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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한 하루 Dec 28. 2020

층간소음 샌드위치 집을 아시나요?

우리 집이 아니에요.

먹는 샌드위치는 맛이라도 좋지. 층간소음 중간에 끼인 우리 집은 위층의 어마한 '소음 빵'과 아랫집의 시도 때도 없는 '민원 빵'을 위아래로 덮은 채 숨 막히게 살고 있다.


내 모습이 투영됐는지 임신한 아랫집에 정이 갔다. 새벽에도 경쾌하게 발도장을 찍는 윗집에 대처하기 위해 아랫집과 번호를 교환했다. 남편은 이것이 화근이라고 했지만, 말이 잘 통했고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았다.


"윗집 장난 아니에요. 전에 살던 분이 매트 깔아달라고 했는데, 우리가 왜 까냐고 했요."


아랫집의 귀띔에 며칠을 고민하다 커피를 사서 위층에 찾아갔다. 거실에는 매트 하나만 있었다. 어떻게 말을 꺼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참아온 소음을 이야기했고 오지랖까지 부려 아랫집은 임신 했으니 매트를 깔아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나도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름 평화주의자인 나는 윗집 2번, 아랫집 2번을 오가며 중간 역할을 했고 우리 집에서 자신의 아이가 뛰는 소리를 확인한 윗집은 결국 매트를 주문하겠다고 했다. 이후 엘리베이터에서 윗집 가족을 마주칠 때면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지만 이것이 중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구도 해결하지 못한 위층의 층간소음을 해결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던 사이, 아랫집은 아이가 태어났다.


'저 혹시 지금 위에서 뛰나요?' 아랫집에서 카톡이 왔다.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간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남편은 조용히 놀았다고 결백을 주장했지만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와 친정에 머물 때 일이다. '밤늦게 죄송해요. 혹시 작은 방에서 운동이나 뭐 하시나요?'. 저녁 10시 30분, 친정에서도 나는 층간소음에서 자유롭지  했다. 답답했다. 그동안 우리 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숱한 노력이 떠올랐다.


이삿짐 정리도 끝내지 못한 집을 보여준 일, 윗집에서 나는 소음임을 확인시키기 위해 아이를 종일 안고 있던 일, 민원이 올 때마다 빈틈을 메우려 매트로 테트리스를 한 일, 아무리 급해도 안방 화장실은 사수한 일, 한 시간이라도 조용히 쉬라고 아이와 매일 밖에 나간 일 등.


물론 우리 집에서도 소음이 발생했지만 지금까지 연락 온 대부분은 윗집 소리였다. 소심한 복수지만 더 이상 아랫집에서 보낸 카톡을 읽지 않기로 했다. 2주 뒤, 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그 날은 오전, 오후 모두 밖에 다녀와 집에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한풀이라도 하듯 관리사무소 직원에말했지만 '그냥 조용히 한다고 하시면 돼요.'라는 말이 가슴에 불을 지폈다. 억울했다. 아랫집으로 인터폰을 했다. 티키타카를 주고받던 중 '방금 뭐 떨어뜨리셨죠?'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아랫집에서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세 번의 절규  끝에 '그럼 더 이상 연락 안 할게요.'라는 말을 들었다. 정작 소음의 근원지인 윗집에는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 집에만 이야기하는 아랫집. 트를 깔았다 뺐다 하며 여전히 소음을 일으키는 윗집의 태도에 답답함이 몰려왔다.



전에도 그랬지만 윗집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이 다가오면 아이를 데리고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저 소리는 우리 집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아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잘 잤어?'라고 크게 외쳤다. 내 아이는 이제! 막! 일어났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렇게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아랫집과 신경전을 나 홀로 이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아이와 장을 보고 오는데, 동 입구에 처음 본 유모차가 보였다.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엄마들은 보통 비슷한 시간대에 마주쳐서 스쳐 지나가도 누군지 안다. 사방을 두리번 대며 울퉁불퉁한 인도로 유모차를 끄는 것을 보니 처음 나온 엄마 같았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추억에 젖어 점점 낯선 유모차와 가까워지던 찰나, 황급히 유모차를 돌렸다. 아랫집이었다. 아직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나는 '내가 당신보다 1년은 먼저 유모차를 몰았다'며 자랑이라도 하듯 앞질러 집으로 들어왔다.


연신 내 기분을 살피던 남편은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아랫집 아기는 우리 애보다 더 뛰었으면 좋겠다, 그 밑에 집이 예민해서 매일 민원 넣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옹졸하기 짝이 없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산책하러 나왔나 봐요. 아이가 정말 예쁘네요.' 이 한마디 건네지 못한 내가 부끄럽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아파트 방송에서는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층간 소음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습니다.'를 외쳐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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