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이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더 숲 상영관에서 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
이런 영화 일수록 돌비 애트모스가 작동하고 커다란 상영관에서 , 아차차 한가지 바램이 더해져야 완성된다.
' 관람객 수는 지금 이 상영관과 비슷하게'
영화는 도쿄의 화장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줄거리는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
이 영화에서 느낀점을 간단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나의 일상이 더 단조롭고 타이트해서 이 몇자 되는 뻘글을 남길 시간도 없어 영화의 내용이 거의 사라져 버린 지금 감상을 남기고 있다.
미리 밝히자. 감독의 전작이나 성향, 배우의 필모를 모르고 글을 남기는 것은 사실 예의가 아니다.
이 영화 처럼 극 플롯이 단순한 영화일 경우 학습이 필요한데 , 그렇게 하지 않고 감상을 남기는 것이 '내 방향'에 대해 더 정직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학습하지 않았다. 수상 이력까지는 팜플렛에 나와있어서 머리에 남아있었다.
퍼펙트 한 하루, 그런 날들이 반복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과연 무엇일까.
치열하고 가난하게 살던 20대 , 개똥철학 같은 이야기를 술잔을 기울이던 후배에게 던진적 있다.
"인생은 말이야. 극적으로 사는 것은 쉬워. 그런데 가운데, 딱 너처럼 별일 없이 사는 거 그거 참 어렵다"
상대적 빈곤을 이렇게 고깝게 술자리에서 비꼬는 것은 성찰이 덜 된 탓. 그러나 그 말은 얻어들었을때부터 머리에 박혀있었다. 인생은 중간 그리고 평화롭게 아무일도 없이 사는 것이 어렵다.
영화에서 내가 감탄한 첫번째 퍼펙트. 집안 깜박거리는 자판기의 캔음료.
아침을 규정할때 생물학적으로 눈을 뜬 그 시점보다, 유니폼과 열쇠를 챙겨들고 도쿄라는 다사다난한 씨줄 날줄의 궤도로 진입하는 첫 스타트. 고장난 듯한 조명이지만 내 의지가 투여되는 첫 시작. 캔음료. 영화 끝날때까지 주인공은 두어번의 퍼퍽트를 잃지만 (잃을뻔 했지만) 자판기는 굳건했다. 가장 안정적인 퍼펙트 데이.
이런 영화에서 고정된 장치들이 퍼펙트 함을 강조해 주는 것이 주인공의 연기에너지를 좀 더 채워준다.
화장실 변기. 대부분이 포세린(사기) 재질로 이루어진 변기들. 세면대. 주인공의 에너지가 더해지면 다시 사람을 만날 준비를 금새 마친다. 지구상에 설치된 기구들 중에 가장 오염이 적은 그래서 적은 힘으로 청소가 가능한 세라믹. 그러나 작은 크랙에도 깨질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불안한 것들의 받침대. 변기를 퍼펙트 한 장치로 읽었다.
이 것 이외에도 ' 순서대로 나열한 열쇠' ' 다다미 청소 하는 모습' ' 목욕신에서의 씻는 순서 반복일치' 등
배우가 감독에게 혹은 감독이 배우에게 코멘트 주었을 것으로 보이는 사소한 퍼펙트. 조연들이다.
아! 일본에 처음 갔을때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선술집에서 야구보는 일본 직장인들과 겸상 하는 것. 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그 그림의 사람들을 자신의 배경으로 쓰는 장면이 나왔다. 보통의 하루. 별거 아닌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하루. 루틴을 그리는 배경으로 지하철 선술집이 나왔다. 주인공이 야구 팬이 아닌것은 참 다행이다. 퍼팩트 데이즈 라는 제목이 사라질 뻔.
감독에게 갸우뚱 했지만 참으로 감사했던 장면 둘.
같이 일하는 동료 양아치 에게 돈을 빌려주고 정작 본인은 기름이 떨어져 차가 멈추는 그 장면.
먼가 억지스러웠지만 곱씹어 생각해보니, '퍼펙트 한 하루를 깨지 않기 위해 이렇게도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사소한 하루 마감으로 다시 궤도에 복귀시키는 것. 퍼펙트한 평화.'
'조카가 나타나고 동생이 나타나서 주인공의 과거를 끝내 해소하지 않고 적당히 물음표를 남기고 사라지는 것' 만약 과거 회상신이 더 나와서 주인공의 트랙이 길어졌다면 영화에 다이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 이 남자의 하루가 깨지지 않고 무사히 마치는 것' 이지 , 어떻게 전쟁터에서 살아왔는지, 아니면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었는지 ... 우리 들 모두 그런 아픈 , 머리 복잡한 과거 하나씩을 갖고 사는데 저 사연을 어떻게 듣고 녹이지?.
아날로그는 타협이 가능한 장비다. 테이프는 손으로 잘라 연결할 수도 있고, 더 간단한 시스템에서 디테일하지 않게 작동하기도 한다. 물론 디지털의 물리적 해석을 통해 '0과1'의 세절이 더 단순한 것이니 아날로그가 더 가치있고 디지털이 한심한 것 이라는 사유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 나오는 젊은 여자가 남자 주인공에게 잠시 호감을 느끼는 장면은 남자의 매력 보다는 '부서지지 않게 사는 것' 그 노력에 호감을 느낀것 아닐까 (물론 속은 이미 부서졌을 지도 모른다. 그런 척 하고 사는 것이지만)
아! 한가지 더 감탄한 퍼펙트 . 주인공은 변변한 네비게이션도 없이 인간의 동맥혈 과 비슷한 도쿄의 고가도로망을 근사하게 잘 통과한다. 매일이 퍼펙트다. 그정도면.
음악과 사진을 곁들여 준것은 '주인공이 살고 있는 이 소우주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가니쉬처럼 올려준 감독의 마음' 이 아닐까.
사실 음악은 별 감흥이 없었다. 아날로그 명곡들을 테이프로 재생하는데 그 음악이 근사하게 나오면 '후시더빙' 같은 느낌밖에 더 들겠는가. 트랜스포머 실사판 같은거지.
사진은 관객이 집중하기 좋은 장치였지만 , 이쁜 장치였다.
화면이 너무 근사해서 그 강 하구 자전거 퇴근길을 꼭 한번 찾아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곳이 과연 어디었을까.
아무일도 없이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것. 자기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그런 영화였다.
두번째 볼때는 꼭 '주인공이 청소하는 장면'을 다시 보고 싶다. 하루 그리고 다음날의 청소가 같았는지.
루틴을 깨지 않으려면 같아야 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