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험주의자 Jun 08. 2021

퇴근길, 오늘도 몸 건강히
귀가할 수 있었다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면 ④ 엘살바도르의 산살바도르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선진국들의 민 낯이 드러났고 한국의 이미지도 개선되었지만, 한 때 ‘탈조선’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 역시 회사 생활과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지쳤던 시기에는 외국 어디로든 간다면 파라다이스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다. 끝없는 경쟁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불공정한 사회,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등등 한국을 떠나고 싶은 이유는 많았다. 소설가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을 읽고 마치 내가 쓴 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그런데 이상했다. 장기 여행을 시작하면서 좀 더 많은 나라를 돌아볼 수 있었고 소위 선진국을 여행할 때마저 한국과 비교했을 때 불편한 점과 불합리한 점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한국이... 꽤 괜찮은 나라였구나!’



앞서 소개한 발리섬, 크레타섬과 헬싱키는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을 때 추천하고 싶은 장소이다. 반면 지금부터 소개할 세 곳은 한국을 떠나고 싶을 때 방문한다면 그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 장소, 다시 말해 오히려 한국을 그립게 해 주었던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시 말해서 ‘안 좋았던 곳’을 말한다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다.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이 전부는 아니며 똑같은 현상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곳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느끼게 해 준 곳을 소개한다면, 바로 지금 이 곳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하여 글을 쓰게 되었다. 



‘전 세계 살인율 1위’ (2017년 기준, 엘살바도르는 인구 10만 명당 60명이고 한국은 0.7명이었다, 그런데 2019년 지표를 보니 1/3이 줄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글 뒷부분에 나와있다) 치안이 좋지 않은 남미와 중미 국가들을 씩씩하게 지나왔지만, 엘살바도르를 수식하는 이 단어와 숫자 앞에서는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갈까 말까 정말 오래전부터 고민했던 것 같다. 하지만 루트 상 건너뛰기도 애매하고 솔직히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하는 호기심이 앞서게 되어 결국 엘살바도르의 수도인 ‘산살바도르’에 도착하게 되었다. 



숙소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직전 국가인 온두라스에서도 보았듯 불안한 치안을 상징하는 골목 사이사이에 놓인 무거운 철문을 만났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정겨운 골목이 이 곳에서는 경비원에게 신원을 확인받은 뒤에야 통과할 수 있는 삼엄한 장소인 것이다. 간단히 짐 정리를 한 뒤 점심을 먹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철문 안 쪽으로는 허리에 총을 찬 경비원들이 있었고, 잠시 후 이마저도 보이지 않는 인적 드문 스산한 대로가 나와 잔뜩 긴장됐다. ‘이러다 갑자기 누가 총이나 칼을 들고 내 앞을 가로막으면 어쩌지’ 오싹한 상상이 떠나지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보폭을 크게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쨌든 이 곳 현지인인 숙소 주인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해가 있을 때는 괜찮아. 그런데 밤에 혼자 돌아다니는 건 목숨을 내놓는 일이지” 



다음 날 시내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을 구경한 뒤 치킨 버스에 올랐다. ‘치킨 버스’는 미국의 옛날 스쿨버스를 개조해서 말 그대로 닭장처럼 복잡하고 딱딱한 좌석이 인상적인 버스다. 버스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곳곳에 눈에 띄는 군인과 경찰들, 숨 막히는 교통 체증과 한국의 미세먼지를 연상시키는 지독한 매연, 지저분한 거리와 무엇보다 사람들의 어두운 표정이 이 나라 서민들의 팍팍하고 고달픈 삶을 짐작하게 했다. 



엘살바도르의 살인율이 높은 이유는 국민의 무려 1%가 속해있는 갱단의 무자비한 행보 때문이다. 이들은 중미 다른 국가들처럼 마약 거래와 같은 무거운 범죄를 행하는 것이 아닌, 돈도 없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단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갱단에 가입하여 그 수가 줄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밖에는 먹고 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나라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이 쉽지 않아 보였지만, 전 산 살바도르의 시장인 ‘나이브 부켈레’가 2019년 남미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되고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록 인권 단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지만, 그가 시행 중인 강력한 ‘범죄와의 전쟁’이 힘을 발휘하고 있어 그의 지지율은 80%가 넘는다고 한다. 그가 부디 엘 살바도르의 진정한 ‘구세자(Salvador)’가 될 수 있길! 



국립 박물관을 찾았다. 인류의 등장부터 인디언의 이주, 스페인의 침략과 현재까지의 역사와 관련된 내용은 여느 박물관의 전시와 다름없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타이틀이 있었다. 바로 ‘엘살바도르인의 이민’을 주제로 한 전시가 전체의 1/3을 차지했을 만큼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상북도 만한 면적으로 중미에서도 가장 작으며 인도 밀도가 높은 나라이기에 더 넓은 땅을 찾아 나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군사 독재로 인한 오랜 내전, 이웃 나라 온두라스와의 크고 작은 전쟁, 경제적 빈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살고 싶어서’… 오늘 운 나쁘면 집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하는 나라를 돌아보니,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 2018년 4월에 방문  

작가의 이전글 퇴근길, 도심 속 자연에서 쉬고 싶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