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고기국수는

by 밥 짓는 사람

내 첫 고기국수는.


그러니까 대충 그때가 직장도 없을 때였고, 푼돈이나 여기저기 다니면서 벌 때였는데 , 어느 날 친구들과 투다리에서 소주나 먹다가 "야 이런 여름 날씨에 제주도에 가면 말이야, 그 바닷가 아무 데나 루어를 던지면 이만한 물고기가 말이지. "


친구들은 낚시에 문외한이었는데 , 몇 번의 캠핑과 낚시 경험으로 이제 막 맛을 보고 있던 터, 그 말에 혹한 나머지 "그래 가자 비행기도 내가 표 끊으마 " 라며 즉흥으로 여행을 결심.


남자 셋이서 낚싯대 가방 세 개만 들고 공항에 도착. 가장 싼 렌터카를 빌리고 가위바위보로 진 놈이 운전을 하고, 나머지는 앞으로도 운전할 일이 없도록 바로 캔 맥주를 까서 먹어주고 출발. 계획도 없던 운전이고 숙소 같은 건 뭐... 여름인데 길에서 자면 어때.


좌측 함덕으로는 애인들에게 시달리며 몇 번 가본 남자들이라. 이번에는 한 번도 안 가본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보자. 라면 애월읍 쪽으로 출발. 물론 늦은 시간이라 해가 지고 나니 일단 숙소부터 잡자고 결정.

아차차 그전에 담배도 좀 사야 하니 저기 길가 슈퍼에 잠시 정차하자.

농협 장례식장 바로 옆 스낵코너 같은 곳 옆 슈퍼에 들러서 이것저것 좀 사고 낚시 미끼도 좀 사고. 그러고 나가려는데 슈퍼에 붙어있는 작은 식당 같은 테이블에 먼가 희어 멀건한 국물에 면이 푸짐하게 들어있는 음식이 보였다. 넉살 좋은 우리는 "아저씨 이게 뭐예요? 처음 보는 음식인데요"

라며 물었고,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정말 기대도 안 했는데 "좀 먹어볼래요? 이게 고기국수라는 건데 , 뭍사람들은 못 먹을 수도 있어. 우리 먹으려고 한 거야. 파는 건 아니고"


"어이구 주신다면야 감사하지요~" 넉살이다. 우리는 넉살. 그곳 사장님은 베풂. 장사도 아닌 것. 그냥 아저씨 저녁으로 소주 한잔 하시려는데 우리가 딱 걸려든 것이고, 우리 앞에 놓인 그것.


그러니까 ' 국수는 맞는데 좀 두꺼운 면이고 이런 면은 서울에서 본 적이 없고, 국물은 순댓국 같은데 그것보다는 피 맛이 안나는 사골 맛도 안나는 설렁탕인데 , 그게 또 뼈 냄새도 안 나고 쿰쿰하지도 않은데 끈끈하고. 그 위에 어이구 보쌈보다 부들한 고기를 육지 그곳보다 두 배는 두껍게 썰어주셨는데 , 아차차 우리가 배가 부른 상태인 것을 속이고 국수를 받았구나. 벌 받는구나 했는데 ,.... 난 이렇게 부드럽게 넘어가는 면은 먹어본 적이 없다.'


가게가 아닌 테이블. 형광등 밑, 나중에 알고 보니 제주에는 흔한 지극히도 낮은 지붕 천장 그리고 나무 기둥의 집. 낡디 낡은 테이블. 저쪽 주방에서 아직도 우리에게 주고도 남은 국물이 끓고 있는 가스레인지.

그 저녁 애월읍 하귀 포구 앞 길가에서 받은 고기국수. 이게 몇 년이 지나고 보니 뭍으로 올라와 인기를 끌게 된 고기국수라고.


이후 제주 전역에 있다는 맛집들을 다 돌아보고, 고기국수의 명가라는 곳. 원조라는 곳. 서울에서 그렇게도 나이스한 서빙을 하는 곳까지 다 다녀봤지만, 그날 그 저녁에 ' 우리 먹을 건데 같이 나눌 텐가?' 하고 나눠준 그 고기국수. 원조의 맛을 , 아니 적어도 우리 평생의 원조 고기국수 같은 맛은 잊을 수가 없으려니.


동네 개발 되고 섬에 부는 바람은 그대로 거센데, 낮은 지붕들 집들도 많이 사라지는 제주도였다. 십몇년이 지나도 괜스레 애월 지나가면 그 가게를 아직 하실까 하고 두리번거렸는데 , 이번에도 초저녁 농협 장례식장 바로 옆 그 가게가 있는지 혼자 두리번 댔다. 지금은 가게는 아닌 것 같은데 다행히도 그 건물은 남아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와이프에게 많이 안 한 줄 알았다. 그러나 와이프에게는 고기국수를 먹을 때마다 내가 들려준 이 애월읍의 고기국수 이야기가 토씨하나 안 틀리고 버전 업 되지 않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그건 말이지. 어딘가 우리가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이곳이 늘 새로운 곳이라고 말하는 훈련이 되어 있는 것과 같은 것이야. 여긴 당신과 처음 온 곳이 맞습니다. 말이지. 제주는 그런 곳이니까.


그해 제주에 도착했던 나는 말이지. 주머니에는 돈 한 푼 없었는데

내일 아침에 물고기 잡을 생각에 그렇게도 풍요로운 눈빛이었을 거야.

이상하지? 반비례하는 것 같아. 점점 빈곤한 눈빛이 되는 것을 보면 말이지.


암튼 새로이 누군가에게 고기국수 이야기로 농을 칠 일은 없겠지만.

이렇게 출처가 분명한 원조 집 기억은 드문 경우니까 잘 기억해 둬야지.

애월읍 지나갈 때마다 풍요롭잖아. 내 찰나의 청춘과 눈빛은 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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