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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루카 Dec 06. 2021

정치적 성향이 인격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나는 여자친구와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었다. 당시 나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자부심에 젖어 있었고, 집회가 해산된 밤 시간이 되어서도 선행 모멘텀이 남아 있었다. 그게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본지 어느 날에는 사람들 대여섯 명이 밤늦은 광화문역 출구 앞에서 환경미화원을 도와 바닥에 붙은 부착물을 긁어내고 있었다. 그 때는 나도 달려가서 동참했다. 다리에 쥐가 나도록 쪼그려 앉은 채 손톱에 찬 바람을 맞아 가며 긁어냈던 종이 조각들이 내 선한 인성을 보증하는 수표처럼 느껴져서 정말 기분이 좋았었다.


민심은 정권을 바꾸었고, 나와 여자친구는 결혼식을 올렸다. 또 시간이 흘러 딸이 태어났고, 그 딸은 자라서 엄마 아빠 손 잡고 나들이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딸 아이는 뚜벅이를 부모로 둔 탓에 세 살의 나이치고 지하철이 매우 익숙했다.


2019년의 어느 토요일 오후에는 온 가족이 5호선을 타고 화곡으로 향했다. 그런데 타이밍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한 때 촛불을 들었었던 우리 부부와 대척적인 사상을 가진 어르신들이 같은 칸을 꽉 메우고 계셨던 것이었다. 평소에 그들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나는 딸을 공중에 안고 조용한 구석을 찾아서 섰다. 어차피 그들 모두 광화문역에서 내릴 것이기에 몇 정거장만 참으면 그들의 시끄러운 말소리와 작별할 수 있을 거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런데 지하철 문이 닫히고 얼마 안 가서 내 인간관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났다. 발단은 60대 또는 70대로 보이는 남성이 우리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면서부터였다. 그 때 나는 남성의 눈빛에서 2002년 거리 응원 후 쓰레기를 정리하던 붉은 악마의 모습, 태안의 해안에서 기름때를 제거하던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그리고 시위 후 바닥의 종이 조각들을 긁어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같은 대의명분을 공유하는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선행을 시작하면 경쟁이 뒤따르는 게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남자 어르신이 자리를 비키자 그 양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님들 두 명이 질세라 아내와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 준 것이었다. 참고로 나는 헬스장에서 스쿼트 80kg을 5회 5세트로 들었기 때문에 양보를 받아야 하는 처지와 전혀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원래 자리에 앉아 있었던 어르신 세 분과 더불어 그 주위에 서 있던 어르신들 모두가 우리 부부에게 앉기를 바라는 눈치를 주었다.


평소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앉을 자리가 생길 때도 양보부터 해 왔던 나는 이번에 양보당하고 말았다. 어르신들 딴에는 우리 가족에게 자리를 물려 준 게 아니라, 노병답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물려 준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정의를 바로잡는다는 마음가짐으로 광화문에 가고 있었고, 거기에 한껏 고양되어서 우리 가족에게 선행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세대가 달랐고, 정치적인 성향도 달랐지만 배려와 선행에 대한 감수성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날을 계기로 나는 진영논리대로 남을 평가하는 습관을 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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