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촉짜리 알 전구
우리 집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초등학교 다니던 때였다. 긴 줄이 처마 밑을 돌아 문틈 사이를 거쳐 벽 한쪽에 자리 잡은 후 소켓을 끼우고 5촉짜리 노란 전구 알이 달렸다. 불을 켜고 끄는 것은 작은 똑딱이였다. 5촉짜리는 책을 펼치고 전구를 감싸야 글씨가 보일 정도로 약했지만, 호롱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잠이 별로 없던 나는 식구들이 잠든 방에서 탁구공만 한 5촉짜리 전구를 책갈피로 가리고 서서 책을 읽었다. 그래 봐야 동네를 한 바퀴 돌다 고모 차례까지 와서 고모가 읽다 둔 소설을 살며시 가져와서 읽거나, 새로 받은 교과서를 국어부터 도덕까지 다 읽어 나가는 정도였다.
석유 한 방울을 아꼈듯이 한 가닥 전기도 아끼려니 5촉짜리 전구 사용을 오래 했던 것 같다. 그때의 전구 유리는 워낙 얇았다고 기억되는데 잘못 건드리거나 오래 사용하다 보면 전구 안의 필라멘트가 톡 떨어져 쓸 수 없게 되거나, 드물긴 하지만 과열되어 유리가 깨지는 일도 있었다.
이젠 마당 한쪽을 밝힐 만한 조금 큰 전구도 하나 걸렸다. 이건 순전히 업무용이었다. 전구가 마당을 밝히게 되면서 어두워지면 손을 놓아야 했던 일이 늦게까지 이어졌다. 깨를 털고 콩을 고르는 일이 30촉 또는 60촉 전구 알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농촌 연장근로가 가능해진 셈이라 할까.
최근 지인에게 물레방아 발전기 이야기를 들었는데 농촌 마을 몇 집이 동네 물레방아를 돌려 전기를 썼다고 했다. 텔레비전도 거의 없던 시대니, 방에 작은 전구를 밝히는 정도에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이 자가발전기 마을의 밤은 수시로 깜빡거리며 꺼졌다 켜졌다 했다. 골짜기 도랑을 타고 내려오는 작은 물줄기에 의지해 물레를 돌리다 보니 물레방아가 숨이 차 전구가 나갔다 들어왔다 하며 허덕이는 탓이다. 장마철 물이 콸콸 흐르면 물레가 신나게 일을 하지만 가뭄에는 목이 마르니 동네가 다시 어두워졌을 게다. 전기가 들어온 후 언젠가부터 반딧불이가 사라졌다는 기억도 들려주었다. 아이들과 술래잡기하며 놀듯이 반짝반짝 날아다니던 그 많은 반딧불은 이제 희귀한 관광상품이 되어있으니 세상 많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