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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e Jul 05. 2021

3. 피아노는 때려 부셔야 제 맛이지(완)

백남준, "재미가 없으면 예술이 아니다."

백남준 아트센터 전시 <웃어>





동양의 작곡가로서 동양의 전통을 서구의 언어로 표현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졌던 윤이상과는 다르게 백남준은 꽤나 개인주의적인 방면으로 그의 예술을 표현한다. 사실 백남준의 예술은 구시대의 산물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데 의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통을 새로운 방식을 사용해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내던 윤이상의 음악과는 방향이 매우 달랐다. 윤이상이 그의 예술을 통해 한국의 민족과 민중, 민주주의에 대해 사회에 끊임없이 말을 건네 왔던 것과는 달리 백남준은 그의 작품을 통해 그저 예술 그 자체에 포인트를 주며, 상상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즐겁거나 불편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내가 왜 매우 지루한 음악을 만들지 않는지 물어본다.
왜냐면 나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을 매 순간 즐겁게 해야 한다.

- 백남준 <Guadalcanal Requiem>





우리나라 최초의 재벌 기업이었던 태창방직의 막내아들이었던 백남준은 돈은 물처럼 쓰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부모님 밑에서 금수저로서 풍족하게 자라온다. 하지만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본가를 타도하라는 마르크스의 말에 깊이 빠져들었으며, 쇤베르크의 '음악은 왜 아름다워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깊은 동감을 한다. 그는 그렇게 일상에서조차도 당연한 것을 깨부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현대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의 길에서 생소하고 제작비가 많이 드는 미디어 아트의 길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미디어 아트는 새로웠고, 그는 가난했기 때문이다.



조선 최대의 재벌 기업의 막내아들인 그가 가난하다니, 이게 무슨 말인고 하자니, 친일파였던 그의 가문은 6.25 전쟁이 끝난 뒤 군사 정부의 친일파 재산 몰수와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한 기업 경영자의 부재로 1961년 파산한다. 하지만 태생이 부잣집 아들이었던 만큼 평소에도 낙관적인 마음가짐을 가졌던 그는 오히려 어차피 가난해진 것, 재료는 제일 비싼 재료를 사용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브라운관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1963년,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의도적으로 변형시켜 그저 하나의 가구에 불과했던 텔레비전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시킨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백남준은 미디어아트의 길의 선두를 걷기 시작한다. 이 전시에서 백남준은 여러 가지의 장치가 달려있는 피아노 여러 대를 비롯해, 세 가지 종류의 실험 텔레비전을 선보이게 되는데 그 첫째로는, 사전에 내부 회로를 물리적으로 조작하여 여러 형태의 선들이 화면을 왜곡되어 보이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두 번째는 연결된 외부 장치를 이용하여 관람객의 참여로 작품을 만드는 것, 마지막으로는 고장 나버려 화면에 가로선 하나만 있는 텔레비전을 전시하는 것이었다.




<쿠바 TV>,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 갤러리 파르나스, 부퍼탈



일련의 예로, 위의 <쿠바 TV>는 당시 미국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사진에 보이는 TV는 녹음기라는 외부 장치와 연결이 되어있고, 그 녹음기에 입력되는 주파수에 따라 TV 화면에는 여러 가지의 이미지가 파장에 따라 다르게 연출이 된다. 이 작품은 그가 한국과 동양에 국한된 예술이 아니라, 외부 세계에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가 누구보다 이론적이고 통제된 기술인 과학을 이용하여 작가의 의도대로 통제되지 않는 새로운 시대의 오선지를 만들어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음악의 전시>, 영어로는 <Music for all senses>라는 주제를 가진 그의 첫 전시회는 Manon-Liu Winter, George Mačiūnas를 비롯한 여러 작곡가들에게 그만을 위한 곡을 만들게 할 정도로 새로운 영감을 준다. 위의 동영상을 보면, 줄이 다 끊어져 제대로 된 음조차 나지 않는 피아노 앞에서 연주자는 둔탁한 타악기의 울림만으로 곡을 진행해 나간다. 사실 음이 불분명한 타격 음은 청각의 범위에 들어가기보다는 촉각의 범위에 가깝다. 타격할 때 나오는 진동을 이용하여 전구에 빛이 들어오게 하고, 어린 시절을 기억하듯 온갖 장난감이 늘어져있는 건반 위를 보면 사실 윤이상의 곡을 듣고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백남준의 작품을 떠올린 것에 대해 의아했던 마음이 해소가 되는 느낌이었다.


현대 음악은 음악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과 생각, 그리고 존재하는 여러 가지의 모든 감각을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뭐 사실 낭만 시대의 음악도 고전 시대의 음악도 다르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현대 음악이란 유난하다. 그것만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일까. 고흐의 유화 물감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해바라기를 악기로 흉내 내고, 햇빛의 따스함을 음색으로서 표현하는. 백남준의 작품이 외부의 입력에 따라 각각의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지듯 음악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발전해 온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일을 한다. 빈자리를 찾는 것은 어렵다.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사회에 기여하는 것과 내가 재미를 느끼는 것은 나에게 있어 똑같이 중요하다. 나는 이것을 나의 보수주의라고 선택할 것이다.
내가 실패하더라도, 나는 나이다.

- 백남준 <Guadalcanal Requiem>




나에게 백남준의 작품은 기억 속에 미세하게 남아있던 윤이상의 음악에 대한 일종의 외부 입력이었다. 물론 백남준의 작품이라는 콘셉트는 온전히 주관적인 느낌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그 외부 입력을 통해 더 새롭고 다채로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동기를 얻었으며, 이것이 꽤 즐겁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꽤 괜찮은 외부 입력이지 않을까. 백남준의 말버릇처럼 재미가 없으면 예술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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