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이별 준비가 안됐는데
시험관 3차 유산 예정
6주 4일 차 초음파를 보러 병원을 갔다.
5주 4일 차 초음파에서 아기집을 확인하는데 처음으로 성공했지만 5주 0일 차 크기 정도로 너무 작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 사진을 본인이 차마 못주겠다고 하셨다. 그 순간엔 아마도 실감 나지 않은 나보다 의사 선생님이 더 속상하셨나 보다.
한 주 더 지켜보자 하여 6주 4일 차 초음파를 보았다.
분명 임테기도, 내 몸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역시나 아기집이 많이 커 있었다.
하지만 또 5주 6일쯤 돼 보인다고 하셨고, 아기집이 저번 주보다 많이 컸지만 난황도 아직 보이지 않고 성장이 더디다고 하시며 유산을 예고해주셨다.
아기집이 그래도 커준 바람에 1주일 더 지켜보기로 했고, 1주일 뒤에 심장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유산 판정을 지어야 한다고 하셨다.
힘든 발걸음과 이번엔 이렇구나 하며 덤덤한 마음에 수납을 하는데 바우처에 문제가 생겼다. 임신 확인 후 첫 바우처 사용 날 유산 예고를 받았고, 그 첫 바우처를 사용하는데도 공단의 전산 문제였는지 등록이 안되어 카드회사에 2번이나 연락해가며 30분 넘게 시간을 소비했다. 안 그래도 내 마음이 헛헛한데, 바우처에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처량하게 등록 처리를 기다리는 내 모습에서 조금씩 스트레스와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
그때 남편의 전화가 왔다. 괜찮냐는 말 대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말로 '그래요. 그리고 오늘 내가 일찍 퇴근할게요..'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했다. 난 내가 슬픈지 몰랐다. 슬프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지 않으려고 미리부터 안 좋은 경우도 생각해두는 연습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그 말 한마디가 큰 위로로 와닿았고, 내가 가장 기댈 수 있는 사람이며 함께 이 어려움을 같이 이겨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슬퍼할 수 있었다.
병원에 사람이 너무 많으니 바우처 처리와 수납 완료를 하고 집에 가기 위해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들이 나면서 부모님이 보고 싶어졌다. 말씀드리지 않은 임신 여정이 잘 안 되기도 했고, 휴직에 퇴사까지 한 나는 부모님을 뵈면 힘들 거 같아서 요 근래 연락도 자주 안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고 목이 메고 슬퍼졌다. 운전을 하면서 혼자 엉엉 울었다.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다 찼는지 엄마한테 말하고 기대고 싶다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우선은 이 상황을 다 알고 있고 힘이 되어주고 있던 언니한테 메시지 보내며 쏟아내고 펑펑 울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의 친한 난임 병원 전문의한테 조언을 구했는데, 99 퍼 유산확률 판정을 들었다. 오히려 더 끌지 말고 일찍 마무리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할 정도였다. 난 일주일만 더 지켜보자는 의사가 괜히 미웠는데, 이건 어쩌면 나만큼 더 혹시나 하는 가능성을 놓지 않으신 거였다. 물론 더욱 확실한 판정을 위한 증거가 필요해서 일수도 있겠지만..
갑자기 너무 점심을 부모님이랑 먹고 싶어서 경로를 틀었다.
오랜만에 뵈었지만 부모님이랑 요즘 이야기와 앞으로의 이야기 꽃을 피웠고, 화기애애 수다를 떨다 보니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점심을 먹는 도중에 2년 동안 말하지 않으셨던 것, 조심스럽게 아이를 갖고 싶진 않아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이럴 수 있음을 예상했기에 자연스럽게 하고 싶던 말들을 쏟아냈다.
임신을 3년째 준비 중에 있고, 임신이 잘 안 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만 35세 기준으로 나뉘는 난임 판정 기준을 설명해 드리고, 난임 기본 검사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 난임 과정에는 과배란부터 시험관까지 있음을 상세하게 단계별로 설명드렸다.
그렇게 나의 아무 흔적 없이 깔끔히 끝났던 인공수정과 신선배아 시험관 1차에 대한 이야기와 냉동배아 시험관 2차로 첫 착상과 동시에 화학적 유산을 겪었으며 현재는 냉동배아 시험관 3차 진행 중이고 아기집이 있는 상태지만 성장이 늦어 유산 예정인 상태라고 말씀드렸다. 충격적인 이야기일 텐데 부모님도 그동안 어느 정도 예상을 하셨는지 잘 들어주셨다.
임신을 하고 안정기에 접어들면 덤덤하게 지금까지 이런 과정을 지나왔다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 아기집이 성장하고 있는 게 느껴지는데 유산 예정이라는 판정을 받다 보니 더 이상 혼자 덤덤해하기엔 마음이 감당이 안돼서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혼자 참아내기엔 과한 힘듦이라고 말하면서 눈물이 왈칵할 뻔한 걸 겨우 참아냈다.
이 긴 이야기를 부모님께선 차분히 들어주셨고, 감정이 풍부한 우리 아빠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이 맺혔다 반복하는 게 내 눈에 보였다. 내 결혼식에서 보던 눈빛이었다. 이에 대해 과한 조언이나 잔소리 한 번 안 하시고 고생했다고 해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내가 감당하지 못한 마음이 추슬러지는 걸 느꼈다. 엄청난 위로를 느꼈다. 역시 가족이구나 그리고 역시 아이를 가져보면서 더욱 성장하게 되고 부모님의 사랑을 느낀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꼈다.
지금도 그 순간의 감정을 생각하면 목이 멘다.
아무 일 없듯이 훌훌 털고 식사 자리에서 나왔고
나누던 대화를 짧게 마무리하고 집에 가려고 차를 타러 갔다. 그런데 아빠가 같이 따라오셨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차 타는 나에게 '그래도 몸조심하고'라는 말을 남기셨다. '그래도'라는 단어에 정말 많은 메시지를 느꼈다. 그리고 따뜻하고 행복했다. '알겠어요!! 나 가유~~'하고 밝게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