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년을 보내며

이동과 정착 사이

by 마인풀 라이프

2025년은 천천히 가는 듯했는데, 뒤돌아보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해였다.

시간이 많은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달력의 끝이 가까워져 있었다.


해의 초반은 이동으로 시작했다. 하와이에서 한 달을 살았고, 남편은 사직서를 내고 우리는 멕시코 와하카로 떠났다. 멕시코시티를 돌며 도시의 리듬을 들었다. 아루바에서는 가족들과 바닷바람을 나눠 마셨다. 그 시간들이 한 줄로 이어져 내 마음의 지도에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우리는 한국에서 세 달을 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돌아간 한국은 ‘기억’보다 더 선명했다. 더 깨끗해졌고, 먹는 것 하나에도 확실한 기준이 느껴졌다. 거리의 표정, 시스템의 정돈, 사람들이 움직이는 속도까지. 전체적으로 “선진국”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런데 무엇보다 새로웠던 건, 엄마가 된 뒤의 한국이었다.


엄마의 눈으로 보니, 한국은 다른 나라였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을 ‘개인의 문제’로만 두지 않고, 국가가 함께 책임지려는 의지가 곳곳에서 보였다. 물론 저출산이라는 압박 속에서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 움직임을 보며, 한국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를 키운 나라를, 이제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나라로 다시 읽게 된 셈이다.


한국에서의 세 달을 지나, 우리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젠 커 가는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고, 적응이라는 작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나도 조금씩 일상을 되찾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2년 만에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오래도록 “시간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믿어왔다. 피곤도, 답답함도, 내 안의 멈춤도.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하지만 시간이 생기자마자 모든 게 해결되진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쌓인 피곤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잠깐 쉬면 회복될 줄 알았는데, 내 몸과 마음이 ‘나’로 돌아오는 데는 1~2주가 아니라 적어도 1~2달이 걸렸다. 멈춘 시간만큼 회복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제야 배웠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나니, 2025년이 2주 남아 있었다.


올해를 정리해보면, 몇 가지 문장으로 나뉜다.


엄마가 된 뒤 달라진 가장 큰 것은, 삶의 모든 결정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어디로 여행을 갈지, 어디서 살지, 무엇을 먹을지, 아주 사소한 선택조차 아이를 기준으로 재정렬된다. 어쩌면 내 존재감은 조금 희미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보람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요즘은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해서, 아침과 저녁의 귀여움이 일종의 ‘일상적인 기적’이 되었다. 곁에 없으면 계속 생각나는, 사랑이 습관처럼 몸에 배는 존재.


동시에, 아이는 나와 남편 사이의 한가운데에 존재한다.
우리는 이제 ‘둘’이 아니라 ‘셋’의 리듬으로 산다. 우리의 하루는 아이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부부의 시간은 종종 가장 마지막에 배정된다. 사랑이 줄어든 게 아니라, 사랑의 동선이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다시 찾는 일.”


엄마지만, 나는 나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나의 존재감은 어떻게 함께 자랄 수 있을까. 그 균형을 아직도 연습 중이다. 요가를 가고, 커피를 마시고, 친구들과 점심을 먹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에서 알게 되었다. 내게는 결국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창조하는 감각, 작든 크든, 세상에 내 흔적을 남기는 일. 그게 나를 다시 나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을.


텍사스의 삶은 이제 익숙해져 편하다. 편하다는 건 큰 축복이다.
하지만 다시 다른 주로 옮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친구, 네트워크, 익숙한 길, 자주 가는 카페, 말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사람들. 새로운 곳에서 다시 뿌리를 내리는 일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움’은 설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담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편안함에 안착하기 전에, 선택할 수 있을 때.


2025년은 좋은 해였다.
다이나믹했고, 많은 장면을 남겼고, 나를 여러 번 흔들었다. 그리고 흔들리는 동안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다가오는 2026년에는, 엄마로서의 나와 ‘나’로서의 내가 서로를 지우지 않고 함께 커가길 바란다.
아이를 중심에 두되, 내 삶을 중심에서 밀어내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해.
천천히 가되, 후회 없이 나아가는 해.


그런 해를 기대해본다.
































일요일 연재
이전 04화믿음의 중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