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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Dec 28. 2023

욕심쟁이 엄마야!

딸과 전쟁은 나 혼자 하는 것

“너 취업 준비 안 해? 그렇게 해서 되겠어?”

참고 또 참았더니 꾹 눌러 둔 말뭉치가 용수철처럼 두 입술 사이로 튀어나왔다. 침대에 누운 딸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고서 곧바로 후회했다. 확 열어젖혔던 방문을 소리 나지 않게 얼른 닫았다.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려 했는데. 두 입술을 모아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꾹 눌렀다.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눈 코 입을 중심으로 모두 모았다.

‘어이구!’




독감으로 39도까지 오르내리던 딸아이는 열이 떨어지자, 휴양 차 본가에 내려왔다. 그저 건강을 회복하기만 간절히 기도하고 바랐다.

‘무엇이든 괜찮으니, 아프지만 않게 하소서’ 새벽에도 늦은 밤에도 기도했다. 열이 올라 아프다는 전화받던 날,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르려 했다. 누나에게 물수건을 올려주고 해열제를 사다 준 아들 녀석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회복되어 괜찮다는 말을 듣고는 그저 고개 숙이며 감사했다.  손을 꼭 모아 흔들고,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행위는 절로 나오는 것이구나.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아이가 들어왔을 때 꼭 안아주었다. 푹 쉬고 올라가라 힘주어 말했다. 아이는 정말로 잘 자고 잘 먹으면서 푹 쉬었다. 매일 정오가 되어서야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들고 온 작은 캐리어에는 편한 잠옷 두 벌이 얌전히 누워 있었다. 평상복이 될 거란다. 책장에서 두툼한 나니아 연대기합본을 오랜만에 만난 친구 보듯 반갑다고 꺼낸다. 잠옷을 입고 '벽돌책 깨기'를 시작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아크릴 물감을 꺼내고 캔버스를 주문했다. 냉장고를 열어 본격적으로 요리도 시작했다. 엄마보다 더 쉽고 멋지게 요리해 내는 이 녀석. 오픈샌드위치로 브런치를 차리고 스키야키로 저녁을 차려낸다. 맛있게 함께 먹으면서도 속에서는 무언가 자꾸 눌러야 할 말이 꿈틀거린다.

‘주문한 문제집을 풀던지, 뭔가 책상에 앉아 준비 좀 하시지.’

 

한낮에도 침대에 드러누워 열심히 폰을 보는 아이가 한심하고 미워졌다. 문을 열고 엄한 목소리로 현실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혹시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일정과 시험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굵은 잔소리를 들은 딸은 몸을 일으켜 식탁으로 나와 앉았다.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온 거예요. 쉬었다가 다시 공부 시작할 수 있어요. 이번 공고는 딱 저에게 맞는 거라 놓치면 안 되죠. 알고 있어요.”

사과하면서 붉어진 내 두 뺨을 딸아이는 보았을까?

 

딸이 집에 온 지 5일 차 되던 날, 여섯 살 아이에게 욕심을 부려 후회된다는 엄마와 잠시 소통하게 되었다. 3개 국어를 사용하는 말레이시아에 한달살이 하면서 영어가 입 밖으로 자연스럽게 안 나오는 아이가 답답했나 보다. 공감해 주고 위로하면서 더 욕심 많은 엄마, 나를 보았다. 욕심은 이제 그만 부릴 때도 되었는데 엄마의 욕심은 계속 커져만 간다. 사실 감사할 것들이 더 많고 다행인 일들이 많은 데도 그런다.

 



인턴십 마친 딸은 이래저래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지원서를 작성하고 필요한 문제집을 주문 배달도 했다. 계획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핸드폰을 조절하려 독서와 요리, 그림으로 잠시 휴식을 누리는 것도 감사다. 엄마 밥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욕심을 부리나. 건강한 몸으로 잘 자고 웃고 움직이는데 뭘 그리 더 요구하나. 살려만 달라 기도할 때는 언제고 다시 요청이 많은지. 엄마 머릿속으로 그리는 상상화가 제 맘대로다. 혼자서만 커다란 꿈 꾸는 욕심쟁이다.

 

‘조용히 웃어주며 내 할 일이나 잘하자. 이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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