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누구나 한 번쯤 뱉는 말이지만, 취업을 앞둔 나에겐 현실을 피하고 싶은 절실한 말이었다. 과거의 행복을 피난처 삼고 싶어 친구의 연락을 받고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갔다. 마냥 순수할 것 같았던 추억 속 아이들은 어느덧 성인이 되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 모습은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옛이야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나 했지만 대화는 현재를 향하고 있었다. '누구는 유학을 갔다, 누구는 TV에 나오더라...' 그러다 한 아이가 말했다. “소식 들었나? 걔는 사고로 죽었다더라.”
삐-익. 그 순간 나는 냉엄한 현실로 돌아왔다.
같은 동네에 살던 우리는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같은 중학교, 같은 반이 되면서 돈독해질 것 같았던 사이는 작은 일 하나로 틀어졌다. 이후 친구는 마주칠 때마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했고, 그 모습이 두려웠던 나는 최대한 부딪히지 않으려 노력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수없이 상대의 기분을 살폈다. 잠자리에 누워선 하루를 곱씹으며 실수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고 초조해했다. 시간이 흘러 이십 대가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친구 하나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흙탕물이 담긴 컵을 가만히 두면 그나마 위쪽은 맑아져. 그런데 막대기로 휘저으면 가라앉은 흙이 떠올라 엉망이 되지. 마음도 마찬가지야. 작은 상처 하나에 옛 상처까지 무섭게 떠올라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어.” 그날 밤, 나는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그때로 돌아갔다. 상황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받을 상처가 무서워 피하는 중학교 1학년의 내가 보였다. 가여웠다. 지금껏 나를 상처 속에 살게 만든 것은 그 친구도, 우리를 멀어지게 만든 사건도 아니라 나 자신임을 깨달았다. 나에게 미안했다.
언젠가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글을 보며, 중학교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친구와 당당히 맞서 여태껏 짓눌린 상처의 싹을 자르고 싶었다. 그 기억만 없다면 나는, 내 성격은 달라졌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삼십 대가 되어보니 모든 사람이 저마다 마음속 흙탕물이 있었다. 다만 어떤 이는 지독히 상처를 숨기고 어떤 이는 어렴풋이나마 드러낸다. 그뿐이었다. 그 후 나는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내 모습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나를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타인에게는 관대하면서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기 때문이고, 때론 그 반대이기도 하다. 최근 아픈 사람을 보았다. 마음이 무너진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기껏 떠올린 '힘내자'라는 말을 곱씹다가 뱉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서 나오는 말까지 상처로 남을까 두려워, 말을 흘리기보단 담아두기로 했다. 그랬더니 며칠간 내 마음을 어지럽히던 흙탕물이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