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에게 봄을 보는 방법을 배우다

이 맛에 육아휴직하지

by 훈남아빠

봄이 되었더니, 아기는 겨울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다.

봄을 맞이한 아기는 충만한 에너지로 가득 찼다. 인생에서 재밌는 일이라고는, 비싼 음식을 먹거나 해외여행을 나가서 좋은 술 한 잔 편하게 마시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봄을 맞은 아기의 즐거움이 굉장히낯설다.


춤을 추듯 살짝 구부린 무릎과 앞으로 쏘아져 나가듯 경쾌한 발걸음. 덩실거리는 팔움직임.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좌우로 계속해서 마구 흔드는 고개.

빠르게 걸어 나가는 뒷모습만 보아도 아기가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장점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원래 장인에게 뭔가를 배우려면, 도제교육이라며 무급으로라도 그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이 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배우지 않는가. 아기를 따라다니다 보니, 진정으로 아기는 보는 눈이 탁월한 시선 장인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아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너무 빨리 달려만 가던 나의 시간을 잠시 잡아둘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지금의 아기를 만나기 전부터 아기가 어느 정도 크기 전까지 아기에게 텔레비전과 핸드폰은 보여주지 않기로 했다. 아기는 세상 온갖 흥미진진한 것들을 담고 있는 매체를 접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아주 작은 것들이라도 때로는 몇 시간씩 입에 물어보고 뜯어보고 돌려보고 관찰했다.


아내는 인테리어나 소소하게 예쁜 것들은 전혀 관심이없어서 집의 작은 변화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한다. 그런데 이 아기 녀석은 내가 만드는 아주 사소한 변화에도 귀신 같이 눈치를 채고 그 앞에 가서 “쁘쁘쁘쁘!!”외치며 손가락 질을 해대곤 했다.


그럼 나도 모르게, 나의 예술적 손길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검지로 코를 쓱 머쓱하게 닦으며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게 되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녀석을 겨울이라는 긴긴 시간 동안, 집 안이나 실내에만 가둬 두었다. 바람 한 점에도 콧물이 터져 나오는 아기의 콧구멍이 야속했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미 아기는 집 안에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나랑 아내 보다 더 자세히 아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조금씩 날씨가 풀리고, 이 욕구로 가득 찬 녀석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때가 되었다.

바깥에 대한 호기심은 아기 안에 꾹꾹 눌려 담겨 부글부글 끓고 있다가 아기를 밖으로 내보내자 폭발했다.


아기를 봄기운 가득한 바깥에 내어놓자 온통 “쁘쁘!!”의 천국이었다. 봄을 맞은 아기는 연속적으로 세 걸음 이상을 떼지를 못했다. 온 사방이 아기에게는 흥미진진한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황량하던 나뭇가지에서 작게 피어나는 초록의 기운들을 아기는 놓치지 않았다. 놀이터 가는 길에, 어제까지 없던 작지만 빨갛게 시선을 끄는 앙증맞은 꽃을 가진 매화나무가 생긴 것을 아기가 놓칠 리 없었다. 아기의 시선을 따라 이것저것 함께 공유하다 보니, 5년을 이 단지에 살면서 전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고 이내 여러 감정들이 들기 시작했다.


출근할 때는,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다 보니, 정말 폭설이 왔거나 폭우가 오거나 하는 출근과 직접 관련이 되는 특이한 기후 상황이 아니면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 계절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나름대로 그때그때 계절을 말하곤 했는데 아이와 함께 하며 봄을 겪어보니 내가 그동안 말한 봄은 봄이 아니었다.


맑은 아침 햇살을 받고 노랗게 빨갛게 피어나는 꽃들은 겨울철에는 느낄 수 없는, 눈이 아플 정도의 찬란함이었다. 그저 ‘며칠 전 보다 좀 푸릇푸릇해졌나?’하는 뭉뚱그려진 발견 아니라 어제는 저쪽 담장 반걸음 전까지 있던 생동의 기운들이 오늘은 담장까지 넘실거리네!

대상들에 대해 '대충 그런가 보다.' 생각하지 않고 그 변화를 섬세하게 인식하니 그 생명력과 에너지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세상은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지만 가지마다 줄기마다축제와 향연의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변화들은 아기와 함께 하지 못했다면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아기가 여기저기 던진 시선들 덕분이었다.

예전에 어느 글귀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 이상은 하늘을 쳐다본다고 했다. 아기는 흥미로운 것들 앞에서 예외 없이 멈춰서 "쁘쁘!!"를 외쳤다.

나는 이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목이 아프도록 하늘을 본다. 하늘뿐 아니라 바닥에 기어가는 개미들도 아기와 앉아서 한참 보곤 한다.


나는 식물이라면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빠로서 눈을 반짝이며 "쁘쁘"를 외치는 아기에게 뭐라도 가볍게 설명해주고 싶은 욕구들이 생겨났다.


"와 꿀벌들이 많이 모여있는 걸 보니, 꽃이 맛있나 봐",

"멀리서 봤을 때는 그냥 하얀색 꽃이었는데

바로 앞에서 보니까 하얀색과 노란색, 보라색도 조금 섞여 있네!"

둘 다 아무 말 없이 서있을 수는 없었으므로, (아기는 "쁘쁘"를 말하겠지만..)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냥 무턱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우리 단지 내에 매화홍은 어디에 몇 그루 정도나 심어져 있는지,

맥문동은 어제에 비해 얼마나 자랐는지,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하얀색 꽃을 피운 나무는 어제보다 오늘 꽃을 어느 정도 떨어뜨렸는지

이 모든 것들을 음미하게 되었다.


아기 덕분에 나의 봄은 진정한 색상들과 진정한 향기들로 가득 찼다. 출근을 할 때는, 집 밖을 나서는 순간에도 그날 할 일들을 생각하느라 날씨가 추운지, 꽃이 피었는지, 단지에 새로운 조형물이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과거의 나였다면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진짜 봄, 봄의 향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