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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Nov 05. 2021

이 아이러니한 세상, 편리함과 지속 가능함 사이 어딘가

킥보드 유저가 하이브리드 리스를 결심하며 든 긴 생각

외국 생활 초반 한국 면허증을 현지 운전면허증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었지만, 특별히 운전을 할 일은 없었다. 대부분의 차량이 수동이라 사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겠다. (면허 2종 소유한 나) 갑자기 뚜벅이가 되었지만 불편한 것도 모르고 나름 잘 적응을 했다. 특히 2년 간 학업을 위해 도시에 머물렀기에 더더욱 차를 몰 이유도 없었고, 트램과 자전거가 난무하는 도심에서 차를 모는 것은 무모한 짓인 것만 같았다. 졸업 후 일을 구했고, 연봉협상을 할 때, 나는 당연히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할 생각으로 회사에서 제공하는 리스 차량을 고민도 않고 거절했다. 대신, 단순히 기차 통근 비용을 전액 환불받았는데, 주변 현지인들의 반응이 "차를 받았어야지"여서 내심 놀라웠다. 이곳에서는 회사를 통해 차량을 리스(=장기간에 걸쳐 임대) 하는 것이 굉장히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많은 동료들이 가까운 거리에도 자차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점에 적잖이 놀랐고 실망을 하기도 했다. "선진국의 대명사, 서유럽은 다를 줄 알았는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브뤼셀의 루이스 원형 교차로 부근의 흔한 풍경. 브뤼셀에서의 운전은 부산에서 하는 운전 못지않게 스트레스다.


남편이 몇 번 수동운전을 연습시켜준 적은 있지만, 혼자서 차를 몰고 나갈 엄두는 여전히 못 내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11월 코로나에 걸리면서, 드라이브인 테스팅을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고, 막상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니 갑자기 간이 커졌다. 혼자 한 번 운전을 해 본 이후로는, 자신감이 붙어 금세 혼자 차를 몰고 나갔다. 코로나가 발발한 후부터 기차 출퇴근에 적잖이 스트레스도 받았겠다, 기차 시간에 지장 받지 않고 출근 준비하는 편리함도 느꼈겠다, 그 이후로 나는 30% 자차이용 70% 기차 이용을 하고 있다. 편리함이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운전에 익숙해지고나서부터 매일매일 나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편리함"이라는 적과 싸우고 있다.


위 글 인트로를 쓴 것은 올해 5월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 써놓은 글을 다시 읽으며 새삼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다. 결코 긍정적인 놀라움이 아니다. 어떤 부분에서 스스로 놀람 반 실망 반을 하고 있는 건지, 조금은 부끄럽지만 낯낯이 적어볼까 한다.


일단 자차이용 빈도수가 훨씬 늘었다. 7월인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초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핑계와 몸이 유독 나른해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는 핑계로, 킥보드로 역까지 이동해 기차를 타던 통근 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한 10월부터는 고민을 하는 척도 하지 않는 나다. 어느 순간 매일매일 탄소배출을 하며 출퇴근을 하고 있다.

거짓말 쪼금 보태, 벨기에의 가을 날씨는 참 지랄 맞다. 그러기에 비에 젖기 싫고 떨어진 낙엽에 미끄러질까 겁난다는 핑계를 하나 더 만들기 쉽다.

우리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차는 문이 두 개인 작은 휘발유 차량이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재빨리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새로운 차량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문이 두 개밖에 없으면 아무래도 뒷좌석에 아기를 승하차시키는 것이 수고스러울 것이고, 트렁크의 사이즈도 유모차 하나 넣기에도 벅찰 정도로 턱없이 작기 때문이다. 주말 하루 시간을 내 다섯 개의 쇼룸을 돌며, 우리가 관심 있게 봐 둔 자동차들의 오퍼를 받았다. 선택의 초반에는 회사를 통해 리스를 할 생각보다 우리가 직접 차량을 구매할 의향이 컸다. 또 아직은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를 이용하기엔 제약이 많다고 생각해, 관심 있게 봐 둔 차량의 대부분이 휘발유 차량이었다. 오퍼를 받고, 회사를 통한 리스를 했을 때 드는 금액도 시뮬레이션하며 열심히 비교를 했다. 조사하고 고민을 한 결과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회사를 통해 4년간 새 차를 리스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이득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만든 건, 경제적 이득이 가장 좋은 선택은 우리의 신념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먼저, "새" 차가 우리의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가격이 좋은 쇼룸 중고차를 만나면 지금 있던 차를 팔고 우리가 모은 돈을 보태어 차를 구매하고 오래오래 타야지하고 생각했었다. 제일 환경에 치명적인 것은 차를 자주 바꾸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특히나 4년만 리스를 하고 또 다른 차로 바꾸어야 하는 회사를 통한 차량 구매는 내 선택지에 있지도 않았다. 가능하면 이런 경제적인 구조를 뿌리째 바꿔야 한다고, 회사를 통한 차량 렌트 옵션은 아예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두 번째로, 아직 전기 생산이 친환경적이지 않은데도,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전기차로 전환을 유도하는 자동차 회사나 국가 정책에 반감이 있었다.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대부분의 전기가 원자력 발전소/화력 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마당에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로의 전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차를 잘 유지해서 오래 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직은 부족한 인프라로 제약이 있고, 특히나 아파트에 사는 우리에게 실용적이지 않은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전기차는 선택지 우선순위의 제일 마지막 자리를 차지했었다.

악마에게 차를 팔고 있는 딜러가 이렇게 말한다. "걱정 마세요. 총체적으로 내연기관 자동차만큼 환경오염시키니까요."

거두절미하고 그리하여 우리가 내린 최종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초반에 가진 생각과 거의 180도 달리, 하이브리드 차량을 회사를 통해 4년간 리스하기로 결정했다. 참, 사람이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생각이 짧은 순간에 많이도 바뀌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엑셀에 정리도 하고 리서치도 하며 열심히 고민한 결과이고, 그 나름의 이유도 충분히 있다. 요즘처럼 탄소배출 관련 정책이 자주 바뀌고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정책이 점점 엄격해지는 시기에, 휘발유나 디젤 차량을 새로 구매하는 것은 리스크가 컸다. 당장 브뤼셀 도심에 더 이상 탄소 배출 차량 출입을 할 수 없다는 결정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를 부인할 수 없었다. (디젤 차량은 2030년까지 전면 금지, 대기오염을 많이 시키는 오래된 차량은 이미 출입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하루같이 오르는 휘발유 가격도 우리의 최종 선택에 한몫을 했다. 정부가 유도하고 있는 것이든 아니든, 휘발유 값이 오르는 것은 매일 먹는 사과 가격이나 김장철 배추 가격이 오르는 것만큼 가계에 결정적인 타격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이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당장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었다. 회사를 통해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량을 리징하면 회사에서 무료로 충전도 할 수 있고, 집에도 미터기를 설치해 충전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미터기를 회사에 반납하면 충전을 위해 사용된 전기를 환불받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으며, 전기/하이브리드 차량은 세금 혜택이 있어 결론적으로 월마다 나가는 돈이 단순한 휘발유 차량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엔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육아로 나갈 돈을 생각하니, 이런 혜택들이 소중했고, 돈에 좌우되지 않을 것처럼 고고하게 굴었지만 결국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고민을 많이 하고 비교를 열심히 했기에,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고 차량을 주문 넣을 때는 기분도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한 감정은 뭘까? 우리가 그저 불편할 수밖에 없는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일까? 지금 한창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UN 기후변화 컨퍼런스에 세계의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는 No more blah blah (더 이상 블라블라만 하지 말고)라고 말하며 거리 시위를 하고 있고,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세계 정상들이 현재 제임스 본드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라며 블라블라를 하나 더 보탠다. 기후변화를 논의한다며 전 세계에서 수많은 정상들과 그들의 무리들, 또 환경운동가들과 언론인들이 숙박시설도 부족한 글래스고에 배를 타고, 전세기를 띄우고, 차량을 이용하며 모여들었다. 참 아이러니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는 한번 더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스스로 되새겨본다. 근거가 모호한 (차를 사며 든) 이 불편한 감정은 개인이 짊어져야 할 무게가 아니라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최대한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평소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대견한 시민일 것이다고 말이다.


종종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환경을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재활용에 한 번 정도 실패했을 때, 테이크 아웃 커피를 한 번쯤 마셨을 때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끼는 것을 본 적이 있고, 나도 그런 것을 느낄 때가 있었다. 이 글은 그런 우리들을 위해서 함께 으쌰으쌰 해보자는 마음으로 써 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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