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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e May 13. 2021

1. 피아노는 때려 부셔야 제 맛이지

윤이상과 백남준, in Darmstadt



백남준의 달에 사는 토끼





모르는 곡을 처음으로 듣는 날이면,


그런 날이면 나는 되도록 곡을 듣지 않으려 노력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곡을 흘려보내려 노력한다.

새로운 곡을 처음으로 듣는 날이면 늘 그래왔다. 그 곡만을 집중해서 듣다 보면, 숲의 웅장함을 즐겨야 하는데 숲속에 있지도 않은 네잎 클로버만 찾아다니는 여행자가 된 느낌이라서 말이다.


노트북 한쪽 탭으로 곡을 재생 시켜놓고, 또 다른 탭으로는 음소거시킨 아무 영상이나 뒤적이며 의도적으로 정신을 분산시켜놓고 멍하니 영상을 보고 있자면 그제서야 막연하게 그 곡에 대한 콘티가 얼추 그려지곤 했었다. 그리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윤이상의 첼로 솔로곡 Glissees을 듣는 날도 그랬다. 눈은 음소거된 고양이 영상을 보고, 귀는 윤이상의 글리산도를 듣고 있던 순간, 머릿속에는 tv 속의 지지직거리는 오색의 선들이 잔뜩 펼쳐졌고. 그리고 그 순간 문득 궁금해졌다.


아, 이 곡 콘셉트. 백남준이다. 근데 그 둘, 서로 만난 적은 있었나?





좌 백남준 우 윤이상




거두절미하고 위의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위의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물론 그 둘은 만난 적이 있었다. 그것도 1958년 독일의 Darmstadt에서 개최된 “Internationalen Ferienkurse”에서 2주간 같은 방을 쓰면서 말이다. 윤이상은 훗날 글을 통해 존 케이지의 곡은 그 시대에서만 할 수 있었던 독창성이였다고 인정을 하긴하지만, 당시에는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참가자들은 모두 세계의 앞장서기를 자랑하는 터무니없는 곡을 쓰는 선수들. 그러나 어제저녁 이곡의 연주(cage의 곡)에는 정말 동곳을 다 뺀 모양이오."라고 할 정도로 신랄한 비판을 내뱉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같은 방을 사용하던 백남준은 존 케이지의 무대를 보고, "마치 모래를 씹는 듯한 느낌이었다."라고 할 만큼 경탄을 금치 못했다. 지루하고 전형적인 것을 싫어하던 백남준에게 존 케이지의 행위 예술적인 면이 강한 그의 곡은 먹어볼 생각조차 못했던 모래같이 새로운 질감의 예술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는 존 케이지의 무대를 보기 전까지는 미국인들이 동양의 전통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도무지 백인들이 동양의 전통에 대해서 뭘 알겠냐는 마음을 가진 것도 잠시 곧 천천히 무대에 몰입을 하기 시작했고, 콘서트가 끝날 무렵, 스스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노라 고백한다.



", ,  느꼈어요.
 
너무나 새롭고 매우 흥미로웠던 것은 그의 피아노 작품과 펠트만의 작품이었어요.
아주 의도적으로 지루하게 만든 것이었죠. 일부러 아주 지루하게 만든 것이죠.
물론 처음에 나는 아주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고요할 ) 지루하잖아요.
아마도 뭔가가 있겠다. 하고 마음을 바꿔 먹었죠.
그리고 뭔가 매우 심오한 것을 시도했어요."

- 백남준 / 모음곡 212 -



실로 그는 그 스스로도 존 케이지를 만나고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 연주 이후 존 케이지와 아주 절친한 사이로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종류의 예술들을 연출해내기 시작한다. 존 케이지를 만나기 전까지 백남준은 그저 당시의 음악만을 해체시키려 노력하는 음악가에 불과했다면, 존 케이지의 행위 예술적인 무대를 보고 난 이후 그는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오던 피아노를 비롯한 클래식 악기는 물론 브라운관과 위성과 같이 새롭고 전방위적인 재료를 이용하여 행위와 소리와 시간 모두를 예술을 포함시키는 현대 예술가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2주 동안의 짧은 만남, 그 후



다름슈타트에서 이어진 2주간의 짧은 동거 이후 그들은 서로 다른 길을 향해서 걷기 시작하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윤이상은 부인에게 백남준에 관하여 위와 같은 짧은 내용의 편지를 남긴다. 재미가 없으면 예술이 아니다. 라고 주장해오던 20대의 젊은 백남준을 40대의 중년 윤이상이 어떻게 바라봤을지 짐작이 되는 대목이라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사실 그런 충고를 하면서도 윤이상 그 또한 Darmstadt에서의 만남 이후, 그들이 나아갈 길이 자연스레 갈라질 것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번에 한국 학생 백남준 군과 동거하고 있으며 가끔 그의 지나친 현대음악에 대한 태도에 충고를 주기도 하오. 그는 얌전하고 퍽 진실한 사람인데 신기한 그리고 기괴한 음악에 흥미를 무척 기울이고 그것이 마치 광적인 것 같이 좋아 보이므로 나는 그것이 못마땅해서 자꾸 충고를 주곤 하오."


"그러나 여기 백남준은 다행히 머리가 좋고 또 그런 심미안도 있는 것 같소.
그는 유리를 깨고 무대 위에서 피스톨을 쏘아서 그 유리 깨지는 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서로 어울리는 것을 실제로 실험해보겠다고 하오. 나는 그에게 그 방면의 장래를 부탁할 수밖에 없소. (중략)
백군 스스로도 '음악'이라는 용어를 여기서부터 분열시켜야겠다고 말한 바 있소."

- 윤이상 -



<총체 피아노>,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 갤러리 파르나스, 부퍼탈, 1963년 3월




윤이상에게 했던 말대로 백남준은 독일 부퍼탈의 갤러리 파르나스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번째 개인전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에서 <총체 피아노>를 전시하는데, 이 작품은 원래 관람객이 그 위에 올라가서 걷거나 뛰면서 발로 연주할 수 있도록 의도되었으나, 전시 개막일에 커다란 도끼를 들고 나타난 요셉 보이스가 홀에 들어와 눕혀 놓은 이 피아노에 온 힘을 다해 도끼를 휘둘러 피아노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고 한다. 백남준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누구도 미리 알지 못했던 해프닝이었지만 이 즉흥극이 끝나자 현장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고, 전시 공간과 작품들을 관리 중이던 몬트베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양동이의 물을 보이스에게 끼얹었다고. 이 피아노는 전시 기간 동안 부서진 상태 그대로 방치되었고 관람객들은 이 의도적으로 부서지고 방치된 피아노를 구경하고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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