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 피는 봄날에 다시 만납시다

by 술이부작


오래된 나무를 캐내고, 경사가 심한 부분을 완만하게 하는 일로 12월을 보냈다.
나무를 지탱하던 파이프를 분리해서 따로 모으고, 나무를 캐고 동쪽 계곡으로 버리고, 두둑을 깎아내며 평탄작업을 했다. 그 후에 유공관을 묻는 작업을 했다. 기약 없이 시작된 공사는 끝이 나야 끝나는 일로서 막연했지만 연말과 신정에도 일하면서 중간단계의 일은 끝이 났다.
중장비를 동원한 22일간의 작업
소회와 기록을 남긴다.

7시 30분에 모닝커피 한잔으로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일들은 시작되고, 해지는 5시 30분에 일은 끝난다.
적막한 겨울 과수원이 갑자기 중장비의 엔진 굉음이 요란한 공사현장이 되었다.
일제잔재라는 건설용어로 큰소리로 말하지만 엔진소리에 묻히면 손짓, 몸짓으로 작업 지시를 한다.
곰방 치고 데꾸보꾸 있는 곳을 나라시 하고 흙살 좋은 곳과 꼼 꼬무리 한 곳을 파 제치고, 그물바가지가 돌을 거르고, 담뿌가 흙과 돌을 동측으로 옮긴다.
햇살이 비로소 과수원을 비추는 9시 반에 오전 참으로 잠깐 쉬고, 추풍령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3시 반에 오후 참을 먹으면 노루꼬리만 한 겨울해는 지고 기약 없는 일은 내일을 기약한다.




공텐이 트레일러(추레라)에 실려와 서쪽 울타리 경계를 지나 급경사 언덕을 위태하게 올라 본 밭에 당도하자, 나무를 뽑던 공투는 귀여운 장난감 크기로 작아졌다. 공텐은 막강한 힘으로 과수원의 원형을 초토화시키는 그에게 당할 것은 이곳에선 없는 듯했다. 땅은 맹렬하게 얼기 직전이어서 굴토와 성토는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동쪽의 울타리를 해체하여 낮은 곳을 2미터 이상 올리는 동안 울타리 없는 과수원은 야생동물에게 접근을 허락했지만 고라니와 멧돼지가 들어온 흔적은 모호했다. 밤이면 개 짖는 소리로 야생동물의 접근과 존재를 유추했고, 울타리가 재차 설치되자 생활영역이 안정된다고 느꼈다.




이따금 서산너머로 해 질 녘에는 건너편 언덕에 드리위진 두 사람의 그림자를 감상하며 황혼 같은 기분을 느끼며, 주문받은 사과 택배를 하고는 저녁을 먹으러 김천 시내로 간다.
시내에서 이런저런 메뉴로 저녁을 먹고, 장을 보고, 참 준비를 하고, 아내와 커피 한잔으로 여유를 갖고 농장에 오면 방의 온기가 따뜻했고, 얼어버린 몸을 녹일 수 있었다. 작은 포만감을 느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12시에 자고 일찍 일어났다.







낮에도 영하의 강추위가 며칠 계속되자 드디어 땅이 얼기 시작했고, 땅은 강철 같은 단단한 물성으로 변했다. 특히 15톤 덤프가 다녀서 다져진 길은 굴착이 되지 않아 공투 브레이커(뿌레카)로 깨고 공육의 이빨로 긁어야 했다. 땅은 이제 흙이나 돌이 아닌 깨지지 않는 단단한 덩어리로서 공사를 지체하는 요인이 되었다. 덤프가 다닌 길, 30톤의 공텐이 다져진 길의 일부에 유공관을 묻기 위해 파헤치는 일은 난망하고 바보 같은 행동처럼 보였다.





땅은 변화가 적은 무생물이 아니라 날씨에 따라 변온동물에 가까운 양태를 보이며 표리가 서로 작당해서 얼어버렸다.
땅을 깎고, 채우고, 땅과 함께 살아온 중장비의 사내들은 땅을 제어하지 못하고 땅이 녹아야 땅을 손댈 수 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유공관을 얼어버린 흙덩어리로 얼기설기 덮어서 일단의 겨울 공사를 끝냈다.
땅이 녹으면 얼마나 가라앉을지 예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공간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혹한기 공사는 하늘의 내락이 있어야 한다는 걸 여실하게 경험했다.





거칠게 형상을 바꾸는 공텐, 네 바퀴로 야생마처럼 내 달리는 공육, 인간의 손을 대신한 듯한 공투가 20년의 밀식과원을 고밀식 오차드로 변신하는 정지작업을 대강 끝냈다. 돌을 골라내고 철제 파이프를 세우고, 나무를 심기 위한 여러 일들은 땅이 녹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
나무가 사라진 과수원은 겨울의 칼바람을 그대로 통과시키며 황량하다.
그들과 함께 한 22일...중장비와 함께 평생을 지낸 건장한 사내들의 넋두리는 개발시대를 관통한 아쉬운 여운이기도 하다.

"이 양반이나 나나 머리에 든 게 없어서 버는 족족 다 쓰고 , 지금은 없어,
이 바닥에서 인생은 허망해...
96년도에 15톤 덤프가 4800만 원, 지금은 1억 4천 정도,
장비 6대 굴리며 돈 많이 벌고, 떼이고, 기사도 해 먹고,
15톤도 앞사바리 나오는 바람에 다 죽었어."
우리 세대가 대개 그랬다. 좋았던 시절은 IMF로 끝나고, 호시절은 돌아보니 짧았다고 한다. 이제는 늙었고 힘없다.

주저함과 과단성 사이에서 며칠을 고민하다 밀어 부친 일이 극강의 한파라는 암초에 부딪혀 잠시의 휴지기가 필요했다. 그래요, 조금 쉬었다가 아지랑이 피는 봄날에 다시 만납시다~~~

이 유예가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나는 일단 쉬었다. 이 미완이 어떤 양태로 전개될지를 한 치 앞도 예측하지 못한 채.

소회는 이어진다.





이곳은 이런 과정을 거쳐 올해 20년의 밀식과원에서 초밀식 오차드로 기계화가 용이한 조건으로 변신한다.
나무가 없어지고 평탄화된 땅은 겨울 햇빛이 튕겨 눈이 부시고 그늘은 짙다. 그전에 안 보이던 물탱크와 건너편 할머니 집도 가까이에 보인다.






그 옛날에 도자기터가 있었고, 일제강점기에 뽕나무밭이었다가 목초지로 있다가 사과나무가 심어 유명한 사과재배의 적지로 이름을 알리며 짧은 영화를 누린 이곳, 도자기 파편들은 이조시대인지, 고려 시대인지를, 알 수 없는 고단했던 도공의 모습과 노예처럼 일했던 과수원 일꾼들의 삶을 상상하게 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꾼은 이곳에서 취화선 같은 영화를 떠 올렸을지도 모르지.
이태전에 "청자이야기"라는 도공의 사랑과 예술혼이 SBS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풍문이 있었다.






두둑 위에서 비스듬하게 기운 나무는 태풍이 올 때에도 견디어 살아남았는데 과원주의 갱신 계획으로 무참하게 생명을 끝냈다. 그 자리에서 영원할 것 같았던 돌과 흙과 잡초들도 어지럽게 교란당하고,
일 년에 1/3씩 붕괴되어 3년에 전체가 파손된 폐가의 잔재들도 처리되어 눈앞에 없어졌다.
감성적인 생각으로 갤러리로 리모델링하려 했던 흙벽돌집의 멸실도 아쉬움을 짙게 남긴다.
5년간 나와 함께 한 것들을 위한 별리의 세리머니가 약식으로 있었고, 그들과의 송가는 진행 중이며, 이 소회 또한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눈에 익숙한 것들이 사라진 풍경들은 잠시만 생경하고 이내 익숙한 정경이 될 것이다. 존재했던 과거는 이내 아득할 것이다.
이곳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이곳에 잠시 정거했다 지나는 과객으로 나 또한 미소한 존재로서 무슨 이유와 인연으로 이들을 재단하고 교란하고 바꾸는 일에 개입되어, 새 나무를 심는다고 요란을 떠는지?
지나고 보면 중장비 기사들의 덧없는 넋두리처럼 찰나에 지나간 씁쓸하고 아쉬움 남는 과거지사에 욕심을 가지고 다투며, 집착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나 편하게, 편하게 농사하려고
요란 떨었다고?
글쎄, 글쎄 올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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