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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Nov 27. 2022

공수래공수거

바람처럼 부질없는 것


"XX 오빠가 오늘 죽었단다"


  일하는 중 발견한 엄마의 메시지, 근무 시간에는 좀처럼 내게 연락을 하지 않는 엄마라 이상한 느낌이 찾아왔다. 생각도 못했던 문자에 갑자기 심장이 쿵쿵쿵 뛰어댄다. 사촌 오빠가 세상을 떠났단다. 건강에 문제없던 그가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건 10년 전 가족 친지 모임이었다. 가족 모임에서 그는 중년 가장으로 남부러울 게 없어 보였다. 문제없이 이쁘게 잘 크고 있던 아이들, 그리고 그의 안정적인 직장까지 편안한 노년에 접어들겠구나 싶었다. 대학 졸업했지만 파트타임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해서 부모님으로부터 눈치 보면서 간신히 용돈 받아 지내던 나는 그 앞에서 더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그와 나는 고종 사촌이긴 하지만 나이 차이로 직접 연락을 하지 않고 엄마를 통해 간간이 소식만 전해 들었다. 얼마 전에 들은 그의 생활은 10년 전 내가 알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직장도 없이 힘겹게 지내고 있었고 한평생 살면서 일해보지 않았던 그의 부인이 힘겹게 일하면서 대신 집안을 꾸려간다고 들었다. 그 소식도 꽤나 충격적이었는데 이번엔 그가 세상을 떠났단다. 혹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아닌지, 그의 상황은 그런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다행히도 안 좋은 선택을 한 건 아니었다. 그의 엄마, 그러니까 고모의 생일 모임을 조금 앞당겨서 한 그날 새벽 그는 쓰러졌고 며칠간 생사를 오가다가 결국 고모 생일날 눈감았다고 한다.


  10년 전처럼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척들, 10대 아이들이던 사촌의 아이들은 이미 훌쩍 커버려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늘 깍쟁이 사모님처럼 보이던 그의 부인은 몇 년 간 가장 노릇을 한 탓인지 더 이상 깍쟁이도, 사모님도 아니었다. 멈춰있던 세월의 흔적이 한 번에 그녀를 덮친 듯 전에는 보이지 않던 주름만이 그녀의 얼굴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여 년 전-

"공수레~ 공수거~ 바람처럼 부질없는 것......"*

  인기 그룹이 TV에 나와서 노래를 열창한다.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던 내게 그는 물어본다. "공수래공수거가 무슨 뜻인지는 아니?" '공수래' 철자조차 제대로 몰라 '공수레'로 생각했던 나였기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빈손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도 모아놓은 것 없이 빈손으로 죽는다는 말이야. 그러니 바람처럼 부질없다고 하잖아."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제 이 세상에 태어난 지 1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던 내게 죽음은 멀고도 먼 이야기였다.


  사반세기가 지나 그는 내게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죽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어릴 때는 지역에서 소문난 수재 소리를 들었다던 그는 인생에서 성공적인 가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바퀴가 빠졌는지 더는 꼼짝도 못 하고 그 상태로 오랜 시간 멈췄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지나온 날들이, 성공이라던 순간도, 실패라던 순간도 결국 허공 속에 사라져 버렸다. 그의 엄마의 생과 그의 사가 한 날에 만났다.





* HOT의 열맞춰 중에서....

** 공수래공수거 -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뜻. 인생의 무상과 허무를 나타내는 말로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손에 들고 온 것이 없이 빈손으로 태어나는 것처럼, 죽어갈 때도 일생 동안 내 것인 줄 알고 애써 모아놓은 모든 것을 그대로 버려두고 빈손으로 죽어간다는 의미이다.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를 지나치게 탐(貪)하지 말고 분수에 편안하면서 본래의 마음을 찾는 공부에 노력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죽어갈 때 꼭 가지고 가야 할 중요한 것이 있으니 청정일념(淸靜一念)이다(《정산종사법어》 생사편9).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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