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한 하루 Feb 10. 2021

고집 센 성씨(姓氏)로 사는 것


다투고 나면 대부분 원인을 기억하지 못하듯 사춘기에 접어든 내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엄마에게 화가 나서 말도 안 하는데 갑자기 큰 이모에게 가자니 황당했다. 아빠와 동생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나를 두고 셋이서 집을 나섰다. 전화로 기다리고 있으니 내려오라는 말을 들었을 땐 결정을 번복하는 것 같아 '싫다'로 답했다. 푸념인지 진심인지 모를 소리가 들렸다. "고집도... 고집도... 누굴 닮았는지." 내 생각에 고집이 센 건 엄마였다. 반찬 투정을 했다고 전날과 똑같은 반찬을 다음날도 싸준 엄마였기 때문이다.


수업 중 고집 센 성(姓)이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여기저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친한 친구 몇은 나를 보며 웃어댔다.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을 만나 통성명을 할 때면 '한 고집하시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스스로 고집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계속 듣다 보니 어느새 나도 나를 한 성격 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의문은 계속됐다. 나보다는 작년 자료를 올해도 사용하는 저 사람이 더 고집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아! 다시 생각하니 그분도 한 고집하는 성씨(姓氏) 중 하나였다.  



지난가을, 하염없이 쏟아지는 단풍을 눈에 한아름 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없었는데 '안녕하세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풍에 미련이 남아서인지 뒤를 돌아봤다. 방문판매원이셨다. 목례를 하고 갈 길을 가려는데 갑자기 엄마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처럼 습진으로 고생한 분이 그 제품 세제를 쓰고 나았다는 말이었다. 주방 세제를 여쭌 내게 그분은 치약과 에너지바, 유산균을 덤으로 주며 회원가입을 권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기입하는 종이와 펜을 주신 그분의 눈이 펜 끝을 향하고 있었다. 겨우 성만 적었을 뿐인데 "아이고! 우리 집 양반이랑 같은 성씨네"하는 말이 들려왔다. "하하, 그런가요?" 여기까지만 해도 되는데 손으로 집중되는 눈빛이 부담된 나는 "한 고집하죠?"로 말을 이었다. 갑자기 손가락을 펼치시며 "이거 몇 개?"하고 물으셨다. "네? 2개요." "우리 집 양반은 손가락 두 개 펼쳐놓고 한 개라고 해요. 황소고집이에요."


얼굴 한 번 뵙지 못한 한 가정의 가장을 그분의 말만 듣고 어림짐작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키는 중간 정도에 배가 살짝 나왔을 것 같고 머리는 우리 아빠처럼 좀 빠졌을까?' 그때를 기점으로 그분의 상품 설명 카톡이 이어졌지만 '제가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꼭 연락드릴게요.'로 답했다. 내 입장에서는 수십 번의 거절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연락 오는 그분이 더 고집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유독 우리 아이를 예뻐하는 분이 계신다. 연배가 있으시고 배울 점도 많아 나는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그날따라 모자를 쓴 아이가 귀여웠는지 사진을 찍으시고는 핸드폰으로 전송하겠다며 번호와 이름을 물으셨다. 번호를 말하고 내 이름을 말하는 순간, "옛말에 0 씨랑은 말도 섞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이런 말 들어봤어요?" 한 고집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말까지 섞지 않는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어진 "집에서 남편 꽉 잡고 살죠?"라는 말에 찬찬히 나를 돌아본다. 즙을 짜듯 남편을 꽉 잡은 적은 입덧할 때였다. 하루 종일 바나나 우유 하나로 버티다가 호두과자가 먹고 싶었다. 퇴근하면서 사 오라고 했는데 가게가 문을 닫았다며 호두과자와 비슷한 마카롱을 사 오셨단다. 호두과자와 마카롱이 같냐며 눈물과 잔소리 폭격을 쏜 내게 남편은 아무 말도 않고 미안하다고 했다. 나의 승리였다.


퉁퉁 부은 눈으로 맞은 다음날 아침, 남편이 말했다. "어제 직원 한 명이 일이 힘들어서 울고 있길래 이야기 좀 들어준다고 늦었어. 미안해." 남편은 항상 이렇다. 당장은 이긴 것 같지만 곱씹을수록 찝찝한 승리다. 이겼는데 기쁘지 않고 역으로 사과해야 할 듯한 느낌을 4년째 이어가고 있다. 다툴 때는 말도 않고 대역죄인처럼 함구하다가 다음날 조목조목 이야기하는 남편에게 오히려 내가 잡혀 사는 것 같은데. 이건 느낌 탓일까?



나를 고집 센 사람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답이라도 하듯 나도 나만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구분했다. 매번 거짓말로 약속을 미루는 사람, 많은 사람 앞에서 돌려 까기로 면박 주는 사람, 앞뒤가 다른 사람들을 떠올리니 이들 모두 같은 성씨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옳거니! 앞으로 이런 성씨는 멀리해야겠다는 판단이 섰고 혼자 실행에 옮기던 어느 날이었다.   


지인들과 모인 자리에서 또 성씨 이야기가 나왔다. 요리조리 나를 훑는 시선이 따가워 '0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더한 것 같다'며 말을 돌렸다. 나만의 임상 시(?) 이야기를 살짝 더하니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앞다투어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토해냈다. 그런데 그곳에 내가 말한 성씨가 있었다. 평소에도 유쾌한 그는 "나는? 그러면 우리 아빠도 그렇겠네?" 하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아찔했다. 미안함과 민망함이 엉겨 붙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날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사라졌다.


고집은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티는 것이다. 고집의 정의를 몇 번 되뇌니 흔들리거나 요동치 않는 굳건함이 느껴졌다. 모두가 안된다고 할 때, 자기 뜻을 밀어붙여 기적을 만드는 드라마 주인공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나는 왜 고집 세다는 말이 힘들까? 고집 뒤에 따라오는 '불통'때문이었다. 고집불통. 융통성이 없는 사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내 의견만 내세우는 사람으로 비치는 두려움. 결국 나를 가까이하기 힘든 사람으로 여기는 타인의 시선이 나는 불편했던 것이다.    


몇 년을 겪어도 모르는 사람을 초면에 성씨 하나로 판단하는 기준이 나를 힘들게 했다. 안타까운 건 여태까지 스스로 그렇게 여기며 살았다.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바로 0 고집이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며 극한으로 나를 몰아세웠고 상대가 슬그머니 뒤꽁무니 빼면 승리가 주는 안도감의 그림자에 숨어 지냈다. 흔히 듣던 말에 의문을 가졌더니 그동안 나를 옭아맨 답을 찾았다.    


하지만 딱 하나, 아직까지 못 찾은 답이 있다. 2019년에 손님이 한 분 오셨다. 남편과 청소도 하고 방도 꾸미며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이분이 좀 까탈스러우셨다. 잠자리가 어색하다며 고집을 피우시더니 2년 넘게 무취식 중이다. 1년 전부터는 풍선에 빠져 풍선이 보이기만 하면 사달라고 고집을 피우신다. '안돼'라고 말해도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이 분이야 말로 한 고집하는 게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따라오는 속도가 심상치 않은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