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랑이는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긴 교수님은 '이런 글'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고 하셨다. 모두가 교수님의 말을 받아 적을 때, 나는 펜을 들 수 없었다. 이런 글이 '내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내 글에 격언은 첫 문장에 등장하지 않았고, '-것 같다'처럼 모호한 말은 지양했고, 감성보단 이론을 갖춘 글을 쓰려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글은 임용시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2020년. 돌잔치도 못했고 어버이날에도 찾아 뵐 수 없었다. 마음이라도 전하려고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는데 문득 글 쓰고 싶은 마음이 꿈틀댔다. 교수님의 지적을 잊은 채 몇 장의 사진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 글을 올렸고, 다음날 한 분이 좋은 이벤트가 됐다며 고맙다는 댓글을 남겼다. 출처 불분명한 힘이 솟았다.
몇 차례 올린 글을 정독한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좀 줄여봐. 요즘은 핸드폰으로 글을 읽어서 가독성이 중요해.'이것이 팩폭이구나.' 객관적으로 살피려 내 글을 검색했는데 같은 소재의 글이 올라왔다. 흥미롭게 클릭했는데 웬걸. 비슷해도 너무 비슷했다. 곧 그분의 댓글이 달렸다. 내 글을 보고 자신도 만들었는데, 실례가 안된다면 링크로 걸어도 되겠냐고. 이웃 추가는 덤이었다.
마음을 다쳤고 이내 글이 닫혔다. 어느새 12월. 아끼는 노트와 펜을 꺼내 "2020 도전: 브런치 작가 되기"라고 기록했다. 다시 글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자신은 없었다. 며칠을 고민하다 작가 신청을 눌렀다. 그날 마신 커피 두 잔이 아니었다면 용기는 못 냈을 듯하다. 며칠 뒤 받은 합격 메일은 새벽 2시까지 글을 쓰는 힘을 선사했다.
<브런치 최신 글>을 살폈다. 저마다 색채를 곱게 입힌 글감들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차분한 어조로 빈틈없는 논리의 글을 펼치는 작가, 고요히 일상을 읊조리는 작가, 위트로 미소를 유발하는 작가, 수려한 손글씨로 위로를 주는 작가, 가보지 못한 동경의 세계를 글로 안내하는 작가, 한 문장만 읽어도 따스함을 주는 작가.
분명 세월이 묻어나는 글인데 작가는 20대란다. 슬며시 나의 20대를 꺼내어 견주어본다. 남성적 어조가 강한데 프로필 사진은 중년의 여성이다. 여린 감성과 빼어난 사진 실력. 이번엔 틀림없이 대학생이라 생각했지만 아이가 둘 있는 엄마다. 문득 내 글은 어떻게 비칠까 궁금해진다.
이것이 내가 <브런치 최신 글>을 보는 이유다. 글로 먼저 작가를 접하니 서로에게 순수해진다. 편견도 없다. 마음 편히 글을 읽는다. 어떤 잣대를 들이밀지 않아도 된다. 나도 모르게 쌓인 글의 기준을 빼고 평가가 아닌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2020년 1월 1일. 남편의 A형 독감과 아이의 장염을 시작으로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코로나까지. 예측할 수 없던 삶이 예측해서는 안 되는 삶으로 변했다. 10년 넘게 지낸 친구와 처음 다퉜다. 하. 그것도 카톡으로. 내게 가장 먼저 들려줬으면 했던 이야기를 단톡 방으로 통보받았다. 내 비밀을 먼저 나눈 사이였는데.
맥없이 바스러진 나를 붙잡은 건 브런치였다. 단톡 방에서 상처 받은 브런치 글에서 내가 보였다. 이름 모를 한 떨기 어여쁜 꽃과 글에서 위로의 향기를 맡았다. 아직도 자신 없는 내 글에 달린 댓글을 곱씹으며 힘을 축적했다. 며칠 만에 털고 일어난 나를 보며 남편은 브런치 덕분이라 했다.
2020년 끝자락과 2021년 첫 자락의 경계. 아쉬움과 설렘 사이에 있는 지금. 우리네 인생을 예측할 수 없듯 브런치도, 작가도, 글도 예측하지 않으련다. 라이킷과 구독자보다 자신의 글을 담담히 써가는 브런치에 주목하련다. 그런 브런치가 되련다. 2020년, 내 인생에서 브런치가 브런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