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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잎맘 Oct 05. 2023

국선변호사의 잡담일기

이기적인 국선변호인과 이타적인 피고인?

“변호사님, 제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에요. 제가 얼마나 봉사활동을 많이 했게요. 또 헌혈은 얼마나 여러 번 했는지 아세요? 제가 도둑 쫓아가서 표창장을 받은 적도 있어요.”

 피고인이 국선변호사사무실 문을 당당하게 열고 나의 변호사 방에 들어와 앉았다. 나는 피고인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넨 뒤 공소장에 적힌 범죄사실, 즉 공소사실을 읽어보라며 공소장을 건넸다. 그리고 공소사실을 인정하는지 물어봤는데 돌아온 대답이 바로 위의 말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국선변호사일 때는 왜 묻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지 답답했지만, 이제는 익숙하게 일단 들어본다.


피고인이 하고 싶은 말은 옆 테이블에서 먼저 친구에게 욕을 하면서 시비를 걸었기 때문에 폭행죄로 벌금을 내는 게 너무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이 꼭 반문한다.

 “변호사님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나? 나는 친구에 대해 욕하며 시비 거는 사람에게 내 주먹이 바로 날아갈 만큼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지 않다. 나의 육아와 일에 허덕대며 살아가는 월급쟁이 워킹맘에게는 체력과 시간이 늘 부족하다는 핑계 덕분에,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활동과 선행은 언제 했는지 까마득하다. 걱정이 많고 극I(내향)형인 나에게 도둑을 쫓아간다는 건 상상도 못할 위험한 일일 만큼, 나의 안전이 우선이다.

 나는 면담을 마치기 전 피고인에게 합의를 제안해 본다. 반의사불벌죄인 폭행죄는 상대방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공소기각 판결이 선고될 뿐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특히 이 사건처럼 쌍방 단순폭행으로 기소된 사건은 합의금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이 서로 처벌불원을 표시하면 당사자 모두에게 계산적으로 윈윈(win-win)이 된다. 그러나 의외로 합의가 잘 성사되지 않는다.

 피고인은 결국 합의를 원치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100원 한 푼 들지 않고도 몇 백만 원의 벌금을 내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다고? 본인도 처벌을 받지 않지만 상대방도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런 걸까.


피고인은 재판에서 자신의 최후변론을 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마지막에 덧붙였다.

 “재판장님, 앞으로도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 좋은 일을 많이 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선행은 분명 칭찬받을 일이긴 하지만 선행보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범죄를 안 저지르는 게 우선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오늘의 의인이 내일의 범죄자가 되기도 하고, 오늘의 범죄자가 내일의 의인을 다짐하기도 한다니. 같은 사람의 작은 불씨도 열정적인 선행으로 불타오를 수도 있고, 폭력적인 범죄로 불타오를 수도 있듯이, 사람은 그리 이분법적이지 않나 보다.


사람의 본성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하는 고전적인 질문에 정답이 있겠냐 만은, 굳이 답을 고민해 보자면 “감정적”이라는 대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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