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 몸 긍정하기를 부정하기
현재 한국, 벨기에 그리고 캐나다에서 3명의 작가가 1년 동안 페미니즘에 관련한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첫 소개글 이후 그다음 주제가 “몸 긍정하기” 솔직하게도 난 몸 긍정하기가 왜 페미니즘과 연관되는 거지? 하는 물음표가 있었다. 그러던 와중 어떠한 일련의 기억들과 함께 과연 나는 얼마나 몸 긍정하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인가? 하는 또 다른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양한 자료를 통해 익힌 바 난 건강하지 않은 몸 긍정하기를 부정하는 입장이다. 내가 생각하는 몸 긍정과 미디어를 통해 학습되는 몸 긍정하기는 확연히 다른 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몸 긍정 (Body Positivity)
사전적 의미 : '몸 긍정' 혹은 '자기 몸 긍정주의’라고 번역된다. 사회가 부여한 "이상적인 미적 기준"을 거부하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사랑하자는 운동. 주로 비만이거나 과체중의 여성들이 동참하고 지지하나, 그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남성들 역시 몸 긍정에 입각하여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운동가들 비율 중 여성이나 유색인종 비율이 많은 편이긴 하다
- 참조 : 나무위키
사전적 의미의 두 번째 문장 후부가 내가 알고 있는 몸 긍정하기에 가깝다. ‘자신의 몸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
미디어가 비추는 몸 긍정하기 운동
우리가 흔히 미디어에서 접하는 몸 긍정하기는 현실감 없는 연예인 또는 유명인사들의 마른 몸을 다양한 방식으로 비난하는 것과 더불어 엑스트라 사이즈를 향해 조건 없이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형태를 띠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면 깡마른 모델을 “엔젤”이라 칭하며 다양한 노출 마케팅을 통한 수익을 얻는 란제린 브랜드(빅토리아 시크릿) 대한 불매운동 및 마치 엔젤과 다른 몸은 “악마”냐 하는 식의 무조건적인 엑스트라 사이즈 옹호 운동을 하고 나아가 고도비만의 모델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가령 마른 몸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고도비만인 몸에 대한 지나친 극단적 옹호가 아니러니 하게도 문제점인 거 같다. 나도 고도비만 유명인사들의 연설에 열광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고, 세상 밖으로 더 나와 주길 바랬으며 세상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변해가야 한다고 믿고, 내가 자라온 환경과는 달리 다양한 몸매들을 인정해주는 것 같은 그들을 세계가 너무 부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몸 긍정주의자 중 극단적 고도비만 몸 옹호자들의 행보를 지켜보며 가끔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었다.
몸 긍정하기 마케팅
깡마른 몸매가 건강하지 않은 몸이고 청소년들이 본받을 것 같아 그들이 설 자리를 제거하고 비난한다는 것은 가령 비만인 사람의 몸도 건강하지 않은데 똑같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왜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을 내세우며 그들이 노출되는 것은 건강과 관계없이 자기 몸 긍정하기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왜 꼭 극과 극을 내세워야만 하는 것인지, 농락당하는 기분까지 든다. 마치 내가 플러스 사이즈 언니들을 보며 열광했던 어린 나의 포켓머니를 누군가가 훔쳐간다는 기분 말이다. 정확히 때때로 이용당했다란 기분이 들었다. 정치인들이 유권 행사 시 남성 표심과 여성 표심을 타깃으로 이해와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공약을 내세우는 것처럼, 어느 여성단체가 마른 몸매 모델에 대한 비난을 시작으로 청소년 거식증 수치를 내세우고 여론이 들끓자 이 때다 싶어 곧장 정반대의 모델을 마케팅에 이용하여 소비자가 마치 바보인 양 돈으로만 여기는 철학 없는 기업 또는 단체들에게 신물이 난다.
엑스트라사이즈 유명인들의 숙제
물론 여태 개개인의 고도비만인들은 뚱뚱함은 나태의 상징인 것처럼 치부되는 사회에서 설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 개인의 능력치를 증명할 기회조차 주어 지지 않고, 다양한 방식의 차별로 고통받아왔다. 하지만 고도비만인 마케팅 속에서 인기를 얻은 몇몇의 유명인들이 엑스트라 사이즈에 대한 긍정적 이해를 대중들로부터 이끌었고, 사회 전반적으로 다양한 인식의 변화를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즈에 관계없이 그들의 능력을 펼칠 수 있으며 사회에 조금 더 참여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차별로 고통받아왔던 비만 인구들에게 한줄기 실버 라이트닝을 내려준 그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나는 그들이 누구라도 고도비만이 될 수 있고, 이것이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선 안된다는 점들도 일깨워 주기를 바란다. 사회의 문제점을 조금 더 꼬집어 내길 바라지만 종종 진실을 가리고 인기를 위한 소비를 하게만 하는 그들이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들고 그들이 무대에서 내려올 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때 단순히 엑스트라 사이즈였기 때문에 인기인이었다고 남겨지지 않는 것은 앞으로 그들의 행보에 달려있다고 본다. 고도비만인들이 겪는 다양한 질병을 외면한 채, 그것이 마치 건강한 몸이라고 외치는 것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팻프라이드 모순
심지어 플러스 사이즈인 배우나 모델들이 인기를 얻고 난 후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다 탈이 난 이후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느껴 건강한 몸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그럼 이것은 자기 몸 부정하기가 되는 것일까? 나는 이때 비난이 아니라 박수를 쳐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럼 미드 사이즈 체형만 모델이 되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다양한 사이즈의 모델들을 보여주는 브랜드에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말이다. 사실 고도 비만인들이 나와서 외치는 ”우리는 건강하고 내 몸은 충분히 아름답다.”라는 메세지들은 어느 부분에서는 너무 모순적이며 그에 따르는 다른 파워풀한 메세지들 또한 퇴색된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마치 외모에 대한 기준이 각각 다르듯이 건강에 대한 기준도 각각이기에 저렇게 외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건강한 삶을 살고자 도전하는 모습이 어찌 비난받아야 하는 것인가 말이다.
다양한 형태의 몸 긍정하기
일부 뚱뚱한 몸에 대한 의견은 유보한 채 유독 날씬한 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렸을 때 비만으로 괴롭힘들 당해 온 한 유명한 플러스 사이즈 모델 테스 홀리데이는 피해망상이 심해져 성인이 되어서도 날씬한 사람들이 구조적으로 비만인을 억압한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는 직업상의 이유로 몸을 가꾸는 이들 그리고 취미로 운동이나 식이조절을 하는 이들을 왜곡된 신체관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형태의 비난을 보고 있노라면 외부의 기준에 상처받지 않는 용기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재단되는 나의 몸
왜 이렇게 까맣지?
왜 이렇게 살쪘자?
왜 이렇게 근육이 많지?
정말이지 조금만 평범에서 벗어나면 입을 그렇게 대는 사람이 많다. 본인이 세운 기준에 내가 꼭 들어가야만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의 기준과 다르면 뭔가 잘못된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들. 캐나다로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 직장인반 필라테스를 다닐 때였다. 필라테스 옷으로 환복을 한 후 수업 전 기구로 연습을 하고 있는데, 어떤 여성분이 오셔서 대놓고 들으라는 식으로
“ 와, 진짜 까맣다.”
“ 외국에 살다 오셨어요?”
“ 센터 강사보다 더 태릉인 같네요.”
물론 누가 봐도 나보다 훨씬 더 날씬한 그분은 나에게 대답도 기대하지 않고 그냥 떠들어 대는 것처럼 보였다.
“와, 이 운동복은 어디서 샀어요? 난 그런 거 민망해서 못 입겠던데.”
“허벅지랑 종아리 근육이 진짜 운동하시는 분 같아요.”
등등 그분은 엉덩이를 내려 덮는 박시한 반팔에 쫄바지를 착용하고 있었고, 내가 입은 옷이 민망해서 못 보겠다는 뉘앙스를 흘렸다. 물론 난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 전 바닷가 가는 걸 좋아해서 자연스레 태닝이 되었어요. 운동하는 걸 좋아해요. 종종 운동하는 사람이냐는 질문받아요. 그리고 운동할 때 필라테스 전용 옷 입으면 근육 움직임을 강사님이 더 잘 볼 수 있어서 자극 점을 찾기가 더 쉽고, 저도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더 신경 써서 하게 되니 좋아요.”
싱긋 웃어 보이면서 가볍게 인사하고 예정된 기구 위에 올랐다. 그런데 강사 선생님이 다가오시더니 센터 인원들 다 들리게
“야, 제발 그 부유방이랑 팔뚝살 덜어내자. 니 주말에 뭐 뭇나? 옆구리 올라왔는데! 뭐 하자는 거고?”
“닌 허리 잘록하게 유지해서 다른 글래머함 드러내고 해야 남자가 붙는다니까, 딱 외국인들이 환장할 스타일이네.”
하아,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예전에 그런 개그 프로그램이 있었다. 신봉선 엔터테이너가 나와서 신랄하게 “뭐라 쳐 씨부리 삿노?!” 말도 안 되는 말 또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이에게 날려주던 시원한 사이다 같은 말이 내게도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왜 내 몸에 입을 대지? 희한하네. 마구 재단하던 그대 본인들은 과연 어떠한가 묻고 싶어졌다. 남을 재단 하기 이전에 본인을 돌아보시길. 나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에 속해 살아가고 있고, 어쩔 수 없이 타인에 의해 나의 소중한 것들이 재단 당 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지금은 안다. 그 재단 자체가 옳고 그르다 판단하기 이전에 다양함을 담은 그 시선을 조금 이해하려는 자세를 취해본다. 물론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이다.
이러한 일련의 기억들이 내가 실수라고 일컫는 불필요한 말, 말이 되지 않는 말을 타인에게 늘어놓은 적은 없는가?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기준을 남을 재단하는 데 사용하진 않았는가?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나의 건강한 몸 긍정하기
몸 긍정하기가 왜 페미니즘과 연결 지어지는가? 몸 긍정주의자의 많은 비율이 여성이기도 하거니와 오랜 시간 동안 여성성을 강조당하며, 외모 또한 여성스럽고 단정하게 그리고 속한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같이 체형을 가꾸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인식을 견뎌내야만 했던 경험들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몸 긍정하기와 페미니즘의 연결점은 “몸” 이 아니라 “긍정하기” 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고 나는 이를 내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난 까맣다. 어릴 때 뽀 하얀 우윳빛 피부의 엄마와 시간을 보낼 때 난 내가 엄마와 닮았다고 착각했나 보다. 그렇게 아빠 닮았다고 하시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범벅이 되었던 나를 되짚어 보면 지금은 피식 웃음이 난다. 새카만 눈동자, 까만 생머리, 까만 피부 우리 엄만 늘 나에게 백만 불짜리, 천만 불짜리를 꼭 붙여줘서 내 자존감을 키워주었다. 조금은 다른 외모로도 이렇게 내 몸을 긍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외모를 긍정하기 위해서는 내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건강한 잣대로 누군가의 비난에 흔들리지 않으며, 내가 가진 다름을 매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살다가 조금씩 흔들린다면 나의 가장 가까이에서 내가 제일 예쁘다고 소중히 여겨주는 내 사람에게 귀 기울이면 된다. 그리고 몸 건강 정신건강 증진에 힘씀이야 말로 긍정적 몸 긍정하기가 아닐까 한다.
사진 출처 및 읽을거리:
이 기사는 몸 긍정 하기운 동의 시작과 변화를 언급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중간에 우리에게 자주 노출되고 친근한 플러스 사이즈 인플루언서들과 모델들이 비만 수용 운동을 통해 가져오는 또 다른 사회 양상에 대한 언급을 하고, 그들은 대중들에게 비만이어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주기까지 한다. 다양한 연구결과를 통한 일반적 건강수치를 비만인들에게 적용하여 노출되는 건강 리스크들을 안내하는 기관을 고소한 유명 코미디언에 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건강 관련 리서치 기관에 대한 비만인들의 불만 목소리와 공중보건 캠페인이 가져다준 흡연에 관련한 우리의 인식 변화를 설명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흡연과 비만이 뭐가 다른지? 분명 건강에 해롭고, 여러 질병에 노출되는 리스크가 높아짐은 같다. 하지만 그 해당 이슈에 대한 수용성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기사이다.
나의 개인적 생각은 끊임없는 노력과 시간을 들여 담배에 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듯이, 비만을 건강하지 않다고 단순하게 판단할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 긍정 운동 교육을 통해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또 다른 긍정적 결과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But as we move away from the skinny goals of the mid-2000s and embrace different shapes and sizes, one group of campaigners has taken things a step too far. Fronted by plus-sized models and social media influencers, the fat acceptance movement aims to normalise obesity, letting everyone know that it’s fine to be fat. With terms such as “straight size” and “fat pride” proliferating, some influential figures are now even likening the valid concerns of health officials to hate crimes."
해당 기사는 유명한 플러스 룰루레몬 브랜드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 스테파니와 유명 사진작가 베로니카의 얘기를 담고 있다. 그녀들의 건강한 몸 긍정하기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가진 정신과 육체를 본인이 행복함을 느끼는 방향으로 이끔이라고 한다.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기 위한 노력에 비난할 이유도 없고, 필요하다고 느끼면 이끄는 대로 본인이 소신을 가지고 행하라고 메세지를 전달한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몸 긍정하기는 단순한 비만 옹호가 아니라 다양한 사이즈와 모양, 피부색, 성별 그리고 다양한 신체 조건 능력들을 모두 수용함에 있다는 것이다. 이렇기에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를 이끄는 유명인들이 스스로가 어떤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올 수 있는지 한번 더 생각하고 발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Still, there remain misconceptions about what body positivity means and its true impact. For example, the scientific journal Obesity published an article in 2018 suggesting, “the body-positive movement is contributing to being obese.” Mainstream media picked up on this and ran with it with such headlines as, "Study finds the body-positive movement is probably contributing to the obesity crisis," and "Normalisation of 'plus-size' risks hidden danger of obesity."
"Body positivity means not comparing myself to others, but celebrating our dif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