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의 편애로 인해 차별을 겪고 자란 것은알겠으나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없는 사람보다 너의 처지가 훨씬 낫지 않겠냐고.'
그들의 말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 과거 육아를 오롯이 엄마가 전담하였던 데서 오는 양육 스트레스와 상황을 같은 여자로서 이해해야 한다.
- 행여 그것이 너의 마음을 헤집고 아프게 했을지라도 엄마의 본심이 아니었을 거라고 믿고 엄마를 더 이해하고 사랑해주어야 한다.
-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 모두 각자 만의 알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 네가 겪은 정도의 편애와 차별은 모든 가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것이다.
- 편애의 근본은 가족의 상황과 환경이다. 엄마만의 잘못이 아닌 것을 인정하라.
각자의 시선에 따라 이 의견들은 옳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는 것이 있다.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어온 편애와 차별은 어린 시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되는 일이며, 나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매우 노력했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근 몇 년 간 나는 엄마가 내게 보이는 태도를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말과 행동은 그처럼 차갑지만 마음 깊숙이 나를 향한 따뜻하고 잔잔한 사랑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따라서 엄마에게 최선을 다해 정신적, 물질적 지지를 퍼부었고 엄마의 마음이, 말과 행동이 바뀔 거라는 믿음을 굳게 가졌었다.
"엄마의 내면 아이를 잘 보듬어주고 내가 더 잘해주면 엄마는 달라질 거야. 따뜻한 햇살이 외투를 벗게 하는 바람과 해님의 동화처럼 내 사랑이 엄마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거야."
사실 한동안 엄마도 달라진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했으며 투박하고 비아냥대던 말투가 좀 더 다정하게 변했다. 내가 전화를 걸어 안부인사가 길어지면 그새를 못 참고 항상 '물이 끓는다, 누가 왔다'라고 끊어버리곤 했는데, 요 근래에는 말도 잘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주며 웃어주기도 하였다. 엄마가 결혼하고 나를 가졌을 때 서럽게 울었다던, 40년 전 살던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펜션에 예약을 하고 모시고 갔을 때 더욱 그러했다.
"저기서 내가 친정식구가 보고 싶어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엄마, 그때는 엄마가 저 동네를 벗어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바라보며 고기도 구워 먹고 좋은 시간을 보내면서 추억하니 엄마 마음이 편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러네."
나는 엄마가 변했다고 느끼기 시작했었고 엄마가 주는 관심에 황송해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것은 헛된 믿음이었다. 엄마는 내가 백화점에 데려가 신겨보고 사주었던 신발들은 까맣게 기억에서 지우고 동생이 선물 받은 구두 상품권으로 사준 신발에 뛸 듯이 기뻐했다.
"내가 평생 처음으로 그렇게 비싼 데서 혼자 신발을 골라봤잖니!"
"엄마, 내가 지난번에도 몇번이나 사주었었잖아요."
"그거랑 이게 같니."
엄마는 나와 외출하거나 외식을 할 때는 거의 계산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네 식구들과 외식을 할 때는 번번이 엄마가 계산한다. 동생네가 엄마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면 모든 음식을 준비하고 대리비와 아이들 용돈까지 건네준다. 그리고 나의 생일에는 전화를 하거나 문자 한 통 보내지만 동생 식구들 생일에는 직접 음식을 대접하거나 식당에서 외식을 하였다. 그리고 그 점을 항상 자랑스러워했다. 엄마는 우리 집에 올 땐 거즌 빈손으로 와서 차비와 용돈을 받아가셨지만 동생에게는 반찬이든 뭐든 사주고 자신이 가진 걸 먼저 내주려고 했다. 아이를 가졌을 때 나는 임부복 사는 돈을 아끼려고 평소 입던 박스티를 입었으나 엄마는 올케가 임신하니 예쁜 임부복 몇 벌과 신발 몇 켤레, 가방 등을 사주셨었고 그 사실을 내 앞에서 자랑했다. 엄마는 나와 같이 간 최근의 여행들보다는 동생 식구들과 다녀온 몇 년 전의 외출을 오래도록 추억하였다.
"그 애들이 자기들만 나가도 되는데 나를 꼭 데리고 갔잖니. 다 날 생각해주는 거지."
내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목적은 나의 친정엄마를 비난하고 나쁘다 매도하는 데 있지 않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자연스럽게도 나는 엄마에게 어둠이고 동생은 빛이었을 것이다. 나를 낳을 때 엄마는 난산으로 힘들어서 죽고 싶었지만 동생은 막달에 낳았어도 낳는데 3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태어날 때 그가 얼마나 작은지 애처롭고 가엾기만 했었다고 한다. 출생의 출발점부터 엄마에게 나와 동생은 어둠과 빛으로 각인된 것이리라. 결국 나의 모든 애씀과 노력은 통할 수가 없었다.
친정엄마라는 이미지는 이 사회에서 막강하다. 자식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엄마,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엄마, 항상 보고 싶고 애처로운 엄마, 나를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 달려올 엄마, 내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자 버팀목인 우리 엄마...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의 친정엄마는 동생에게만 그런 엄마가 돼줄 뿐이다.
사람들의 말처럼 부모가 없는 것보단 나았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나를 양육하는데 필요했던 그녀의 에너지, 돈, 시간, 물질, 감정, 체력 등의 희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여정은 편애로 인해 마음속 깊숙이 자라나 평생을 뒤따라 다니는 짓이겨지고 상처 난 나의 감정을 치유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물림 하지 않도록 애쓰는 과정이다.
더욱이 친정엄마를 향한 부정적 언사를 터부시 하는 이 사회에서 친정엄마의 일방적인 연 끊음을 당한 나와 같은 사람의 이야기는 주변의 사람들에서 온전한 공감을 받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 나와 비슷한 경험, 편애와 차별을 가족 안에서 겪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이 브런치를 통해
"당신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여기 있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작은 위로와 공감을 건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