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시작하지 않은 사람〉

공연 희곡



장르: 독백극 / 고백극
러닝타임: 35–45분
등장인물: 1명 (이창대)
무대: 의자 하나, 탁자 하나, 문 하나(실제 문이 아니어도 됨)


프롤로그

(무대에 불이 켜져 있다.
이미 배우는 서 있다.
관객이 들어오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1막 ― 준비된 사람

이창대
나는 준비가 덜 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책을 읽었고,
강의를 들었고,
사례를 알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도 안다.

(잠시 멈춤)

그런데

나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관객을 본다)

이상하지 않나.
사람들은 보통
준비가 안 돼서 시작하지 못하는데
나는
준비가 되어 있어서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2막 ― 이유를 찾는 사람

나는 계산을 해본다.
종이에 숫자를 쓴다.
30만 원.
500만 원.
월 70만 원.

(웃음)
숫자는 언제나
이렇게 또렷하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이게 돈 때문일까?


아니다.
나는 이미
돈이 없어서도,
돈이 있어서도
삶을 바꿔본 적이 있다.

그럼 시간일까?
아니다.
나는 늘 시간이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왔다.

(조금 낮아진 목소리)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이 문 앞에 두고 있는 걸까.


3막 ― 두려움의 얼굴

(문을 바라본다)

이 문을 열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더 나아진 사람일 수도 있고
더 망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이 문을 열면
나는
지금의 나로 돌아올 수는 없다.


(긴 침묵)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두려운 건 실패가 아니다.

(천천히)
나는
성공해 버린 이후의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4막 ― 멈춰 있는 선택

그래서 나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상태를
선택하고 있다.

도망이 아니다.
유예도 아니다.

(관객을 향해)
이건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두려움은
나를 막고 있는 게 아니라
나를 보존하고 있다.


에필로그

나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상태로도
충분히 인간이다.

(불이 천천히 꺼진다.
배우는 퇴장하지 않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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