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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세 줄 일기

초대 밥상

세줄일기 32

by Jina가다


아침부터 그녀가 건네준 반찬들을 데우고 볶고 끓였다. 김치통까지 안겨주며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배웅하던 그녀가 떠오른다.

한 숟가락 떠먹은 가자미식해. 달고 시고 짭조름한 오묘한 맛에 잠이 확 달아났다. 어제저녁, 유쾌한 두 시간을 떠올리니 마치 관광여행을 다녀온 듯하다.




'오 씨' 집성촌 한가운데에 2층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사는 60대 부부. 평소 안주인과 친분이 있어 맛집에서 대접하려 했으나 기어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럼, 평소 저녁식사하시듯 편하게 하세요. 제 신랑은 국 한 그릇에 밥만 올려도 잘 먹어요."

남편 식성을 묻는 그녀에게, 무엇이든 맛있게 잘 먹는 지극히 보통 인간임을 알렸다.


제일 큰 것으로 고른 딸기, 갑 티슈, 빨아 쓰는 휴지를 트렁크에서 꺼냈다. 잔디밭에 차를 세우고 보니 담벼락 밑에 봄을 기다리는 텃밭이 보인다. 봉긋한 흙이랑은 반듯하게 줄을 맞추고, 하얀 부직포 덮은 미니 하우스가 군데군데 서 있다.


12년째 함께 살고 있는 성격 좋은 강아지 '별이'가 신발장 앞에서 환영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예요. 손님 오면 저렇게 신나요."

주인장이 설명하니 마음이 놓였다. 예의상 손 내밀어 조심히 쓰다듬었다.


부엌 식탁 위에는 중간 크기 두툼한 사기그릇이 가득하다. 눈을 크게 뜨고 한정식 밥상 보듯 차려진 음식을 살핀다.

적당한 주황빛을 띠면서 시원해 보이는 김장 김치와 반달 모양으로 자른 무김치, 네 가지 조금씩 한데 담은 나물, 윤기 흐르는 고추장에 볶고 버무린 황태, 종류별 야채와 목이버섯 위로 길게 썰어 볶은 소고기가 올라간 잡채, 단짠 균형이 완벽한 양념 쪽파 이불을 덮은 속살 가득 꼬막.

추어탕을 뜨고 있는 그녀를 도와 국물을 옮겼다. 고사리와 숙주나물이 한 가닥씩 맑게 보인다.

"재피 있는데 드릴까요?"

"네, 좋아해요."

경상도에서 '산초'라 불리는 향신료. 이제는 익숙해져 오히려 그 풍미를 즐길 줄 안다.


그녀가 지은 밥은 보기에도 예뻐 한 숟가락 가득 입에 넣었다. 땅콩과 찰옥수수가 씹히는 쫄깃함에 열 번 넘게 씹어 삼켰다.

"혹시 밥이 불편하지는 않나요?" 그녀의 남편이 물었다.

"이이는 잡곡밥 좋아해요. 밥도 맛있어요. 밥이 정말 맛있는데요." 내가 강조해 대답했다.

"나는 밥도 맛있게 해. 호호호" 그녀는 왼손을 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식당을 하셔도 되겠어요. 하나도 빠짐없이 음식이 맛있어요." 남편이 덧붙였다. 그의 어투에 빈말이 없었다.


5년간 소문난 반찬 가게를 했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국산 재료만 고집하며 정성 다해 음식을 하니 코로나 시기에도 꾸준히 주문을 받아 운영했단다. 너무 잘 되었기에 건강 문제로 가게를 접었을 때 아쉬웠다고 그녀 남편이 말을 이었다.

"당시 추어탕 매출만 하루 50만 원 넘었어요."

뜨거운 대추차를 머그잔에 따라 내오며 그녀가 말했다. 돌돌 말아 썰어 올린 대추가 동동 떠 있다. 쫄깃한 대추를 씹으며 뜨거운 차를 홀짝였다. 걸쭉하고 무거운 단맛이 반갑다. 몇 시간 정성 들여 끓였을 이 건강차를 한 주전자 담아, 2주간 강연 떠난 목사님께 보내드렸다고 한다.

이제는 손주를 가끔 봐주고, 음식을 나누고, 아픈 이들 챙기며 봉사하는 삶을 사는 그녀다.




음식으로 사람을 섬긴다는 게 얼마나 큰 재능인가. 살아온 이야기를 끌어내고, 맛으로 즐거움을 주는 능력이다. 즐겁게 요리하는 손과 마음이 경이로울 뿐이다.


집으로 초대하고 음식을 대접하는 일. 갈수록 번거롭고 힘든 일이라 여기는 요즘의 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초대 밥상이란, 그것이 작든 크든 사람을 알고 얻는 귀한 선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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