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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Sep 19. 2022

아니 나는 칵테일 새우를 싫어해

진액을 다 빨린 몸통을 무슨 맛으로 먹어.

해물 믹스 조리법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냉동된 해물을 흐르는 물에 해동해서 요리에 넣는다."


냉동실 안에 보관된 해물 믹스로부터 나는 냄새를 제거해야 그나마 먹을 만하다.


1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의 봉투를 처음 사와 뜯었을 때는 그래도 비린 향이 있었고, 지금처럼 플라스틱 냄새만 남지는 않았는데. 나름 노력해서 막아놓은 '냉동의 삶'도 그다지 평탄하지는 않았네.


해동을 하기 위해 철망에 해물을 놓고 차가운 물을 틀어놓는다. 소주도 좀 부어주면 잡내가 떨어진다고 하는데, '아니 냉동실에만 넣어 두었는데 왜 냄새가 붙은 거야. 무균실 아닌가? 그리고 왜 이렇게 말라비틀어져 있는지 원...'


해동이 어느 정도 된 해물 믹스를 볼에 담아 일본 요리 정종에 한번 버무려 준다. 소주보다는 낫겠지. 더 고급스러운 포장에 고급스러운 향, 그리고 알아먹을 수 없는 글자가 신뢰도를 높여준다.  잠시 담가놓은 해물 믹스에 비린내는 없다. 구수한 곡물향만 남았다. 성공이다.


강제로 퉁퉁 불어 끌어올려진 싸구려 해물 믹스는 무려'집에서 만드는 짬뽕'의 건더기가 된다. 사진을 찍으려면 잘 익은 새우 몸통이나 조갯살이 제일 위에 올라와야 한다. 

맛은 야채가, 아니 굴소스가 낼 것이고, 불향은 토치 불이 책임진다. 해물은 근사한 장식거리다.

이미 삶고 데쳐져 냉동고에서 맛도 향도 다 빼앗긴 해물에게 바다를 기대해 본 적 없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56946.html


비정규직으로 11년을 살았고, 지금도 싸우고 사는 사람. 

나머지 비정규직 강사들은 얼어버린 것일까.

오락프로에서나 나올법한 '균형이 깨진 기울어진 방'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은 '방이 기울었다'라고 따지는 저 사람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나도 언젠가 '바다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오겠지.라고 말인가.

물론 혼자 바다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칵테일 새우에게도 여전히 고통은 따른다. 모든 원인과 결과는 스트레이트 한 것이니 딱히 부채를 전가할 곳이 없다. 그러니 오롯이 내 것이다라고 믿는 수밖에. 기우뚱하게 헤엄치던 새우처럼 말이다.



해물 믹스는 잘 녹지도 잘 익지도 않는다. 운 좋게 강한 불을 만나면 그나마 건더기 처럼 보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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