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희 Jun 30. 2022

도미노, 하루의 시작

나의 하루, 나의 아침

  거실에서 들려오는 알람 소리가 알아서 꺼지길 간절히 바랐지만, 계속 울려대는 소리에 나와서 껐다. 시간을 보니 5시 54분. 이번에는 알람이 울리는 4분 동안이나 침대에서 버텼구나. 다시 기어들어가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꽉 찬 월요일이라 졸린 눈을 비비며 양치질부터 시작했다. 나의 하루는 크게 출근 전, 직장, 그리고 퇴근 후로 나뉘는데, 이중 가장 숨 막힐 듯한 시간은 바로 아침이라, 출근 전까지 내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 논어 필사로 정식으로 하루를, 한주를 시작했다. 논어 필사를 이미 반년도 넘게 해왔지만, 여전히 한자는 따라 그리기 바쁘고,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되지 않는 때가 정말 많다. 그럼에도 나는 필사를 한다. 내용을 다 기억하려 하기보다는 복잡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다. 내용과 상관없이 필사를 하다 보면, 내 안에 있던 불안감이 좀 잠잠해진다. 필사 다음 선택한 것은 영어공부였다. 오랜 시간 동안 영어 공부해왔고, 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만 영어에 대한 갈증은 줄어들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조금씩 하는 공부로는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얼마 전에 큰 맘먹고 고등학생들이 듣는 영어 강의를 하나 신청했다. 왜 나는 이 강사님 수업을 이제야 듣게 된 걸까, 후회 아닌 후회도 해보지만 이제라도 듣게 되어 다행이다 여기며 점점 강사님의 찐 팬이 되어가는 중이다. 


  30여분의 짧은 영어공부를 마치고 잠깐 톡을 확인하다가 '앗'하는 괴성을 지르고 말았다.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투두 리스트를 열심히 작성한 보람도 없이 이미 내가 놓친 게 하나 있다니 허탈했다. 지인을 통해서 톨스토이 책 읽는 수업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고전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신청했고 전날 그룹 채팅방에서 인사도 나눠놓고는 정작 시작하는 날 아침이 되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시간은 7시 20분을 향해 가고 있어서 출근 준비를 할지, 강의를 들을지 망설이다가 결국 강의 먼저 들어보기로 했다. 지금 잠깐이라도 틈을 내지 않으면, 그날은 강의를 듣지 못할 것 같아서, 강의를 선택했다. 다행히도 강의는 길지 않았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20여분의 강의였다. 첫 강의는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도 않아서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강의 선택은 탁월했다며 나 홀로 칭찬을 하다 출근 준비하러 일어나 가는 길에 잠시 보니 밥통에 밥이 없다. 아이가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밥에 김이라도 싸서 한입 넣어줘야 하는데, 밥이 없다. 밥이 떨어진지도 몰랐다. 하필이면 또 컵밥도 없다. 결국 정신없이 한 손으로는 쌀을 씻으면서, 또 다른 손으로는 건조대에 있는 그릇들을 다시 찬장으로 옮기면서, 눈으로는 그밖에 눈에 거슬리는 게 뭐가 있는지 한번 살펴보기까지 했다. 정말 빠르게 움직인 것 같은데, 전기밥솥에 쌀을 올려놓고 보니, 시간은 8시 8분이다. '망했다'는 세 글자가 입 밖으로 절로 나오면서,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고 욕실로 뛰어 들어가 준비를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정말 아침 전쟁이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기록조차 하기 어렵다. 모든 일을 최소 2-3가지 동시에 한다. 아이를 깨우면서 옆에서는 이불 정리를 하고, 또 아이의 옷을 챙기면서 아이의 학교 가방을 챙기기까지 한 번에 해내야 한다.


  큰 아이를 급하게 준비시켜 학교에 보내고 그다음은 둘째가 남았다. 유치원 차량이 올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서, 살짝 더 여유는 있지만 아이가 먹을 저녁 반찬까지 미리 준비해두려면 짧은 틈도 허투루 쓸 수가 없었다. 내 몸은 숨 가쁘게 움직이다가 문득 그냥 아무것도 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하는데 이날은 이마저도 사치였다. 정말 아차 하면, 모든 게 다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월요일이기에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아이를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잠시 한숨 돌리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못다 한 주방 일을 마무리했다. 해도 티 안 나는 주방일과 잡다한 집안일을 마치고 나니 이제 10시다. 차 한잔의 여유도 없이, 이번엔 노트북 앞으로 향했다. 월요일마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짬을 내 하는 일이 있는데, 그 일까지 최대한 집중해서 마무리를 했다. 그러고 나니, 몸 안의 긴장이 풀린 듯, 갑자기 허기지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대충 토스트 하나 사 먹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회의가 30분 정도 늦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서 먹기로 결정했다. 빠르게 식사 준비해서 텅텅 비어 있던 내 배를 채우고는 다시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반나절뿐이 안 보낸 하루, 출근을 하지도 않았고 아침에 작성한 투두 리스트는 절반도 못했다. 하지만 벌써 내 에너지는 다 빠진 것 같다. 왜 나는 이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는 걸까, 내가 하나를 놓치면, 모든 게 다 밀려버리는 도미노 같은 하루를 왜 보내는 걸까, 잠깐의 자책도 해보았다. 필사도, 영어공부도, 또 책 읽기도 포기하면 여유 있는 하루의 시작은 될지 모른다. 편한 마음으로 아침을 뒹굴거리며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흘려보내면, 후에 내게 찾아오는 공허함이 더 크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내 아침은 변함없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5월의 어느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