그 색의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우울하거나 절망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기에. 


고로, 다른 사람들의 삶의 단편에 대해 함부로 잣대를 들이밀려하지 않는 편이다. 내 눈에는 한없이 한량으로 보이는 그 사람도 알고 보면 지난 긴 시간 쉼 없이 달려오다, 비로소 가장 필요했던 마음의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매일 바둥거리며 고생스럽게 사는 것 같은 사람이더라도 막상 그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혹시 아는가. ‘저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나’했던 그 사람이 5년 뒤 누구보다 여유로운 은퇴의 삶을 누리고 있을지도. 그 사람이 되어 그 삶을 살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게 남의 인생 아닐까.


 “피곤하다면서 주말에도 왜 아침 일찍 일어나?”

 몇 년 전, 아침 일찍 일어나 북클럽 준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그러니까 피곤하지’라는 보이지 않는 속내가 담긴 남편의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한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이런 것이라도 안 했으면 내 인생은 아마 심적으로 더 피곤했을 거야.”

피곤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종일 뒹굴거리고 쉬는 게 맞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의아할 수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하루종일 누워있거나 주야장천 유튜브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아니다. (나에게는 너무 피곤한 일).


이 날 이후 남편은 이와 비슷한 질문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가끔씩 조용히 커피를 놓고 가는 센스를 발휘할 때도 있으니 ‘그와 다른 나’를 인정해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와 다름’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50년을 살면서도 성격차이로 이혼하는 사람들을 봐라, 나 또한 여전히 나와 너무 다른 사춘기 딸로 가끔씩 속내를 끓이곤 하지 않는가)


 할 수 있을 때 시도해 보고 최선을 다해보는 것.

최근 내 마음이 가장 강력히 말하는 소리다. 현재의 나에 대해 고민해 보며 이것저것 인생의 여러 갈래길에 궁금증이 많아지는 요즘. 요리조리 여러 문턱을 기웃거려 보며 작게나마 시도를 고려 중이다. 혹자는 ‘그냥 편히 하나만 하고 지내라’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연히 본 애덤 그랜트의 멘트가 격려해 주는 듯하다.


 ‘과거에는 직업도 승진도 능력에만 의존했다. 그러나 미래에는 민첩성이 있어야 한다. ‘배우고자 하는 동기’와 ‘변화에 대한 유연성’이 모든 것을 좌우할 것이다.’

누가 아랴. 호기심 천국을 자랑하며 AI 등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궁금해하고 잡학스럽게 배우고 있는 나의 이 민첩성 덕분에 미래의 각광받는 인재상이 될지 (물론 꿈보다 해몽이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이 순간의 색이 훗날 어떻게 발현될지 굳이 지금 알려고 하지 않으련다.  그것은 먼 훗날 문득 지금의 나를 떠 오린 나를 위해 ‘행복한 과제’로 남겨두기로. 그렇지만 안다. 적어도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될 것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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