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이렇게 여러 작가들이 에세이를 단편작으로 엮어 만든 책을 제법 많이 읽게 되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한 권의 책으로 각기 다른 작가들의 생각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은 횡재일 거라는 생각이 크다
예전과 다르게 책 읽는 속도가 나이와 반대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한 권의 책을 완독 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나이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내 생활이 1인일 때와는 다른 패턴이기에 나 자신 말고도 신경써야 하고 할 일들이 많아서
책만 붙들고 있을 시간이 많이 줄어들어서 일 거다.
꽤 시간이 흘러서야 책을 완독 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규림, 송은정, 봉현, 이 지수, 김희경, 김키미, 신지혜, 문희정. 김진아
10명의 작가만큼 10가지 색이 담겨 있는 책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내용을 알아보지 않고 덥석 구매했던 책이라 미리 알아보지 않고 첫 장을 넘기면서 알아지는 책의 묘미를 느꼈다.
책은 집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도 살고 있고 내 옆집도 살고 있고 내가 아는 사람들도 살고 있는 "집
나다운 물건과 일상이 쌓여 나다운 집이 되고 김규림
10명의 작가들에게 집의 의미는 모두 다르면서 또 같았다. 누구나 해가지면 들어가고, 빛이 떠오르면 나오는
어쩌면 매일매일이지만 곁에 있는지 잘 모르는 익숙한 공간에서 그들이 다시 집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다
공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그들만의 의미를 읽고 있으니 내가 꼭 작가들의 집에서 함께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동향인 우리 집은 오직 이 시간에만 햇빛이 거실 벽에 사선으로 내리 꽂힌다. 창문을 통과한 그 빛이 긴 마름모꼴로 휘어져 벽지에 맺히는 것을 잠시 구경하다 책을 펼쳤다
이지수-대체로 무기력하지만 간혹 즐겁게-
어쩌면 어느 집이든 들어올 햇빛은 그 시간이 길 수도 짧을 수도 또 거실까지 들어올 수도 베란다까지만 들어올 수도 모두 다른 빛인데 매일 같이 생활하는 집인데도 내 집에 들어오는 빛조차 감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나 역시 매일 생활하는 내 집에 빛이 어디까지 들어오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걸 그냥 익숙해져서라고 둘러대기도 하지만 사실 익숙해서가 아니라 그냥 무심해서가 아닐까? 집과 함께 작가들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나왔던 단어
책상
작가들의 책상에도 모두 다른 의미들이 부여되고 있었다. 책을 배치하는 공간, 책상의 색과 질감, 그리고 책상에서 하는 행위도 모두 각기 다른 모습에서 책상이니 당연히 앉아서 책을 보고 글을 쓰고 때론 영상을 보기도 간식을 먹기도 하겠지라는 것과는 좀 다른 차원이었다. 책상을 마주 보기까지의 과정과 책상에서의 자신들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것이었고, 작가들의 다짐 역시 모두 달랐다.
나 역시 작지만 가족들과 사는 집에서 유일무이 작은 책상 하나가 온전히 나를 만들어 주고 있다. 주부니깐 엄마니깐 가족들이 식사하는 식탁에서 아니면 아이들 책상에서 이리저리 옮겨가며 생각을 정리하고 끄적이는 게 아니라 이곳만큼은 다른 누구의 타이틀을 벗어놓고 내 이야기를 내 글을 쓸 수 있다. 나 역시 이 작은 책상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
작업방 한편에는 낮은 좌식 책상과 1인용 좌식 소파가 놓여있다 눈을 반쯤 겨우 뜬 채로 커피 원두와 드리퍼를 챙겨 그곳에 앉는다 ... 중략.... 똑같은 작업방에 있지만 큰 책상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글은 작은 책상에서 쓰기로 정해두었더니 각자의 자리에서 정확하게 그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현-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드라마-
사실 지난날의 책상들에 대해선 기억이 흐릿하다 고만고만한 제품 사양을 공유하는 무늬목 책상 등 이하나의 이미지로 뭉뚱그려 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상에서 보낸 무수한 낮과 밤에 관해서라면 어렴풋이나 마 떠올릴 수 있다 송은정 -어엿한 책상 생활자-
집이란 곳이 우리가 알고 만 있는 가족들과 혹은 혼자여도 먹고 자고 쉬는 공간을 넘어서 내 생각과 내 시간이 모두 물든다고 생각해 보고 싶다. 짧으면 며칠 길면 수십 년까지 "집"이라는 공간에 내가 모르는 나의 흔적을 새겨 넣는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그냥 집이 아니라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에 반강제적으로 많아졌다. 대적할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집 생활자 노릇은 벌써 2년이 되어가고 사람들은 처음엔 힘들어하고 답답해하고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함에서 하나씩 자신만의 방법을 찾으며 안정을 찾으려 한다. 왜 꼭 밖으로 나가야만 삶이라고 이야기했을까? 그렇다고 세상과 단절하며 살자는 건 아니지만 밖에서의 생활만큼 "집"에서의 생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몇 가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인즉슨 마음을 안 먹으니깐 못하는 거라 느껴져서 난 이 말을 싫어한다. 마음먹는 게 그리 쉽다면 이 세상 사람들 그 누가 실패를 하며 그 누가 힘들어할까? 아마 모두 행복하고 모두 즐거운 삶만 살아가고 있을 텐데 말이다.
근데. 이곳에서는 한번 써보고 싶다. 집에서의 생활이 힘들고 지루하고 지겹고 답답하기만 한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건 마음먹기에 달려 있어요
내가 서 있는 공간에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평소에 보이 않던 햇빛도, 가구의 위치도, 창문이 늘 오른쪽으로 열려 있었는지도 신발장 문짝이 짝짝이인 것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눈길 주지 않았던 공간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은 특별한 의식처럼 말이다
그 의식을 한번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기를 권해본다
이제 알았다. 집은 가장 온전한 쉼의 공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끌어안아주는 친구다. ... 중략... 내가 만든 공간. 나를 만든 공간, 집 안 구석구석에는 내 모든 성격과 취향과 가치관이 묻어 있다 어딘지 조금 엉성하고 부족하지만 정다운 집이 바로 나의 집이다 이제 편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나다운 집은 나 닮은 집이라는 걸 김키미 -게으름의 상대성 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