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희 Sunghee Tark Jul 31. 2022

커피, 여성, 코스타리카 그리고 개발 경제학 - II

개발 경제학이 이끌어 도착한 코스타리카에서 만난 커피와 여성들

Paso a Paso: Step by Step


2014년 12월, 아비와 도착한 코스타리카 수도 산호세에 위치한 후안 산타마리아 공항은 생각보다 추웠다. 코스타리카는 열대지역이라 일 년 내내 이 나라에선 여름만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해발 고도 1,172미터에 달하는 이곳은 거의 일 년 내내 한국의 가을 날씨다. 많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축복받은 날씨라고 청하기도. 당연 해발 고도 0미터인 바닷가로 가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주 습하고 덥다. 니콜의 농장도 해발 고도가 겨우 600미터 정보밖에 줄어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엔 많이 더웠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닌, 우기와 건기로 나뉘고 이곳 사람들은 건기를 여름, 우기를 겨울이라고 칭한다고 했다. 적도를 기준으로 북쪽에 있지만, 다른 중앙아메리카의 나라들과 비슷하게 건기 (여름)은 한국의 겨울에, 우기는 그 외의 계절 (보통 3월 말에 비가 오기 시작하여 10월까지도 비가 온다)이다. 


글을 쓰는 시점이자, 약 5년여 정도 코스타리카에 거주를 하며 지켜본 결과, 다행히 내가 겪은 인도의 몬순보다는 낫다. 하루 종일 비가 오는 것이 아닌, 산호세에서는 정확히 12시가 땡 하면 비가 오기 시작하는. 매일 해와 비가 함께하는 날씨라 우기에도 어느 정도의 야외 활동도 겸할 수 있다. 참, 12시 땡 폭우도 기후 변화 때문에 최근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다행히 12월 인디애나는 겨울이었고 우리는 겨울 옷을 입고 산호세에 도착했다. 가족들을 먼저 보기 위해 이틀 먼저 도착했던 니콜이 우리를 픽업하러 도착해있었다. 니콜과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해둔 산호세의 호스텔로 이동했다. 니콜네 가족들이 사는 농장은 산호세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 정도를 이동한 후, 뻬레스 셀레돈 (Perez Zeledon) 주(State)의 수도인 산이시드로 (San Isidro)에서 또 다른 버스를 탄 후, 하루에 한 번에서 두 번 오는 마을버스 (혹은 부모님/친척들에게 픽업을 부탁해서)로 삼십여분 이동을 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코스타리카의 버스 시스템도 생소했지만 이 거리를 감당하며 공부하고 미국으로 장학생으로 가게 된 니콜이 새삼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방러인 나였지만, 나는 인천으로 가는 직행 버스가 있는 곳이었으니까...


버스의 제한적인 스케줄 때문에 오전에 이동하기로 약속을 하고 호스텔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산호세에서 탄 산이시드로행 버스는 붐볐다. 어깨를 맞붙이고 탄 버스 안에서 우리는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오는 몇 주간 어떤 일을 할 것이며, 어떤 것을 먹고 싶은지. 게다가 곧 크리스마스라 니콜의 가족들과 자신들의 방식으로 파티를 준비하고 있으니 잔뜩 기대를 하고 오라고 하셨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또 니콜은 우리가 온 김에 청소년들을 위한 워크숍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원래의 일정은 우리가 모은 펀딩을 받고 커뮤니티 센터를 짓고 관리하게 된 라 리베라 여성 주민들의 모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니콜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워크숍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우리가 대학교에서 하던 모임에서의 아이스브레이커 게임들, 리더십과 비즈니스 인큐베이터 프로그램, 컨프런스 등을 참여하면서 배웠던 스킬, 정보 등을 이 친구들을 위해서 워크숍 형태로 공유하는 것도 재밌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첫 코스타리카에서의 워크숍인 Paso a Paso 가 기획되었다. 


워크숍 기획 중인 아비-나-파울라(니콜의 어릴 적 친구) / 사진: 니콜
아비-나-니콜 -- 아마 스크립트 작성 및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당연, 이때만 해도 몇 년 후, 내가 코스타리카에서 교육에 포커스를 둔 워크숍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단체의 대표가 되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 


친구들과 워크숍을 기획하고 여러 색의 도화지와 포스터지, 사인펜을 구매한 후 스크립트를 짰다. 1학년 1학기부터 매 학기마다 스페인어 수업을 101부터 시작해 듣고 있었지만 여전히 나와 아비의 스페인어는 워크숍을 진행할 정도로 유창하지 않았다. 나의 소개와 게임 진행, 그리고 제일 중요한 워크숍 콘텐츠 까지, 모르는 단어는 검색하고 메모지에 적어 외웠다. 


워크숍은 3일로 기획하고 첫째 날 밤에는 니콜네 부모님 농장에서 캠핑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워크숍 당일. 10명 남짓한 라 리베라에 사는 청소년들이 참가했다. 나이는 15살에서 19살. 니콜의 여동생인 다니엘라가 제일 어린 참가자였다. 자신의 스토리를 픽사의 템플릿을 사용해 제삼자의 스토리인 마냥 적어보고 이야기 나누는 스토리텔링 워크숍과 비전 보드 만들기를 내가 진행하였다. 

2017년부터 bean voyage에서도 사용했던 Pixar의 스토리텔링 템플렛 (Once upon a time --으로 시작한다)



아비와 니콜은 공감 능력 (empathy)이 어떻게 커뮤니티 프로젝트 기획과 진행에 필요한지와 디자인 띵킹 (Design Thinking)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사이사이 팀빌딩을 위해 게임을 진행하고 많이 웃었다. 마지막 날엔 참가한 친구들이 자신이 구상한 커뮤니티 프로젝트 발표가 있었는데 길가의 쓰레기를 예방하기 위해 동네 곳곳에 분리수거 통과 쓰레기통을 설치하겠다는 친구, 새로 생기는 문화센터의 공평한 사용을 위해 수기 예약 시스템과 방명록을 구축하겠다는 친구, 버려지는 폐지를 모아 공책을 만들어보겠다는 친구 등, 샘솟는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부족한 스페인어 때문에 모든 순간의 모든 단어와 이야기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수줍음 뒤에 보이는 어린 친구들의 열정과, 꿈, 그리고 그보다 자신의 동네에서 직접 보고 싶은 변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에 많은 영감과 감동을 받았다. 


워크숍이 끝난 후에는, 주민 여성 단체와 함께 준비한 라 리베라 게임 나이트를 위해 착수했다. 니콜 어머니께서 메인 음식을 준비해주시기로 하고, 여성 단체의 멤버들도 각각 다과와 음료를 준비해오기로 했다. 우리는 주민들의 단합을 돕기 위해 게임을 준비했다. 빙고를 포함해 여러 게임을 준비하고 상품을 구매했다. 샴푸, 바디 워시, 비누 등 제한적인 예산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들을 사 아직은 터만 있는 커뮤니티 센터 부지로 향했다. 땅은 흙바닥이었고 기둥과 지붕만 간이로 쳐져있는 곳에서 우리는 저녁 내내 동네가 떠나가랴 깔깔 웃고 게임을 했다. 




한 달여 기간 동안 코스타리카에서 지내며 커뮤니티 프로젝트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많이 주어졌었다. 한국에서 나름 작은 동네의 아파트에 살았지만, 사실 어린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는 많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기 전에 어른인 누군가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거나, 혹은 내가 불편한 점은 어른에게 말해야 된다고, 그럼 그들이 그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해결 못 하는 문제라고- 배우며 자랐던 것 같다. 가족이 직접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다. 


어릴 적 내 나름의 다양한 기획과 프로젝트를 해오며 살았지만, 사회가 겪는 현상에 대한 궁금증은 적었었다. 내가 만든 인라인 스케이트 그룹이나 커플링 그룹은 내가 본 나름의 문제점을 해소하고는 있었으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학 시절에는 개발 경제학을 공부하며 사회적 현상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져왔고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대학교 챕터의 리더로 활동하면서 편지 쓰기, 북한 인권 문제 알리는 다큐멘터리 상영하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지만, 어릴 적 나와, 나의 시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어린 친구들과 생각하고 대학교 때 내가 배운 것들을 빨리 습득하고 실행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보고 싶은 변화를 만드는 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구나-를 다시 한번 새겼다. 내가 생각한 루트로 내 미래를 직접 만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것도 이 당시에 느꼈다.




남은 기간 동안에는 커피 산업에 대해 더 가까이 배울 수 있었다. 12월이었기에 동네는 커피 수확으로 한창 바빴고 나는 자연스럽게 커피에 대해 배웠다. 커피가 열매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모든 주민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커피 열매를 수확하는 데 쓰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어떻게 커피를 판매하고 가격을 매기고 생활을 하는지를 커피 내리는 것보다 먼저 배웠다. 


bean voyage를 있게 한 내 첫 커피 열매는 2014년 12월, 코스타리카의 페레 셀레돈 (Perez Zeledon)에서 만났다. 


라리베라에서 워크숍 후.


To be continued. 












작가의 이전글 커피, 여성, 코스타리카 그리고 개발 경제학 - 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