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닮았네."
어릴 적부터 무얼 하든 엄마 닮았다는 이야기를 줄곧 듣곤 했다. 유치원 때 내가 글씨를 이쁘게 써도, 그림 잘 그려도 엄마 닮아서 그런 거라는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내가 심술부린다 하더라도 나는 엄마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나는 더한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나는 왜 엄마 닮았다는 소리가 싫었을까? 말하는 이에겐 그저 내게 엄마의 재능이 보여서 하는 소리였을지 모른다. 엄마처럼 잘하니까, 혹은 정말 성격이 비슷하니까 그냥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 엄마는 어딘가 아파서 늘 기운이 없었다. 엄마가 날 직접 들어서 안아줬던 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엄마를 닮았다'는 말에는 그런 것도 포함된 건 아닌지 어린 마음에도 싫었다. 어릴 적엔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며 매일 약을 먹는 게 하루 일과였기에 나도 모르게 "엄마 닮았다"는 말에는 엄마의 재능, 성격과 동시에 약한 몸을 닮았다는 건 아니었을까 혼자 추측하곤 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무릎 관절염과 허리 디스크를 앓고 계셨다. 언젠가는 무릎이 퉁퉁 부어 구부릴 수 없다 했고, 내가 아주 어릴 적 들어온 단어가 '퇴행성 디스크'였을 정도로 엄마는 오래전부터 아팠다. 엄마는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날 자궁 내 혹이 발견되어서 적출 수술을 받았다. 병원이 집에서 멀고 학교와 학원으로 바쁘다는 이유로 일주일 넘는 입원기간 동안 단 한 번 병원에 가봤다. 엄마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몸 안에 모든 수분이 다 빠진 듯했다. 바짝 마른 입술로 소리도 잘 내지 못했다. 한없이 나약해진 엄마의 모습만 확인한 채 나는 집으로 향했다.
어릴 땐 엄마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엄마는 나처럼 쉽게 배고프지도 않고 졸리지도 않고 모든 걸 다 해낼 수 있는 어른이니 당연히 나이가 많을 거라 생각했다. 아파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 줄 알았다. 자궁 수술받았을 때 엄마는 고작 30대 후반이었다. 무릎과 허리는 그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앓기 시작했으니 아마도 그때는 3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때의 엄마만큼 자라 어릴 적 엄마를 돌아보면 엄마는 아파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아니라 아프기에 너무 많이 젊었다.
어느 날 거실에서 가만히 앉아있는데 갑자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일어서니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출산이 임박해 분만실에 들어가던 때처럼 강한 통증이 왔다. 어린아이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소파에 앉았지만 내 발 옆에 있던 가방에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아파 아이들에게 가져다 달라 부탁하는 그 순간 어린 시절이 소환되었다. 바로 옆에 물건이 있지만 움직이지 못해서 날 부르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외침에 엄마에게 가던 나. 그때 엄마도 이랬던 걸까.
내가 아프단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엄마가 아팠던 순간이 떠올랐다 한다. 가만히 앉아서 예배드리는 도중에 시작된 허리 통증이 허리 디스크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분명 어릴 때도 그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는 한데 가만히 앉아 있다가 왜 아픈 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의 나이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 시절 나는 엄마 허리 고통의 크기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가정을 이루고 내 아이들이 그 시절 나만큼 크고 내가 엄마와 같은 병을 앓고 난 지금에서야, 엄마가 느꼈던 고통이 내게도 그대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