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교 이야기'가 있다. 토끼, 새, 물고기 등 많은 동물들이 모여 학교를 만들었다. 그 학교에서는 달리기, 날기, 수영 등 모든 걸 다 배웠다. 달리기는 잘하지만 날지는 못하는 토끼는 날기 위해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렸고, 결국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도 다쳤다. 그래서 잘하던 달리기마저 할 수 없어서 달리기에서 C를 받았다. 새는 잘 날 수 있었지만, 두더지처럼 땅 파려다 날개를 다쳐 더는 날수도 없었다. 모든 동물 다 이런 식이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by 레오 버스카글리아
난 어릴 때부터 '4킬로 우량아'라는 소리를 듣고 자라왔다. 4kg이면 얼마나 큰 지 감 잡을 수도 없을 만큼 어린 나이에, 뜻은 모르지만 왠지 기분 나쁘게 들리던 '우량아'라는 소리를 달고 다녔다. 이웃들은 나를 볼 때면, '식빵'이 떠오른다 했다. 그렇게 남들보다 많이 뚱뚱한 몸, 큰 키로 지내다 보니, 항상 평범한 아이들이 부러웠다. 키도, 몸무게도 평균치에 속하는 아이들, 거기다가 운동, 노래, 미술에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모든 걸 다 그럭저럭 해내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난 항상 대한민국 평균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목표는 무언가 잘하는 게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가 티 안 날만큼, '딱 중간만 가자'가 생활신조나 다름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 평균치를 따라가기가 점점 더 버거워졌다. 대학 갈 때, 취업할 때, 결혼할 때도, 연봉, 재산 등 모든 부분에서 나는 대한민국 평균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만 갔다. 어쩌면 하위에 더 가까웠다. '왜 나만 별날까?' 고민하던 날들이 수없이 많았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데다가, 운도 좋지 않아 남에게는 없는 사건 사고가 나에게만 터질 때면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취업할 때가 다가오자, 뉴스에서 대학 졸업생 평균 연봉은 얼마라고 나오던데, 그런 곳에 이력서조차 내기 힘들었고 결국 난 정규직 취업도 포기를 하고 작은 학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벌써 8년 차 학원 강사다. 초등학생, 중학생 어린아이들을 8년 동안 매일같이 마주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아이들은 어림잡아 천명은 될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오랜 시간 동안 가르치고 마주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어릴 때 동경하던 딱 중간이던 그 많은 아이들은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이다. 분명 내 눈에는 나를 뺀 많은 아이들이 비슷한 수준인 것처럼 보였는데, 다른 곳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니 비슷한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 성향 등 다 달랐다. 형제, 자매는 물론이고, 심지어 쌍둥이마저도 달랐다. 점수가 같은 아이들이라 해도 실력이 같은 건 아니었다. 어떤 아이는 어휘력이 강해서 어휘는 강하지만 실제 듣기에는 약하다. 또 글 보고 이해는 잘하지만 실제로 문제만 보면 틀리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이 열 명 있다면 열 명 모두 다 달랐다. 지금까지 본 아이들 모두 같은 아이들은 없었다. 열 명, 백 명, 천 명을 봐도 다 달랐다. 아마 앞으로 만 명을 보더라도, 그 생각에는 변함없을 것 같다.
모든 아이들,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르고 모두 다 특별하다는 가장 단순한 진리를 직접 깨닫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짜 다 다른지, 한참 동안 수없이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동경하던 평균의 아이들은 어느 날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걸까? 시대가 변해 요즘 아이들만 독특한 개성을 타고 난 걸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처음부터 존재 안 했을 수도 있다. 좀 더 예를 들어 보면, 학원에서 시험 보고 아이들 점수로 반 평균, 학원 평균 점수를 낸다. 하지만 실제론 그 평균에 딱 떨어지는 아이는 없다. 30대 평균, 40대 평균, 대한민국 평균, '평균'이라는 것은 수치 상에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찾을 수 없는 이상적인 숫자에 불가능한 것 일수도 있다. 지금까지 내가 늘 동경하던 기준으로 삼던 아이는 실제로는 없는 아이였던 것이다.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난 딱 그렇게 살고 싶다고 꿈꿨던 것이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동물학교의 동물들처럼, 무언가 특별하게 잘하는 걸 하나씩 다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특별나게 잘하는 그 무언가를 학교에서 배우고, 시험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신 우리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더 잘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에서 말한 '동물학교'에서는 과연 누가 1등으로 졸업을 했을까? 달리기 잘하는 토끼도 잘 나는 새도 아닐 것 같은데, 누구였을까? 이 학교에서 수석 졸업한 건, 바로 뱀장어였다. 뱀장어가 모든 걸 다 잘 한건 결코 아니었다. 특출한 재능이 없던 뱀장어는 어느 과에서 지진아 취급을 받았지만, 모든 과목을 다른 동물들에 비해 그럭저럭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석 졸업생이 된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도, 우리의 재능과는 상관없이 많은 분야에서 나쁘진 않은 뱀장어가 되기 위해서 힘 빼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