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yu림 Apr 02. 2022

다정함은 포켓몬 빵에 있다


며칠 전 아이가 하교 후 쪼르르 달려오더니, 내게 묻는다


"엄마, 포켓몬 빵 하나만 사줄 수 있어요?"

"어? 포켓몬 빵? 왜?"

"요즘, 우리 반 애들한테 유행이거든요. 저도 먹어보고 싶어서요."
"그래? 내가 마트 가서 사다 줄게."


아이의 눈이 기대에 차 반짝거렸다. 나는 아주 호기롭게 집을 나서서 단지 내의 마트에 들려 포켓몬 빵을 찾았다.


"혹시 포켓몬 빵 있나요?" 마트 직원분께 물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아주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요즘 포켓몬 빵 찾는 사람이 많아서 오는 대로 금방 나갑니다. 저희 마트는 2개밖에 안 들어와요."


급하게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포켓몬 빵 품귀 현상... 포켓몬 빵 사기 위해 물류차 오기 전부터 대기... 포켓몬 빵 열풍, 대란... 등의 현상을 심상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렇다. 포켓몬 빵은 현재 대유행인 것이다.

나는 평소 유행에 민감한 편이 아니며- 더 솔직하자면 유행에서 매우 동떨어져 있는 편이며, 국민 드라마쯤 되는 드라마도 보지 않을 정도로 유행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 포켓몬 빵을 향한 우리나라 국민의 열기는 복잡한 수학 공식만큼이나 이해되질 않았다. 기에 나의 아이까지 가세하다니...

이 이해되지 않는 모종의 현상에 잠시 어지럼증이 났다. 그러나 곧장 호흡을 가다듬고 빵을 구할 수 있는 여러 팁들을 알아보았다.


편의점 앱을 깔아라, 마트에 물류차 오는 시간을 정확하게 체크하여 미리 대기하라, 마트 주인과 친해져서 빵 예약을 해놓아라, 인적이 좀 덜한 곳의 마트로 달려가라, 물류차를 따라다녀라 등의 많은 노하우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정보들 중 일부를 실행해 보았다. 벌써부터 아이가 포켓몬 빵을 보고 좋아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시크한 듯 아주 무심하게 너를 위해 준비했다고 아이에게 빵을 살포시 건네주면 아이는 그것을 보고 방방 뛸 것이며 우리 엄마 최고를 외칠 것이다. 나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그것 봐, 엄마가 구해준다고 했지?"라고 말하며 뿌듯함에 어깨를 으쓱할 것이다.


구하라! 그럼 얻을 것이다! 우리의 포켓몬 빵을!


그러나 내가 사는 동네의 거의 모든 편의점과 마트를 가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만 만날 수 있을 뿐, 빵의 흔적은 찾아보려야 찾을 수도 없었다. 급한 대로 지역의 맘 카페에 들어가 정보를 검색했지만 뾰족한 팁을 구할 수는 없었다. 당* 마켓에 들어가면 급 가격이 상승한 빵을 살 수도 있다는 정보를 얻기도 했으나, 아이에게 엄마가 직접 사준 따끈한 빵을 구해 들고 가고 싶었기 때문에 패스하였다. (사실 나는 당* 마켓의 가입자도 아니다.)


두 시간 동안 동네를 헤매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얼마나 실망할지... 기대가 좌절되어 눈물을 한 바가지나 흘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게 다 뭐라고... 나는 어째야 좋을지 몰라 한참을 고심하면서 걸었다.


"엄마 왔다. 그런데 음. 있잖아... 엄마가 포켓몬 빵이 이렇게 유행인 줄 몰랐어. 미처 몰라서 미안해. 오늘 말고 다음에 엄마가 구해볼게."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의 실망한 얼굴을 보면 마음이 상할 것 같아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엄마, 괜찮아요. 반 친구들이 포켓몬 빵을 하도 자랑해서 나도 먹어보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얼마나 맛있으면 저럴까 싶어서요. 엄마 나는 정말 괜찮아요. 그런데 빵 사러 다니느라 힘들지 않았어요?" 아이의 말에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엄마가 꼭 다음번에 사볼게. 이해해줘서 고마워." 아이를 안고는 잠시 등을 토닥 주었다.


꼬옥 구하리라! 포켓몬 빵을!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빵을 쉽사리 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점점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울적했다. 다들 잘도 사는 빵을 왜 나는 한 개도 구할 수가 없는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커졌다. 아이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빵 구하기 작전은 능력 부족이라는 자괴감 게이지를 서슴없이 올라가게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못하는 것을 더욱 이상화하고 갈구하는 법이다. 삐삐삐~~ 내 안에서 이상신호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꿈속에서마저 포켓 몬스터의 로켓단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작전은 실패닷!"


이런 나에 비해 아이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아이는 나의 포켓몬 빵 구하기 작전이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조차 묻지 않았다. 다들 먹는다던 그 빵을 갖지 못해 서운하거나 억울한 마음이 없을까 싶어 내색을 살폈지만 아이는 정말 괜찮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가 포켓몬 빵 못 구했어, 더 기다려줄 수 있을까?" 나는 말문을 띄워봤다. 아이는 해맑게 웃더니 말했다.

"엄마, 난 정말 괜찮아요. 저번에 엄마가 열심히 빵 구하러 다녔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안 좋았어요. 우리 엄마 힘든 거 싫어요. 나는 그거 안 먹어도 되는걸요."

너의 다정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다정한 것을 잘 모르겠어서 평생 그것을 찾고 다녔는데, 바로 내 눈앞에 있었구나. 주책없이 또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그날 저녁이었다. "띠리리링~~" 우리 집 벨이 울렸다. 아이가 후다닥 현관문을 연다. 나는 누구인지 확인도 안 하고 현관문을 열었을까 봐 한소리 해댈 참이었다. 몇 마디의 대화가 오가더니 현관문이 쾅 닫힌다.

"누구니?"

"친구예요. 친구가 포켓몬 빵 2개 구했다고 하나 주고 갔어요."

오잉! 나는 눈이 둥그레졌다. 그 사이에 아이는 접시를 꺼내서 빵을 정확하게 반으로 나눈다.

"내가 좀 더 큰 쪽을 먹고 싶지만 너한테도 고를 수 있게 해 줄게." 아이는 동생을 불러서 이야기한다.

둘은 새 우유를 뜯어서 한 컵씩 야무지게 따르더니 포켓몬 빵을 한입씩 먹고, 나도 맛보라고 작은 조각을 건넨다.


"음... 맛있다. 먹어본 중에 젤 맛있는 빵이다."


정말 그랬다. 진심으로 맛있었다. 아이의 마음과 아이 친구의 따뜻한 나눔이 함께해서 더 부드럽고 더욱 단 그런 맛있는 빵이었다. 2개를 어렵게 구해서 하나를 나눠주려고 찾아온 아이 친구의 다정함은 또 어디서 왔을까.


"정말 고맙구나. 친구한테 빵 대신 뭘로 갚아야 좋을까?"

"내가 다음에 친구가 필요한 것이 있다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그때 잊지 않고 고마운 것을 갚으면 되어요. 또 혹시 나도 포켓몬 빵이 생기면 친구에게 주어도 되고요."


그렇다. 다정함은 서로의 사이에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관계에 의지하고 관계 속에 살아가야 하는데, 서로의 마음을 위하는 다정함은 그 사이를 배려와 따뜻한 마음으로 엮어나갈 수 있게 한다.

'너희의 다정한 마음이 이 포켓몬 빵에 담겼구나.'

내가 다 갖고 싶지만 친구를 위해 기꺼이 나눠줄 수 있는 마음, 상대의 애씀을 폄하하거나 품평하지 않고 애씀 그대로 받아 들 일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고마움을 계속 간직할 수 있는 마음... 다정함은 이런 것일 것이다.

그날 포켓몬 빵에 담긴 다정함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이 다정함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삶 속에서 따뜻한 빛을 발할 것이다.


'당신의 다정함에 축복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새싹이 돋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