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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림 Apr 20. 2022

냉이 된장국, 그 안에 담긴 따스함


3월 중순에 있던 일이다. 주말이라 아이들과 드라이브를 나다. 한적한 곳에 내려 둘러보다가 꽃샘추위 섞인 날씨가 너무 추워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길가에 앉아 무언가를 파는 할머니를 보았다. 아이들 춥다고 방방 뛰어서 빨리 차에 태웠지만,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아이들을 차에 두고 할머니에게로 뛰어갔다.


"무얼 파시나요?"

"냉이요."

"냉이가 얼마인가요?"

"5천 원이요"


시린 바람 속에서 덜덜 떠는 손으로 할머니는 냉이 한 보따리를 내게 건네주신다.

"너무 많아요. 조금만 주시면 되는데요."

"아니야, 다 가져가."

"너무 많은데... 감사합니다."


나는 충동적으로 냉이를 사들고 오면서 날씨가 추우니 할머니도 이제 집으로 가셔야 할 텐데 싶어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차 창문을 통해 보고 있던 아이들이 물었다.

"엄마, 뭘 샀어요?"

"냉이 샀어. 이따 저녁에 된장국 끓여줄게."

아이들은 된장국 맛있겠다고 서로 재잘거렸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많은 냉이를 어떻게 손질해야 할지와 몇 번을 끓여도 많이 남을 텐데 냉이를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냉이로는 된장국만 끓일  알고 크게 좋아하지도 않는데 괜히 샀나 싶어 갑자기 후회되기도 했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에 냉이 손질을 얼른 끝내려고 싱크대 앞에 섰다. 이걸 언제 손질할까 하며 파란 비닐을 열어보았다. 푸릇한 냉이 내음이 물씬 난다. 냉이를 손으로 한 움큼 쥐어 꺼내니 정갈하고 잘 다듬어진 깨끗한 냉이가 한가득이다. 싱싱하고 물기가 묻은 것으로 보아 할머니는 분명 팔러 나오시기 전에 일일이 물 씻어 칼로 다듬고 손질하셨던 것 같다. 뿌리껍질까지 곱게 말끔 벗겨져 있어서 곧바로 사용해도 될 정도였다. 양도 무척 많아 몇 집이 나누어도 충분할 만큼인데, 이것을 5천 원에 파시면서도 이처럼 잘 다듬어주셨나 싶어 투정을 부렸던 게 부끄러워졌다.


할머니가 냉이를 팔던 곳은 고정된 좌판이 아니어서 뜨내기 관광객을 주로 손님으로 맞이하는 자리였다. 그런데도 사가는 사람들이 손질하기 힘들지 않게 이렇게 공을 들이셨던 것이다. 마음 한편이 왠지 모르게 몽글몽글해졌다. 그 사이 아이들은 배고프다 종알대었다. 나는 쉴 사이 없이 얼른 냄비에 두 종류의 된장을 퍼담고 냉이와 야채들을 씻어 육수와 함께 넣고는 가스불에 올렸다. 곧이어 보글보글 팍팍 끓는 소리와 함께 냉이 내음 섞인 된장국 냄새가 피어올랐다. 국자로 거품을 걷어내고 물을 조금 더 붓고 끓였다. 가스불을 내리고 맛을 보니 알싸한 봄 내음이 가득했다. 얼른 식탁을 차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아이들은 의자에 앉아 된장국부터 맛을 본다.


"엄마, 엄마가 끊인 거예요?"

"그럼, 방금 엄마가 요리했지."

"정말 맛있겠어요. 아까 할머니한테서 산 걸로 만든 거예요?"

"응, 맞아. 그 냉이로 만든 된장국이야."

"엄마, 된장국 끓이느라 고생하셨어요."

"아, 맛있는 냄새. 얼른 먹어야지."

"진짜 맛있겠다."


아이들은 엄지 손가락으로 따봉을 날리며 된장국에 밥을 말아 숟가락에 단무지 한 조각을 얹고는 입으로 한가득 가져간다. 나도 같이 앉아서 된장국을 맛보았다. 따뜻한 냉이 된장국이 마음속의 추위까지 녹여 주는 것 같았다. 한입 먹을 때마다 이른 아침에 냉이를 한광주리 뽑아 다듬고 온종일 팔러 나오신 할머니의 수고로움이 생각났다. 나의 서투른 요리 솜씨에 빛을 더해준 누군가의 애씀이 잠시 내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여유를 준 것이다.


냉이 된장국을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다정함이란 건 이렇게 소소하지만 일상적인 어떤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상대를 위해 근사하고 뭔가 멋지고 대단한 일을 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의 수고로움을 알아주는 소박한 마음도 다정함 이리라. 손님이 힘들까 봐 하나하나 손수 다듬어 푸른 봉투 가득 채워 냉이를 팔러 나오신 할머니의 배려와 아이들이 배고플세라 얼른 된장국을 끓여냈던 나의 정성, 그리고 그것을 알아주는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 담긴 것 또한 다정함일 것이다. 냉이 된장국을 가득 채운 온기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렇게 마음 속 깊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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