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스트레스 받던 아내의 출산 후 첫외박
아기가 10개월이 다 되어갈 무렵,
아내는 직장에 복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육아휴직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인수인계하고 진행하던 일들을 마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 시기즈음해서 '복직, 출근'관련 얘기들은 모두 금기어가 되었다.
"여보 출근 시작하면 평일날 시간 내기 어려워질 테니까 지금 스케일링받고 와요!
내가 공주 보고 있을게"
하자마자 사나워진 아내는 나를 쫓아와서 내 등짝을 때렸다.
왜 맞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잠시 후에야 '아..! ' 하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한동안은 '복직'관련 얘기만 나와도 펄쩍 뛰는 아내의 반응이 너무 재미있어서,
자꾸 놀리곤 했는데 복직일이 점점 다가오자 이건 심상치가 않았다.
나도 사람인지라 '아.. 이거는 놀릴 상황이 아니네..' 하고 눈치껏 적당히 조심하고 있었다.
아내가 집에 있어도 이미 아내의 영혼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았다.
[소울]이라는 영화에서 사람이 뭔가에 몰입하고 집중하면 육체와 정신 그 사이의 어느 세계로 떠나는 장면이 있다.
아내는 '걱정'과 혼연일체가 되어 이미 걱정의 별, 혹은
그 어딘가의 세계로 떠나 있는 거 같았다.
잠시 아내의 상태를 보며 고민하다가 어차피 내가 육아휴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매일 나 혼자 아기와 오롯이 하루를 보내야 했기 때문에, 연습이라도 할 겸.
아내에게 외박을 제안했다.
"여보 내가 공주 보고 있을 테니까 1박 2일로 어디 갔다 와요. 갈 데 딱히 없으면 호캉스라도 다녀오든 온전히 푹 쉬고 와요. 그동안 육아하느라 고생했어."
"이제 출근 시작하면 정신없어서 어디 가지도.. 아! 아차.. 아무튼.."
"여보도 맨날 얼마나 힘든지 아는데 내가 어떻게 그래.."
와이프는 강하게 손사래 치며 말했다.
그런데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퀭하게 점멸하고 있던 그녀의 눈에 빠르게 번쩍 안광이 어린 것이 보였다. 내가 한 번 더 설득을 하자 아내는 덥석 내 제안을 물었다.
"아니 여보가 뭐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게 꼬박 하루를 여행 간다고 계획을 짜던 아내의 여행 일정이 잡혔다.
여행 일정을 두고 오래 고민하던 아내는 나와 아기를 두고 멀리 갈 수는 없다며
맛집 투어 + 호캉스 정도로 서울 투어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 그녀는 작은 가방을 메고 떠날 준비를 마쳤다. 아기띠를 하고 아기와 함께 터덜터덜 아내를 배웅 나가는데, 아내는 말로는 자꾸
"우리 원숭이들 나 없이 잘 지낼 수 있겠지...?"
했으나 얼굴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생기가 돌았다.
"걱정되면 그냥 안 갈래요?"
하고 묻자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빠르게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인파들 속에서 손을 흔들고 총총 사라졌다.
그렇게 10개월 아기와 아빠만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막상 돌아오니 집은 적막감이 흘렀다.
원래도 아내가 가끔 외출하면 아기와 단 둘이 있었지만 그 적막의 시간들은 모두 약속의 시간으로 대체가 되었었다.
아내가, 엄마가 몇 시간 후면 돌아온다는 약속이 있었기에 그 시간들이 그리 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부녀는 그 적막과 허전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엄마 오늘 집에 돌아오지 않아. 엄마는 자고 내일 오후 되어야 올거야 공주야. 슬프지?"
"아빠는 참 허전하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우리 부녀는 금세 적응을 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아기를 품에 안고 뱅글뱅글 돌며 웃고 함께 춤을 췄다.
사실 우리 부부는 아기가 한 번 정도는 엄마를 찾으며 왕왕 울고,
'역시 엄마가 소중하구나!' 하고 느끼는 상황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냥 잘 지내던 아기는 무사히 잠까지 잘 자버렸다.
오히려 힘들어하는 건 아내 쪽이었다.
아내는 밤에 막상 혼자 호텔에 있으니 무섭다고 했다.
아내 혼자 밤에 잔 것이 너무 오래되다 보니 혼자 자면 무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나와 아기가 보고 싶다며 자주 연락을 했다.
적당히 잘 달래주다가 아내도, 조금 힘들었던 나도 일찌감치 잠에 들었다.
그렇게 아내는 1박 2일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정을 끝내고 밝게 웃으며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아내 없는 1박 2일 동안 큰 사건은 없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 혼자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은 내 예상보다 무겁게 느껴지긴 했다.
작은 일이 생겼을 때도 편하게 함께 얘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내가 나에게 큰 안도감을 준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온 아내도
활기가 도는 것 같아 보였다. '역시 무서웠네 어쩌네 해도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해보니까 그냥 할만 하더라구요. 이후로 가끔 짧은 여행 나갔다와요."
나는 그녀에게 제안했다.
이제 당분간 혼자 떠나지 않을 거야! 흑흑하던 그녀는 정말로 당분간
'혼자' 떠나지 않았다.
다만.. 친한 친구와 떠났을 뿐...
그래.. 여보만 행복하면 뭐..
이제 육아휴직 시작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