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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뷰 Jul 24. 2021

올림픽공원의 고목에서 로뎀나무를 생각하다

무더위와 휴식

며칠 전 오후 늦게 올림픽 공원을 산책하였다. 7월 중순이 되면서 햇살이 강해지고 습도가 높아져 한낮에 다니기는 쉽지 않다. 송파 둘레길 중 성내천 길을 따라 올라가 올림픽 공원 동 1문을 지나쳐 도로변에 조성된 산책길을 걸어가니 내친김에 한강 고수부지까지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더워 시원한 공원에 가고 싶었다. 북 2문에서 올림픽공원 내로 들어가 몽촌토성 능선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멈추었다. 평소 몽촌토성 능선길을 자주 타고 올라갔지만 날씨도 덥고 해서 오르지 않고 부근 숲 속에서 잠시 쉬었다.


큰 나무 그늘 밑에서 생수를 마시고 쉬고 있는데 맞은편 거목의 그늘에서 정겹게 이야기하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보였다. 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라 공원에서는 생수 외 음료수와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코로나가 빨리 끝나 도시락이나 간식을 준비해와 이곳에서 마음 맞는 사람끼리 먹고 마시고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무릉도원에서의 식도락이 따로 없는 것이 아닐까. 푸른 잔디 위 거목 아래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늘에서 말이다.


사진: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능선 위 전경


오른편에서는 두 명의 여인이 벤치에 기대어 누워 독서를 하고 있었다. 신선한 감흥을 주었다. 요즘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나 뉴스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많으나 책을 읽는 이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 숲 속에서 독서애호가를 만나다니 이것도 행운인가. 여름 휴가철에 명사들이 많이 읽는 추천도서를 휴양지에 가서 다 읽고 나오는 이들도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책 읽는 즐거움이 휴가의 묘미중 하나일까. 그들에게는 독서도 휴식인 셈이다. 나무 밑 독서는 최고의 쉼이 될 수도 있다.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시원한 나무 밑에 쉬기를 좋아한다. 여름 외 다른 계절에도 등산하다가 지치면 나무 밑에서 쉬는 이들이 많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편안한 나무 밑을 찾는 것이다. 삶의 무거운 무게로 인해 육신이 괴롭고 마음이 답답해 찾는 나무 밑도 있다. 구약성경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찾은 로뎀 나무가 생각난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이기고 아합 왕의 왕비 이세벨의 미움을 받아 광야로 피신하는 몸이 되었다. 이세벨이 자기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에서 그는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 쉬면서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간구하였다.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이긴 기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목숨이 위협받고 쫓기는 신세가 되자 너무나 고통스러워 죽고 싶은 마음까지 느낀 것이다. 


사진: 로뎀 나무 


엘리아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 답지 못하다며 꾸짖거나 반성하게 하지 않으셨다. 대신 천사를 보내 물과 음식을 주어 먹고 마시며 쉬게 하셨다. 몸과 마음은 일심동체라고 한다. 몸이 회복되니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되고 엘리야는 다시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  엘리야는 엄청난 영적 승리 후 깊은 영적 침체에 빠졌다. 큰 성취를 이룬 것  같았지만 어느새 거센 풍파가 몰려올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낙담하거나 심하면 우울증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 이때 혼자 끙끙 앓고 참으며 침묵하고 있는 것이 좋을까. 엘리아처럼 속마음을 토로할 곳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곳이 바로 로뎀 나무 아래다. 나의 로뎀나무 아래는 어디에 있는가. 그곳은 힘들고 어려울 때 부르짖을 수 있는 곳이다. 어느 목사님은 수개월간 삼각산 기도원에 올라가 나무 몸통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여 응답받았다고 한다. 간구하고 응답받아 심령이 회복되는 은혜의 장소가 로뎀나무 아래다.


이스라엘에 가서 실제 로뎀 나무를 보면 가는 가지가 무성하고 잎사귀가 거의 없어 그늘이 엉성하다고 한다. 그래도 광야와 사막 같은 곳에서 그 정도의 그늘을 제공하는 로뎀 나무는 고맙고 반갑기만 할 것이다. 광야와 사막의 나라 이스라엘 비하면 우리나라의 자연 환경은 월등히 좋다. 1000만 시민이 사는 서울 근교에 숲이 우거진 산들이 있고 올림픽공원을 비롯한 좋은 공원들도 많다. 공원이 공원답고 산이 산 다우려면 나무가 많아야 한다. 나무가 많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대화와 회복의 장소로서 로뎀나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무들이 많은 것이 바람직하다. 



사진: 올림픽공원 내 나무 아래 쉼터 


그런데 몇 달 전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무 30억 그루를 심어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산림청이 멀쩡한 30년 이상의 고목을 베어내고 어린 나무를 심겠다고 하였다. 고목은 탄소 흡수 및 산소방출 능력이 떨어져 어린 나무들을 많이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나 이 이론에 대한 반론이 적지 않다. 산림청이 탄소중립 주무 부서인가. 주무부서는 환경부와 산업자원부가 아닌가. 탄소중립 못지않게 휴식과 심리적 평안함을 주는 고목의 공익적 가치도 소중하다. 


몇 년 전 대마도에 가서 수백 년 된 고목들이 울창한 숲을 보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고목들을 우리도 많이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희망과 기대를 다른 부서도 아니고 산림청이 흔들고 있다. 탈원전 태양광 풍력 발전한다고 전국 곳곳에서 산림을 훼손하고 있는데 나무를 잘 관리해야 할 산림청 마저 고목을 베어낸다고 나서니 황당하기만 하다.


올림픽공원의 나무들은 대부분 30년이 넘었다.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쉼터를 주는 거목들은 33년 전에 열린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심겨진 것이다. 설마 산림청이 나무들이야 베지 않겠지만 정도 연륜의 나무들을 베어내겠다는 발상 자체가 재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시민의 쉼터로서의 공익적 가치를 생각해 30년 넘은 나무들을 관리하면서 어린나무들을 많이 심으면 아닌가. 우리 주위에 로뎀나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고목들이 엉뚱한 이유로 베어지고 사라지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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