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비마다 나에게 오리발이 있으면 좋겠다.
수영과 오리발
새벽에 비가 내리는 소리에 잠시 잠에서 깼다. 창밖으로 비 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렸다. 평소보다 비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려서 핸드폰으로 날씨를 확인해 봤다. 생각보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고, 오전 11시까지 이어질 거라고 했다. 잠결에 ‘오늘은 수영을 건너뛸까...’ 하고 생각하며 다시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었다. 평소처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지만,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수영장에 갈지 말지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결국 가기로 결심했다. 아침 수영은 나와의 약속인데, 그걸 깨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빗속을 가르며 수영장에 도착했다. 오늘 수영 강습에 참여한 인원은 평소의 절반 정도였다. 나처럼 비 때문에 망설인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오늘은 오리발을 끼고 수영하는 날이다. 오리발을 신을 때 발을 고무 입구에 욱여넣는 게 조금 불편하지만, 신으면 확실히 수영이 훨씬 쉬워진다.
오늘 강사님이 자유형 30바퀴를 돌라고 하셨다. 10바퀴씩 3번을 나눠서 하란다. 나는 초급반 다음인 중급반에 참여하고 있다. 중급반에서 10바퀴 단위로 수영하는 건 이례적인 것이다. 나는 아직 연속으로 수영하는 것이 어려운 단계이다. 보통은 4바퀴씩 나누어 수영하는데, 오늘은 10바퀴씩이라 조금 걱정이 됐다.
하지만 오리발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간 연습해 온 운동량이 있지 않은가. 오리발을 끼면 더 쉽게 나아갈 수 있기에 오리발을 믿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리발 덕분에 적은 힘으로도 쭉쭉 나아갔다.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한 바퀴, 두 바퀴를 돌 때마다,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려운 걸 극복해 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오늘 비가 와서 수영장에 갈지 말지 망설였지만, 그걸 극복하고 수영장에 와서 열심히 운동한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오늘도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켰다.
살다 보면 어려운 고비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오리발처럼 그 어려움을 쓱쓱 극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내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늘처럼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그 뿌듯함이 그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