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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루카 Dec 06. 2021

혼자서 철학책 읽고 오류에 빠지면 뭐 어떻습니까?


얼마 전에 철학카페에 철학을 독학으로 배워도 어떨지에 대한 질문글이 올라왔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가 철학을 독학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쌓아 본 사람이기 때문에 "추후 논문을 쓸 게 아니면 독학해도 된다"는 취지의 답글을 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을 잘못 이해한다고 사람 인생이 어디 잘못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철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스피노자의 <에티카>, 칸트의 <윤리형이상학의 정초>를 읽었습니다. <방법서설>은 비교적 쉬웠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으로 읽은 <에티카>와 <윤리형이상학의 정초>였습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서 끙끙 앓았었죠. 그 사이에 저는 한국어인데 한국어가 아닌 듯한 글씨를 눈 앞에 놓고 공상을 했습니다. 제가 당장 책에서 이해한 내용을 제 경험에 대입시키면서 말입니다.

그 때 이해한 내용은 지금 생각하면 원저자의 의도와 먼 내용이었지만, 그 잘못 이해한 내용 덕분에 이제껏 살면서 현실 속에서 익숙하게 여길 뿐 무심코 지나쳤던 문제를 사색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 도중에 무릎을 탁 치기까지 했습니다. 정신적 에너지를 쏟아가면서 나만의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게 잘못된 철학 공부라면 제가 엄한데 삽질을 한 게 되는 걸까요?

그 카페의 누군가는 괜히 철학을 커리큘럼대로 안 배우고 잘못 독학했다가 위험한 사상으로 빠지는 수가 있다는 의견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그건 그냥 그 사람 자체가 처음부터 이상한 마음을 품고 철학 공부를 시작한 경우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사람들은 잘 짜인 커리큘럼을 배워도 얼마든지 이상한 사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반면 좋은 뜻으로 철학 독학을 시작한 사람은 삽질을 하더라도 꼭 원저자의 글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새로운 책들과 정보가 거래되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독학으로 잘못 채운 단추를 교정할 기회가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다는 뜻이죠. 어차피 책을 이것저것 읽으면서 내용들을 비교 및 대조하다보면 언젠가 내가 과거에 이해했던 내용들로 돌아와 시험대에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책 한 권 읽고 삽질을 하면 뭐 어떻습니까? 삽질을 했을 때 쏟은 노력은 기억에 오래 남기 마련입니다. 나중에 다른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오류를 깨닫게 된다면, 교정된 지식이 또 새롭게 느껴지고, 더 나아가 배움의 신선한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철학은 인류, 자연, 사물, 현상 등을 심도있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결코 쉬운 학문은 아니지만, 어떤 철학자가 어떤 철학을 주장했는지를 바로 안다고 해서 반드시 내 사고방식이 윤택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애초에 철학은 현실에 적용할 일이 별로 없는 학문일뿐더러, 재미로 배우는 학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철학을 엄격하게 배워야 하는 거창한 학문으로 본다면, 배우는 입장에서 정말 피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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