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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Jun 01. 2021

퇴근길, 도심 속 자연에서
쉬고 싶다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면 ③ 핀란드의 헬싱키


여행을 하며 외국인을 만날 때 말과 행동을 주의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건, 상대에게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핀란드는 ‘북유럽의 복지 국가’, ‘자일리톨’과 ‘사우나’ 등 누구나 단편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나라에 호감이 생겼다. 바로 프라하의 에어비엔비 호스트였던 핀란드인 ‘요나스’ 덕분이었다. 항상 미소 띤 얼굴로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으며 여자 친구를 따라 프라하에 오게 된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려주었지만, 그의 친절은 과함도 모자람도 없이 담백하여 진실돼 보였다. 그 덕분에 ‘핀란드인 참 괜찮네’에서 어느덧 ‘(이런 사람이 자란) 핀란드 참 좋은 나라 같네’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 것 같다.



북유럽의 길고 긴 겨울을 피해 햇볕이 따사로운 7월, 핀란드를 찾았다. 평년에는 여름에도 한낮 20도 정도로 선선했다는데, 내가 방문한 2018년 그 해 여름은 전 세계 이상 고온 현상 때문에 30도를 넘었다. 비록 지구 온난화 현상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추위를 질색하는 내게는 핀란드를 더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핀란드의 첫인상은 ‘한적함과 고요함’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은 나라 중 하나인 핀란드는 앞서 여행 한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다른 북유럽 국가들보다도 더 조용하여 마음이 편안해졌다. 



핀란드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푸른 자연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공기가 청량감이 느껴질 만큼 깨끗해서 일부러 숨을 더 크게 쉬고 수시로 심호흡을 했다. 당시 내 옆에는 나와 함께 3주간 북유럽 여행을 동행해 준 친구가 있었는데, 길을 걷다가 문득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에 가면 지금 이 순간의 공기랑 이 여유가 진짜 그리울 것 같아” 말이 가진 힘 때문일까, 지금까지도 일상 속에서 문득 그때를 떠올리면 그 순간의 햇살과 고요함, 청정한 공기가 온몸에 전해진다.



핀란드는 국토의 72%가 침엽수림이고 10%는 호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수가 무려 18만 개 이상이라고 한다. 핀란드 국명인 ‘SUOMI’도 ‘호수의 나라’라는 뜻이다. 핀란드에는 ‘만인의 권리(Everyone’s right)’라는 개념이 있단다. 바로 숲과 호수와 같은 자연에 국민이 자유롭게 접근하여 즐길 수 있다는 것. 심지어 그것이 누군가의 사유지라고 해도 말이다. 이는 국민들이 자연을 소중히 지킬 것이라는 사회적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세련된 목조 건물로 바다 옆에 자리한 ‘로일리(Loyly)’ 사우나를 찾았다. 이미 열기로 가득한 사우나 안에서 달궈진 돌에 물을 뿌리면 솨아악 소리가 난 뒤 갑갑한 공기에 턱 사로잡히는데, 잠시 후면 묘하게 심신이 정화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땀을 흠뻑 뺀 뒤 현지인들처럼 차가운 바닷속에 풍덩 뛰어들지는 못했지만, 바다를 마주 본 선 베드에 누워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러고 보니 잠시 벤치에 앉아서 쉴 때도,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와 달콤한 시나몬 빵을 즐길 때도 자연은 어디에서나 휴식의 배경이자 일부분이 되어주었다. 



핀란드의 작곡가 이름을 딴 ‘시벨리우스 공원’을 산책하던 중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한 남자를 보았다. 주위의 푸르른 녹지와 울창한 나무들과 하나로 어우러진 듯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가 평소에는 저렇게 홀로 사색하는 시간을 갖다가 학교나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과 활발히 토론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친구들과의 경쟁보다는 공존하는 방식에 익숙하여 행복하게 공부하는 방법을 체득하고, 국가의 지원 하에 평생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핀란드 인들의 성장하는 삶이 부러웠다.



‘2020년 유엔의 세계 행복 보고서 (2017~2019 기준)’에 따르면 핀란드가 1위를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61위) 예전이라면 ‘그래도 춥고 우울한 날씨가 사람들의 행복 지수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했겠지만, 직접 다녀와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중충한 날씨와 북유럽의 높은 물가라는 단점도 다음과 같이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겨울에는 따뜻한 실내에서 책을 읽으며 사색과 명상을 하다가 사우나에 들어가 몸을 녹이면 되고, 높은 물가, 달리 말해서 높은 세금은 결국 국민들을 위해 돌아갈 테니까 기분 좋게 낼 수도 있겠다’ 핀란드는 이런 합리화를 가능하게 할 만큼 내게는 살고 싶은 매력적인 나라로 느껴졌던 것이다. 


☆ 2018년 7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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