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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빛 아침별 Dec 23. 2021

아무 생각하지 말고 일어나

마음과 생각의 크기를 줄이기 위한 실행력

 아이들에게 늘 미안했던 엄마

첫째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을 한지 얼마 안 되었을  근무 중에 타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아침부터 비가 처음으로 어린이집에서 생일 행사를 하는 날이었다. 다친 아이가 왔는데 내 아이인 거 같다며 성형외과로 오라는 전화였다. 엄마가 연락이 안 되니 원에서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전화를 받을 새도 없이 바빴다. 급히 내려가 보니 샤랄라 분홍 드레스를 입은 아이가 새빨개진 얼굴로 코 주변으로 큰 혹이 불거져서 담임선생님한테 안겨 울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고는 달려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생일행사를 하고 아이들이 케이크를 먹으려고 둘러앉아 촛불을 끄라고 했는데  맘에 내키지 않았던지 저항하다가 책상에 얼굴을 크게 부딪쳤다고 한다. 다행히 골절이나 큰 문제는 없어서 아이를 달래서 다시 어린이집에 맡기는데 또 목청 터지게 우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침부터 드레스도 입히고 챙기며 출근을 서두르느냐 유모차 안전띠도 안 걸고 내리막길을 막 내려갔던 걸 아이를 원에 내려놓으면서 알게 되었던 정신없던 날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아차 하는 순간 욕실에서 쓱 미끄러졌는데 머리는 안 다쳤다거나 의자에서 떨어졌는데 엉덩이로 떨어졌는 등 '하느님이 보우하사'가 새겨지는 그런 순간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날도 아마 그런 날이었다. 눈가 가까이 얼굴에 큰 혹이 생기고 멍이 든 두 돌 생일 사진을 볼 때면 선생님께 안겨있다가 엄마를 발견하고 달려들던 그때생각이 참 많이 난다. 


두 아이를 출산하고 산전 후 휴가와 육아휴직 기간 15개월을 지나 아장아장 한참 걸어 다니며 예쁜 짓을 할 쯤에 복직을 했다. 첫째는 두 돌이 채 못돼서부터  직장 옆 큰 어린이집에 맡길 때까지 8개월 정도 외갓집에서 자라기도 했었는데 10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맡겼던 둘째보다도 더 애가 탔었다. 그래서인지 둘째의 육아휴직은 둘째를 돌보는 목적보다는 그동안 일한다며 함께 잠들지 못하고 떨어져서 키웠던 첫째에 대한 보상적 의미가 컸다. 그때나 지금이나 핵심을 헛 집으며 부산했던 늘  미안하고 마음만 앞서는 서툰 엄마였다. 멀티태스킹이 유난히 되는 사람이었고 남매를 다섯 살 터울로 키우며 쩔쩔매는 내게 어르신들이 연년생 안 키우기를 정말 다행이시며 안쓰러워하시기도 했었는데 본래 그럴싸하게  한 번에 두 가지 몫을 해내는 척하며 둘러대는  서툴기도 한 사람이었기에.... 


직장- 집- 직장- 집을  돌고 도는 쳇바퀴 같은 생활과 24시간 365일 연중무휴 무직 봉사 엄마 역할이 억울하다거나 지겹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저 삶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생각했고  경제력을 탑재한 엄마가 되기 위해 주어진 애쓸 수 있는 모든 것이 감사했다. 그래서 힘은 들어도 큰 거부감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저 함께하는 것이 좋아서 아침이면 출근하며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하고 데리고 와서 씻기고 저녁 먹고 책 읽고 놀다 자고 다시 일어나 같이 출퇴근을 반복하는 일상이었지만 다시 아이와 만나 함께 할 시간을 기다리며 기대하며 살았던 것 같다. 아이가  삶의 전부인 것은 아니었는데 엄마가 된 이유로 나의 시간은 그렇게 미뤄둔 상태였다.


'아이들 키우며 일하기 너무 힘들어요'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우스갯소리로  그런 답변주셨다. "애들을 자네가 키우기는 하는가?" 띵~ 맞네 맞네~ 조카 정도 나이인 아랫 동료에게 해주시는 뼈 때리는 농담 같은 거였다. '직장맘 힘들지. 애쓰고 있고 잘하고 있다.'는 위로의 말로 받아들였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 되뇌게 되었던 대화였다.

일도 잘하고 싶고
아이들도 잘 키워내고 싶고 욕심일까?
그래서 힘이 든다는 자기 합리화에 대한
 위로가 필요했던 것이었을까?'

그때부터 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선택한 삶에 대한 생각이 자꾸 흐려지고 마땅치 않으며 기분이 언짢은 아침이 쌓이기 시작했다.  일찍 눈은 뜨여도 이불속을 나오기 싫어서 헤매며 불안감을 갖고 시작하는 그런 아침이 유의미하게 흐르고 있었다. 잘해왔던 건 모른척하며 안 한 것 못한 것에 집착하며 부끄러운 자책과 질투,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따라다녔다. 엄마로도 직장인으로도 한없이 작아지고 허울뿐인 다른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멀쩡하게 잘 사는 거 같았다. 두려움과 불안감을 떨쳐내긍정적인 아침을 맞는 것이 시급해졌다.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는 행복한 아침을 꿈꾸다

아이유의 "일어나 일어나야지..." 하는 모닝콜 음성이 나오는 릴스 영상을 즐겨 넘기며 본 적이 있다. 졸고 있는 아이 모습과 아이유의 음성이 어울려 재미있고 귀여워서 크게 웃긴 했지만 워낙에 잔소리와 채찍질이 없으면 한없이 늘어지는 나를 다그치는 소리로 들려 뜨끔 하기도 했다.  아침잠이 많아서  출근을 하지 않으면 제일 좋을 거라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늦잠이었다. 아이들이 등교도 안 하니 늘어지려면 한이 없었겠만 그러기에는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는 것도 많아서 하루가 무척 짧았다. 허둥지둥하는 건 계속 마찬가지고 미루기 일쑤였다. 경제적 생산성 또한 없으니 상상만 가득했던 출근하지 않는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싶었다.


이거 이거 시간이 왜 이리 빨라
  미루면 곤란한데 대체 엉망진창 파티
으허 내일 해야겠다

 외출이 어렵기도 했고 아이들이 모두 집에 있으니 삼시 세 끼를 챙기고 집을 돌보다 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갔고 집이 전쟁터가 되었다. 무엇보다 행복한 아침을 맞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마음을 못 정하고 기분이 무식한 태도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 막연한 짱구를 움직일 수 있을까? 운동을 해봐? 미친 듯이 책을 읽어볼까? 치료적 중재라도 받아야 하나? 미라클 모닝? 운동하는 건강한 몸 선이 희망사항이기도 했는데 단지 내 요가는 작심 한 달쯤으로 늘 지속하지 못했는데 해볼까? 우선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을 거 같아서 마음먹고 시작한 운동이  줌으로 하는 비대면 요가!! 코로나로 외부로 나가기가 어렵기도 했고 운동치에 몸치지만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하는 요가였기에 마음까지 챙겨보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그렇게 아침을 시작해보았다.


 물론 기적처럼 그렇게 행복한 아침이 바짝 쫓아와주지는 않았다. 삶의 기저에 깔려있던 불안과 공포로 아침을 흘려보내지 않고 활용하고 싶다는 의지는 가득했지만  오랜 시간을  출근하는 엄마로 살았던 얼룩진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았다. 조급해한다고  의지대로 바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때에 김유진 변호사님의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에서 공감하며 읽게 된 글이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를 더 하기 위해
4시 30분에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 새벽은 극단으로 치닫는 시간이 아니라
잠시 충전하는 휴식 시간이다.

 또 일방통행으로 달리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려는 나를 발견했고 더하기가 당연한 삶의 공식처럼 익숙해져 있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고 눈이 뜨기 싫어서 이불속을 뒤척이고 헤매게 되는 아침을 가볍게 시작하기 위해 매일매일 선물을 주기로 했다.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새날을 시작하듯 그렇게 그냥 아무 생각 말고 일어나는 것이었다. 너 또 그러면 문제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괜찮아!!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 냥. 일. 단  일. 어. 나
온 우주가 너를 도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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