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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온기 Nov 11. 2021

지구를 사랑하십니까?

멜로일까? 로맨스일까?






투박 경상도 사투리로

"지구를 사랑하십니까?" 라며 내 재사용 시리얼 지퍼백을 쳐다보았다.


나의 대답은 "네!"


나의 첫 결혼식에서 주례사 선생님의

"남편으로 맞이하여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중략......... 사랑하며 살겠습니까?"라는 질문에도

이렇게 씩씩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았는데

지구를 사랑하냐고 질문한 사람도 없었지만  처음 받은 질문에 이렇게 단단하게 대답하는

나 자신에게 살짝 놀라웠다




장바구니, 푸드 컨테이너, 광목 주머니, 텀블러, 유리 빨대, 시리얼이나 마스크 담았던 재사용 지퍼백 그리고  하나 더 추가된 신문지로 만든 종이봉투 내 가방 혹은 내 차에는 아주 커다란 장바구니가 트렁크를 차지하고 있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하나씩 하나씩 사서 모으는 것처럼 내 차속 장바구니는 그렇게 하나씩 채워져 갔다. 어디를 가도 갑작스럽게 물건을 사게 되더라도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내 집으로 들이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다.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닐 만큼의 거리가 아닌 터라 탄소배출을 하고 있지만 그 대신 다른 어떤 것에서라도 난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빵을 신나게 푸드 컨테이너에 담아서 집으로 가는 길 문득 마트 앞에 다다르자 매대에 나온 싱싱한 오징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저녁으로 오징어 숙회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차를 세우고 뒷좌석에 있는 에코백에서 어떤 게 가장 오징어를 담기 좋을지 고민하며 뒤적뒤적이다 대용량 시리얼 지퍼백을 들어 대략적인 사이즈를 가늠한 뒤 사장님 앞에 섰다

아무도 내가 시리얼 지퍼백에  생물 오징어를 담을 거라고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심지어 계산대에서 씨리얼로 계산하시려는 아주머니에 설명까지 했다

 오징어 가격 확인 후  세 마리를 사장님께 달라고 하니  아니 이미 오징어 가격을 물어봤을 때 사장님은 비닐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고 비닐 없어도 된다고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시리얼 재사용 지퍼백에 담아 갈 거라고 하니 한 손에  오징어를 잡으려고 비닐을 넣고 있던 사장님께서 나를 쳐다보시며




지구를 사랑하십니까?



라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 엄청 사랑하고 있어요





마트에서 볼 수 없는 귀한 대화의 한 장면이었다. 지구를 사랑하냐고 물어보는 사장님 또 대답하는 나

이건 로맨스도 아니고 멜로도 아니고 무슨 장르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사장님의 아내가 지구를 사랑하고 있단다. 그래서 집에서 비닐도 안 쓰고 빨대도 안 쓰고  그러면서  살건 다 산다고 은근 아내분을 디스 하시는데   잠시 같이 웃었다. 그렇게 오징어는 나의 재사용 지퍼백에 담겼고 오징어를 잡기 위해 쓴 비닐은 다시 재사용하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해주었다.






사실 지구를 사랑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에겐 지구가 너무 큰 생명체고 내 생각에 다 담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로 웨이스트 생활을 시작한 것도 나와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고 지금도 그 이유는 변함이 없다.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지구를 위한 삶이라고 이야기하면 난 꼭 정치인들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다

나의 생활습관 중 80% 이상이 가족을 위한 것이다. 무해한 비누를 사용하는 것도, 플라스틱 수세미 대신 천연 수세미를 사용하는 것도

지퍼백 재사용과, 푸드 컨테이너를 이용하는 것도 최종의 목적은 나의 가족들이다 그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몸속에 쌓이는 바디 버든을 주고 싶지 않고, 일주일이면 신용카드 한 장 사이즈의 플라스틱을 먹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조금이라도 내 가족들에겐 덜 먹이고 싶고 세제가 흘러들어 간 물은 바다로 가 그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먹는 우리 역시 함께 먹는 것이고 이 모 든 것들이 내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었다. 근데 내 가족만 지키는 게 아니라 지구도 지키게 되는 것이다.



얼마전 SNS 채널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세 번째 질문에 난 이렇게 대답했다



Q3. 아직 기후 위기를 잘 모르는 혹은 이제 관심을 막 가지기 시작한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요!

▶환경이나 기후위기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감을 표시해요. 본인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전 주변 사람들에게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가족 이야기를 해요. 지구라는 큰 틀은 너무 멀게 느껴지지만, 가족은 가장 가깝고 지켜야 할 존재잖아요.
내가 먹고 쓰고 버리고 하는 것들이 지구를 망가뜨리기 전에 나의 가족, 아이들에게 쌓이는 바디버든이 아토피, 성조숙증 등 각종 면역질환들을 야기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거부감보다는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결국 종착역은 지구를 위한 길이 되는 것 같아요. 코로나로 이제 겨우 2~3살 되는 아이들은 지금껏 평생을 마스크를 쓰고 있잖아요. 그건 아이들이 잘못한 게 아닌데 말이죠.
그러니 10년 뒤엔 마스크를 쓰지 않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살 수 있도록 어른들이 만들어 가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난 세 번째 질문에서 가장 흥분된 마음으로 답변을 써 내려갔었다.

기후 위기라는 말을 일반 사람들에게 했을 때 대부분 혹은 내 지인들의 반응은




그래 심각하지 근데 대단하다 나는 못하겠더라




이런 대답을 많이 했었다. '너 대단하다' '멋져' '그걸 어떻게 하니' 등등

난 멋지려고 혹은 대단해 보이려고 한 것이 아닌데 내가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기후위기''탄소중립'등은 그냥 전문용어 일뿐이었다 나라 안팎으로 지자체 관공서 등에서 카드 뉴스 챌린지 등을 하면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기에 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공익광고 같은 느낌이랄까?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강력하게 함께 하길 바라지는 않았지만 나의 일상을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문용어를 빼고 생활용어를 사용해야 했다.

 내  입에서 '기후위기'라는 말이 나오면 바로 나는 환경운동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종착역은 지구가 맞다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지구가 없으면 우리가 없는 건 사실이다.

근데 그 지구가 내가 가는 길 앞에 서 있는 전봇대도 아니고 가늠을 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같은 것인데 그 지구를 지킨다고 하면

다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 눈앞에 물이 있고, 풀이 있고,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많고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배달이 되는데  '위기'라는 단어가 실감이 날 턱이 없다. 근데 내 가족은 다르다. 내 아이가 아프고 내 남편 아내가 아프면 좋은 것 친환경적인 것 몸에 해롭지 않은 것들을 찾는 건 당연한 이치.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마시고, 먹고 하는 것들이 지구를 망가뜨리기 전에 내 가족을 먼저 아프게 할 거라 생각한다

거기에 조금만 생각을 더 붙여서 미세 플라스틱, 화학세제, 화학성분 등을 먹이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게 제로 웨이스트가 되는 것이고

그 제로 웨이스트가 환경과 지구까지 살릴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법이 된다.






평생 한번 보지 못한 북극곰을 위해 환경을 지킵시다 라고 하기보다

평생 내 옆에서 함께할 가족을 위해 제로 웨이스트를 합시다 라고 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내 생활 역시 100% 쓰레기 없는 삶이 될 수 없다. 급할 땐 비닐을 플라스틱을 사용해야 하고, 소창으로 집안의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어 재생휴지 역시 사용하고 있다.  모든 음식을 용기 낼 수 없고 배달음식도 시켜 먹는다. 그렇다고 그런 걸로 자책하고  나의 삶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플라스틱 생수는 사 먹지 않고, 필요하지 않은 플라스틱 물건은 사지 않는다. 종이를 아껴서 쓰고 메일함이 가득 차지 않도록 수시로 비워준다. 일주일에 쓰레기를 3회 이상 줍고 필요 없는 전기를 아끼며 양치할 때 컵을 사용한다. 우리 집에서 나가는 분리수거는 정확하게 하고 되도록 재사용한다  음식물 쓰레기통은 구매하지 않고 배달용기로 사용하며 페트병으로 깔때기를 만들어 주방용품으로 사용한다.  커피숍 앞에 버려진 우유팩을 주워서 분리수거하고 담배 피우고 버리는 사람 앞에서 담배꽁초도 줍는다











나의 제로 웨이스트는 이런 것이다. 시작은 개인주의지만 마지막 종착역은 지구를 위한 것







지금은 오랜 제로웨이스트 생활에 조금씩 습관이 되고 익숙해지면 내가 좀 더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까 생각한다.

장바구니. 용기 내. 텀블러. 쓰레기 줍기 등 모든 것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부끄럽지 않고 창피하지 않는 단계이다

이젠 더 나아가 정말 지구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그 방법  또한 시간이 걸릴 테지만

지금처럼 하나씩 시도해본다면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진짜 지구를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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