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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자 Jul 30. 2019

사랑하는 나의 공동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지금 너무나 멋진 사람들과 함께 있다.

나는 쪼렙 천주교 신자이다.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잦은 해외 생활로 인해서 세례를 위한 교리와 미사 참여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본당 공동체 생활을 해본 적도 없다.


내가 원해서 받은 세례이고 나의 종교이지만 잘 모르는 부분도 많아서 천주교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가고 싶은 목마름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교육받을 수 있는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혹은 그렇게 변명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한국에 가면 세례를 받은 성당을 열심히 다녀보아야겠고 생각하며 체류하는 국가에서의 현지어 혹은 영어 미사에만 조용히 참석했었다.


그렇게 나는 큰 욕심이 없었는데 작년 르완다 생활 중반기, 8월 즈음부터 변화가 생겼다.

바로 르완다 교황청 대사관에 한국인 신부님이 파견 오신 것이다. 사실 그때는 이렇게 뭔가가 형성될 줄 몰랐다.

신부님을 중심으로 모임을 몇 번 가지고, 기회가 되어서 함께 미사를 드리다 보니 숨어있던(?) 천주교 신자들이 점점 모이게 되고, 서로 같이 밥을 먹거나 카페에 가고, 대략 한 달에 한 번 정도이지만, 우리끼리 교황청 대사관에서 허가를 받고 한인 미사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예비자 분(들)도 발생..? 와우.


르완다라는 작은 국가에 모인,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평범하지 않은, 굉장히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미사 드리며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의 매일에 스며들어 있는 나날들이 참 특별한 것 같다.

한인 미사가 없을 때 우리가 참여하는 미사는 불어 미사라서 신부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전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각자의 핸드폰에 펼쳐져있는 가톨릭 매일 미사 앱을 보면 이렇게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이어져 있을 것 같다. 이 속에서 참 많은 힘과 사랑을 얻는다.


내 주변에는 항상 spiritual growth(영적인 성장)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것은 꼭 특정한 종교색이 아니더라도 삶의 방향과 목적 혹은 삶을 이끄는 초월적인 존재나 현상(혹은 체험)에 대한 갈급함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며 혹은 그런 체험을 중시하는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예를 들면 파울로 코엘료 같은), 나 또한 이 사람들이 말하고 체험하고 갈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나 자체는 그런 영적 성장에 대한 갈급함이 없었는데 최근에는 좋은 환경 속에서 가톨릭 공동체에 대해 많이 알아가며 제대로 기도하고 싶고, 제대로 실천하고 싶고, 그 속에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나를 발견했다.


이제야 나는 나의 종교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었던 건지, 어떻게 살아야 더 행복해지는지, 그리고 나 자신이나 내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법도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다. 기도는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배워야 한다는 것이 많이 와 닿았다. 기도하고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내가 좀 더 다듬어져 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행복함과 사랑의 감정을 좀 더 오랫동안 기억하며 간직하고 싶다.


보통 주일 불어 미사는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섞이는데 오늘은 주교님께서 미사에 오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같이 작은 리셉션을 여셨다. 게다가 원래는 불어 미사이지만 한인들의 대부분이 불어를 하지 못하니, 신부님과 주교님의 큰 배려로 이번 미사의 제1 독서와 강론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첫 부분 영어 미사에 엄청 행복했지만 앞으로도 또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음에는 영어 미사를 가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르완다의 영어 미사는 너무 과도하게 길다고 해서 걱정이기는 하지만..)


미사 후의 공동체 리셉션은 모두가 각자 조금씩(?) 음식을 준비를 해왔다.

우리는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한국 음식을 가져오고, 다른 신자분들(보통 유럽인과 르완다인)도 각자 할 수 있는 만큼의 준비를 해오셨다.


김밥, 구절판, 만두, 감자전, 김치 등등. 보이지는 않지만 한국인하면 빠지지 않는 고기를 위해 불판에 목살도 굽고 있어요.


외국인들은 대부분 빵, 치즈와 디저트를 담당했지만 저기 늠름한 사과파이는 우리 언니가 만든거라구!




그럼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왜 가톨릭 신자가 되었을까?


솔직히 거창한 이유는 없다. 

우리 집은 종교관이 자유로운 편인데, 굳이 분류하자면 할머니는 기독교, 엄마는 천주교, 아빠는 불교 라인이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가 교회에 데리고 다니셨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교회의 기억보다는 엄마가 힘들어할 때 동네 성당의 성모 마리아 님의 상을 보면서 위로받던 모습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다. 조용한 분위기와 꽃밭, 성모 마리아 님도 좋았고 정말 가끔 미사에 따라가면 엄마가 받아 모시는 성체의 맛이 너무나도 궁금했고, 엄마의 세례명도 부러웠지만 세례를 받으려면 1년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포기했었다. (당시의 꼬꼬마에게 1년은 체감 10년) 


조금 더 자라서, 여전히 가톨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내가 알던(정확히는 안다고 생각했던) 보수적인 가톨릭 교회에 좀 더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어 주신 뒤로 조금씩 더 관심이 가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그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한 가장 큰 결정타는 내가 미국에서 즐겨보던 미드, Blue Bloods(블루 블러드) 때문이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가족이자 4대째로 뿌리 깊은 경찰 가문인 레이건 가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족상을 가지고 있다. 가족 구성원들은 4대째 뉴욕 경찰(혹은 검찰) 소속이며 뉴욕에서의 사건사고를 서로의 관점에서 대립 혹은 함께 풀어나가며 서로 더 가까워지고 끈끈해짐을 보여주는 가족 드라마이다. 사실 그냥 넷플릭스에 있길래 시간 때우기 용으로 본 건데 어떤 면에서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불어넣어준 미드였다.


극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바로 레이건 가의 선데이 디너였다.

사실 이 가족의 선데이 디너는 매 회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페이스 타임으로라도 함께 해야 하는 가히 절대적 디너.

내가 레이건 가 소속의 10대 소녀라면 이런 분위기가 강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이 가족이 매주 일요일 미사 후에 모여서 손을 잡고 함께 식사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한 주의 시작, 혹은 마무리를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엄청 멋진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나 또한 가족이 생긴다면 이런 소소하지만 멋진 family tradition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실 극 중에서 선데이 디너가 항상 훈훈하지만은 않다. 서로의 의견이 충동하며 살벌한 갈등을 야기하기도, 혹은 갈등을 해소시키기도 하는 아주 감칠맛 나는 매개체이다.)


Blue Bloods - Reagan family의 선데이 디너


아직까지 나에게 Blue Bloods처럼 멋진 선데이 디너를 함께할 가족은 없지만, 르완다에서 처음으로 미사 후에 사람들과 함께 식사기도를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왠지 나만의 Blue Bloods family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뭔가 버킷리스트가 반쯤은 클리어 된 느낌이다.


물론 언제나 함께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드라마에서도 그렇고).

함께 하다 보면 서로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부담으로 다가와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 같은 경우는 사람들과 있는 것이 너무 좋아서 그 순간의 즐거움 때문에 나와의 약속이나 휴식시간을 미뤄버리기도 한다.

내가 함께해서 즐거운 사람들을 더욱 소중하게 아끼고 대하려면 나 또한 최고의 상태에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 좋은 공동체와 함께 하면서 나 또한 이 사람들에게 좀 더 힘이 되고 의지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르완다에서 우리만의 선데이 런치 테이블


뭔가 생각보다 엄청난 스케일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지금 너무나 멋진 사람들과 함께 있다.

타지에서 서로의 행복과 성공과 건강을 응원하고, 할 수 있는 내에서 서로를 챙기는 소중한 커뮤니티 속에.


내 주말의 일부분은 항상 이런 사람들이 차지한다:


탁구 테이블 하나가지고 세상 재밌게 놀면서 웃음이 끊이질 않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에너자이저들,


요리 못한다고 하면서 리셉션에 나는 듣도 보고 먹도 못한 교리김밥을 만들어 온 센스만점 도도한 언니,


르완다에 없는 사과파이를 먹고 싶어 하는 자매님을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 세상 끝장나게 맛있는 사과 파이를 구워온 귀염츤츤 언니,

(진짜로 서양인들이 만든 빵들보다 훠얼씬 훠어어어어얼씬 맛있었드아..!)


청년들이랑 있는 게 좋고 재밌다고 집에 자주 초대해서 한국식 집밥을 푸짐하게 차려주시는 든든한 형제자매님 댁들,


그리고 르완다에 오신 그 자체가 내겐 너무나 큰 선물인 신부님.




나 또한 이들에게서 배운 배려와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오늘 강론처럼 내 안을 들여다보고,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다.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The Answer to Prayers (마태 7: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The Golden Rule (마태 7: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Do to others whatever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This is the law and the proph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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