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ㅡ그 실체 없음이여 (도바위에 뜬별 2부 7화)
낯선 재회의 그림자
외진 골목을 따라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 휘장이 소리를 내며 펄럭거렸다. 그때마다 올 사람이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시선이 멈추는 그곳에는 먹물보다 진한 낯선 어둠만 있을 뿐이었다.
밤의 골목은 사람 냄새가 사라진 뒤라 더욱 스산했다. 낮에는 수많은 발길이 닿던 천막과 좌판이 이제는 그림자만을 남긴 채 어둠에 잠겨 있었고, 그 빈자리를 차가운 바람이 채우고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 바람이 밀려 들어올 때마다 낡은 비닐 휘장이 파도처럼 일렁였고, 그때마다 골목의 적막은 잠시 깨졌다가 이내 다시 삼켜졌다. 나는 그 반복되는 떨림 속에서 마치 누군가 찾아올 것 같은 허망한 기대를 품었다.
"삼촌아! 좀 쫄아서 짜겠지만, 담치 국물이라도 마셔가면서 무야지.
“무슨 술을 그렇게 쌩으로 마시노… 아이고, 낮에 잠을 좀 못 잤더니만 오늘따라 와이래 눈꺼풀이 무겁노.”
중동댁 아주머니가 혼자 뿐인 손님을 두고 졸기가 미안한지, 한두 마디 혼잣말로 궁시렁거리다가 다시 담요를 무릎쪽으로 끌어안고 풋잠을 청한다. 포장마차 안은 작고 눅눅한 온기에 감싸여 있었지만, 그 온기는 중동댁의 세월의 피로를 지우기엔 역부족ㅇㆍㄴ것으로보였다. 아주머니가 잠결에 내뿜는 쌔끈 쌔끈 한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그 소리는 마치 오래된 진자 시계추처럼 포장마차 빈 공간을 흔들었다.
언제부터 바람이 잦아졌는지 포장의 펄럭임도 그쳐버렸다. 다만 동파 방지를 위해 약하게 틀어놓은 포장 옆 수도꼭지의 규칙적인 똑, 똑, 똑 물소리만 더 크게 들려왔다. 그 맥박 같은 소리가 한밤의 정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인생이 고달플수록 소주가 맛있다는 말도 무색했다. 목젖을 넘어가는 차가운 소주가 목울대를 통해 여전히 쓰디쓴 맛만 되돌려주면서 몸속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그 흐름을 따라 사라지는 감각을 붙잡고 싶었지만, 사라짐만이 남았다.
빈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을 때마다, 파리한 백열전등 광선 하나가 날카로운 예각을 그리며 유성처럼 날아와 투명한 소주잔을 타고 흘러내리다 반짝이며 소멸했다. 그 빛은 잠시 환한 듯하지만, 곧 어둠 속에 삼켜졌다. 마치 내 삶이 남긴 흔적도 저렇게 금세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디서 꼬였을까. 내 인생은…
안주 없이 술잔을 비우는데 줄곧 그 생각이 화두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표류하는 인생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뱃머리도 없는 채, 소용돌이 치는 바다 위를 떠도는 목선 같았다. 때로는 파도에 치이고, 때로는 바람에 휩쓸리며,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내팽개쳐진 인생.
내 어깨 위에 내려앉은 세월은 무거웠다. 기자 생활을 접고, 여행사 사업이 무너지고, 노점으로 들어선 뒤의 세월. 형님이 남긴 그림자는 나를 끝내 자유롭게 하지 않았다. 술잔 속에서조차 형님의 눈빛이 떠올랐다. 죽기 직전의 그 눈빛은 분노가 아닌 연민이었다. 그 연민이 나를 아직도 붙잡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길래, 사람이 오는 줄도 모르고 계시나요? 설마 내 생각은 아니겠지요?”
낯익은 목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순간, 술기운에 헛것이 들린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배영숙 씨였다.
나는 눈을 끔벅이며 정신을 수습했다.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다시 말했다.
“내 추측이 맞았네. 우리 성호씨가 여기 있었네.”
배영숙은 포장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포장을 밀치고 들어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가 자신의 몫이었던 것처럼 당당하게. 그녀는 내 앞에 있던 반쯤 남은 술잔을 집어 들더니, 주저 없이 단숨에 들이켰다.
그녀의 움직임은 빠르고 거침없었다. 그러나 애써 당당한 척하는 그 모습은 오히려 애처로웠다. 내 마음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어머니께서 앞을 내다보신다더니 영숙씨도ㆍㆍㆍ”
나는 뜻밖의 그녀 출현에 놀라기보단 반가움이 앞섰다.
“그이가 성호씨랑 술 마실 때면 늘 중동집에 간다고 했거든요. 혹시나 하고 와봤는데, 역시.”
그녀는 웃다 말고 눈빛을 가라앉혔다.
“근데 오늘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일하다 말고 가버렸대요?도바 마칠 때까지 오지도 않고, 말숙씨가 발을 동동거리며 걱정하던데. 혹시 점심무렵에 잠깐다녀 갔다던 그 젊은 여자 때문? 사람들이 그러던데, 그 분과 같이 다방에 다녀온 뒤 얼굴이 갑자기 잿빛으로 변하더니 장사도 안 하고 사라졌다면서. 성호씨, 혹시 그분이 가족이에요?”
나는 대답 대신 술잔을 들었다. 술이 쓰라린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면서 내안의 불길을 더 키우는것 같았다.
그랬다. 오늘 낮,
그녀가 찾아왔었다.우리가 함께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내가 군 복무와 은행을 거쳐 늦깍이로 신문사에 입사하니 그녀는 이미 내 위의 한참 고참이었다 같은 직장에서 사랑을시작 한 게 잘 못이었을까? 우린 언제부턴가 만날 때마다 삐걱댔다. 내가 사업을 시작 하고 난 뒤 부터는 만날 때마다 서로 얼굴을 붉히며 헤어짐을 반복하다 결국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을 서로 반씩 째어 각자가 간직하기로 했지만 매일보던 이를 볼수 없다는 것은 내 가슴 한 쪽을 뜯어내는것만큼이나 아프고 힘들었다.
삶의 의미도 없었다
추구해야할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 무너져버렸다. 술에 취해야 겨우 잠이 찿아왔다. 그것도 잠시, 신새벽에 눈을 뜨게나 되면 먹먹한 가슴. 그 먹먹함을 지우려 텅빈 벽만 쳐다보며 재떨이에 꽁초가 수북히 쌓일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날들이 계속됐다. 경제적 궁핍이 긴시간 계속되면서 자연히 그녀의 존재는 잊혀져갔다.아니 잊기로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내앞에 나타났었다.
"이런 행색이 도대체 뭐냐구?, 십대 소년도 아니고 멀쩡한 사람이 왜 마음을 못 잡고 아직도 방황하느냐"며 쏘아 붙였다. “이렇게 살아 굳이 인생 망가진 게 네 때문이라고 내게 과시라도 하고 싶으냐?, 차라리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데 가서 노점을 하지, 왜 벌건 대낯에 시내 한복판에서 당신 망가진 걸 소문내느냐. 돈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해줄테니 제발 이 짓은 당장 그만두라"는 말이었다. 다방 한구석에서 그녀는 그렇게 나를 야멸차게 몰아 세우고 떠나갔다
그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울렸다. 그녀의 눈빛 속엔 실망과 연민, 그리고 경멸이 섞여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내 가슴에 비수처럼 남았다.사실 내가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기자를 도중에 그만둔 것은 그녀 때문이었다.
“어쨌든… 중동집인가 사막의 아라비안 나이튼가, 이 집 찾느라 헤맸더니 진짜 목이 마르네. 상념에 잠기는 멋진 포즈는 이따 보여주시고 지금은 후딱 한잔 더 부어 봐요"
나는 묵묵히 소주병을 들어 천천히 그녀 잔으로 기울였다.
술이 흘러 나가는 모습이, 마치 내 속에서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낮의 기억들이 조금씩 흘러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영숙씨는 기다렸다는 듯 잔을 들어 올려 단숨에 털어 넣었다. 술이 그녀의 목을 가볍게 꿀렁이며 넘어가는 순간, 그녀의 목선이 부드럽게 움직였다.그 장면은 내게 강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세상에 닮은 사람이 많기도하는 걸까.
얼굴도, 말투도, 머리 매무새까지도. 성격의 결마저 비슷했다. 하다못해 목젖의 움직임까지 그녀와 닮아 있는것 같았다.
우리가 늘 마주 앉던 중동포차에, 이름만 다른 또 다른 ‘그녀’가 내 옆에 앉아 있는 듯했다.
나는 취기 탓을 하며, 영숙에게서 애써 그 옛 그림자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상봉했으니, 축배라도 들어야죠.
올해 봄도 단속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빌면서.”
영숙씨의 장난기 섞인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잔을 부딪치자 맑은 소리가 밤 공기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 짧은 울림이 쓸쓸한 포차 안에 잠시 따뜻한 숨결처럼 번졌다.
“성호씨, 근데 이 집 포차 이름 참 특이하네. 중동집이라니?”
영숙씨의 흑장미색에 가까운 짙은 루즈 입술이 포차불빛에 젖은 채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아까 전부터 들고 있던 잔을 단숨에 비웠다.술잔을 내려놓는데 그녀의 입술이 내게 묘한 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에 묻은 루즈를 보면서, 내 입술로 그 단정하게 칠해진 고혹적인 입술주변을 흐트려 놓고싶은 충동이 일었다. 술이 취하는 건지. 정신이 취하는 건지. 나는 어지러진 정신을 수습하며 마음을 한곳에 모으며 말했다.
“주인 아저씨가 오래전에 중동에 일하러 갔었데요.그런데 그만 이슬람 급진파에게 납치돼 지금까지 소식이 없어. 아주머니 혼자 이렇게 세월을 버티며 포차를 지키고 있는 거지요.그렇게 20년이 지났는거죠. 사람들은 그때부터 이집을 ‘중동댁’이라 부르기시작했고”
포장 바깥으로부터 갑자기 한 줄기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때마침 휘장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포차의 백열전등을 흔들자, 영숙씨의 눈동자에도 작은 파문이 일었다.
“아유, 참 안됐네….”
그녀는 한동안 백열등 불빛을 무심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다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어깨까지 내려온 긴머리를 습관적으로 어깨뒤로 넘겼다.그리고 빈 잔에 혼자 술을 부어 채웠다. 목덜미가 희다못해 은은한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
나는 잔을 그녀의 잔에 부딪치며 이야기를 풀기시삭했다.
“그래서 이 집은… 말하자면 그리움과 기다림의 한 편의 상징적 서사시가 머물고 있는, 마치 현대판 치술령 같은 곳이지요”
“치술령이라니.그 삼국유사에 나오는 ?”
“맞어요. 신라 때 충신 박제상의 아내가 일본으로 간 남편을 한없이 기다리던 치술령. 결국은 기다림의 상징인 치술령이 이집에선 중동댁이 된 거지요”
더 길게 풀 수도 있었지만, 웬지 힘이 달렸다. 말을 마치자, 입 안 가득 소주의 쓴 맛이 퍼지고 있었다. 아마 지나간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이시대에서는 허무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제 중동댁은 기다림도 잊고 습관처럼 여기 이자리에 망부석이 되어 있는지도 모를일이었다.
영숙씨는 손바닥을 턱에 괴고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기다림의 자리라는 거네. 망부석의 자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이 포차도, 그리고… 나도 영숙씨도 우리 모두 어쩌면 그 망부석 신세인지 모르지요.”
그녀는 잔을 비우고 난 뒤, 목젖이 출렁이는 걸 감추려는 듯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주기가 올라오는탓인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럴까? 아니 나는 망부석은 싫어.차라리 망부석 옆을 잠깐 스쳐가는 바람? 아니면… 불꽃하면 안될까?”
“좋아… 난 이제부터 유성이 될거야.”
그녀가 술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쳐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유성! 별은 영원히 빛나야 하지만 난 그럴 자신은 없어요. 차라리 밤하늘에 순간 스치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별똥별. 그게 딱 내 팔자 같애”
그녀의 말은 농담처럼 들렸으나, 그 속에는 자조와 결심이 섞여 있었다.
“앞으로 이제 나를 유성이라 불러요. 어쩌다 한 번 검푸른 밤하늘을 올려다 볼 때, 아차 하며 찰나에 긴 꼬리로 빗금을 그으며 사라지는 별똥별. 어렸을 때 누군가가 내게 유성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했어요. 하지만… 소원을 빌기엔 그것은 너무나 짧은 순간이었지. 그래 .맞어.성호씨가 나를 유성이라고 부르면 그 때마다 소원이 이루어질지도 모르쟎아. 성호씨 앞으로 내게 잔ㆍ보여야겠네.호호 ”
그녀는 자신이 생각해도 그럴듯한 표현을 찿아낸 만족감때문인지 연신 기분좋게 웃으며 그녀의잔과 내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백열등 불빛 아래 그녀의 웃음은 서글픈 듯, 도발적으로 보였다. 순간, 방금 전까지 어둠에 눌려 있던 무겁든 내 감정이 그녀의 웃음소리를 따라 평상시 상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때, 밬에서 설겆이를 마친 중동댁 아주머니가 포장안으로 들어서며 몸을 떨몆말했다.
“삼촌아, 날도 추운데 무슨 사설이 그리 기노. 우리 고운 처니가 입술이 파랗다. 오늘 꽃샘추위로 새벽에는 부산도 영하까지 내려간단다.오늘 추바서 그런지 손님도 없고, 내사 빨리 마칠란다. 너거가 계속 마시겠다면 내가 안주 만들어 갖다줄테니 고마, 요 앞 태양장으로 자리를 옮기면 안 되겠나? ”
영숙씨가 먼저 대답했다.
“그래요, 아주머니. 좋은생각이예요. 저희가 소주 몇 병 챙겨서 먼저 가 있으면되죠.”
나는 도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주 병을 들었다. 영숙씨는 내 팔짱을 끼며 몸을 바짝 붙였다. 그녀의 체온이 옷을 뚫고 전해져왔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향기 때문인지, 순간 오래 잠들어 있던 내 본능이 몸 깊은 곳에서 깨어나는것같았다.
포장을 나서자, 밤공기가 매섭게 몰아쳤다. 찬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정신을 번쩍 들도록 맑게 해주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그녀의 체취가 내 귓불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