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을 보니 흰색과 파란색이 적절히 섞인 천막이 우뚝 솟아있다. 화요장터가 열리나 보다. 산책도 하고 장도 볼 겸 나갈 채비를 마치고 현관으로 갔다. 요즘 '이거 뭐지?'에 빠진 아이에게 새로운 표현을 가르쳐주려고 '이거 누구지?' 하며 벽에 걸린 웨딩사진을 가리켰다. '아빠'라고 하는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여세를 몰아 '이건 누구지?' 하니 아이가 대답한다. "누나! 누나!"
몸무게를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체중이 줄고 늘 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에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나는 아니겠지'했던 임신성 당뇨에 덜컥 당첨되자 모든 음식이 조심스러웠다. 냉장고 앞에서 딸기 한 알을 여러 번 나눠먹는 내 모습에 서러움이 북받쳐소리쳤다. "여보! 아기 낳으면 꽃 하고 딸기 올라간초콜릿 케이크 꼭 사줘! 꼭!"
100일의 기절을 지나 180일쯤 되니 아이의 잠이 늘어났다. 이는 내 수면시간이 길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분명 예전만큼 힘들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허기가 졌다.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고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친정에 있을 때, 밤 11시에 과자 두 봉지를 남김없이 다 먹는 모습을 본 엄마는 다음날 내 손을 꼭 붙잡고 한의원에 데려갔다. 원인 모를 이 허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괜찮다. 정말 괜찮다. 하지만 옷들이 계속 나를 밀어낸다. 조금만 곁을 주면 어떻게라도 비집고 입어보려는데 도통 틈을 주질 않는다. 할 수 없이 남편 서랍장으로 눈을 돌렸다. 남편이 살 빼면 입겠다며 남겨둔 옷 몇 벌을 슬그머니 내 서랍장 속에 넣었다. 그중 하나를 걸쳐보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정확히 재보진 않았지만 임신 때보다 지금이 더 많이 나가는 것 같다.
장염으로 며칠 앓고 나니 주말이 다가왔다. 마트에 가려고 평소처럼 옷을 입었다. "여보, 스쿼트 좀 해야겠어."라는 말에 그래도 나를 생각하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없는 애교를 조금 보태서 "나도 건강을 위해서 하려고는 하는데 잘 안되네. 이번에 장염으로 고생해서 그런가 얼굴이 별로 안 좋지?"곁눈질로 거울에 비친 남편을 바라봤다.
"아니, 당신 바지 봐봐."
"... 뭐? 하하하. 당신이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 않나?" 하며 쾌재를 외치려던 순간 남편이 나지막이 말한다.
"따라오는 속도가 심상치 않은데..."
지난주 토요일에 일어난 작은 해프닝에 지금도 웃음이 난다. '살쪘다'라며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살이 찌고 있는 상황을 진행형으로 표현한 남편의 센스에 고마워해야 할까? 조용히 현관 앞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다. 20대 끝자락과 30대의 첫 자락에 서 있는 한 여자가 웨딩드레스를 흩날리며 서 있다. 이젠 나도 낯선 이 사람에게 괜스레 말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