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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뷰 Oct 25. 2021

오징어 게임 인기의 한국적 · 세계적 이유와 아쉬움  

기훈(이정재 분)의 시즌2 미션 

오징어 게임을 이틀 만에 다 보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 지금까지 9편 이상의 에피소드물을 이틀 만에 다 본 경우는 처음이다. 틈틈이 보는 경우가 많아 대개 일주일 정도 걸리는 프로가 많았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은 달랐다. 하루 만에 다 보았다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만큼 흡인력이 강한 얘기와 장면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개봉 이후 4주간 전 세계 약 1억 4200만 가구가 시청하여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미국을 포함한 94개국에서 1위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지난달 23일부터 10월 23일까지 30일째 전 세계 넷플릭스 TV 프로그램들 중 1위 자리를 유지하며 장기 흥행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오징어 게임에 대한 전 세계 미디어의 찬사와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456억 원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참가자들이 목숨을 걸고 벌이는 생존 게임을 그린 드라마에 사람들은 왜 열광하는 것일까. 외신에서는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 열풍에 대해 다양한 이유를 들고 있다. 먼저 1994년 이래 한국 정부의 한류문화 지원정책이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한다. 한국적인 소재로 세계인들을 사로잡는 보편적인 주제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도 한다. 여기에다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 긴박감이 넘치는 스토리텔링과 친숙한 어린이들의 게임을 이용한 것도 대박의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모두 공감이 가는 분석인 것 같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의 문화와 정서 및 제도와 관련된 이유와 세계적인 이유들을 생각해보았다.


오징어게임의 주연 배우 기훈(이정재 분)이 '달고나'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 영상: KBS뉴스 출처:넷플릭스


먼저, 한국인의 ‘빨리빨리’ 성향과 추억의 놀이 문화가 세계인에게 통하였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생이 좋다.”는 속담처럼 한국인은 현세(現世)에 가치를 두는 성향이 강하다. 가난해도 당대에 팔자를 고치려는 이들이 많다. ‘빨리빨리’가 한국인을 상징하는 성향이 된 이유 중 하나다. ‘빨리빨리’는 빚 해결에도 적용된다. 오징어 게임은 이것을 이판사판의 싸움터로 극화시킨다. 최후의 1인만 456억 원을 탈 수 있고 탈락자는 비극적 운명에 처해지도록 한 것이다. ‘빨리빨리’는 이야기의 전개를 단순화시키고 박진감을 높인다. 게임마다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이니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어릴 쩍 추억의 게임이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니 더욱 그렇다.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구슬치기' 등 한국의 놀이가 외국인에게 신기하고 보이고 하고 싶게 만든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드라마 속의 한국 게임은 세계적 따라 하기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류 드라마의 세계적 인기의 비결을 또다시 확인해주었다.


둘째, 준비된 창작자의 도전정신과 드라마 방영 시기의 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빚 갚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잔인한 게임을 하는 것은 황동혁 감독의 말처럼 “예전에는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작가이자 감독인 그는 10여 년 전에 오징어 게임의 대본을 작성하였으나 받아주는 제작사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비현실적 이야기여서 흥행을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황 감독은 포기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도전하였다.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이라는 행운이 찾아왔다. 마침내 넷플릭스가 드라마의 판권을 사고 거액의 제작비를 대 오징어 게임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넷플릭스가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은 황 감독이 말한 것처럼 10여 년 사이에 오징어 게임이 ‘현실 어딘가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6년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가상화폐 열풍, 빅 테크 기업의 등장 등을 보며 오징어 게임이 세계로 나갈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독특한 성격과 기질의 미국 대통령 등장과 경제위기로 인한 개인파산 증가, 가상화폐와 주식 열풍이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오징어 게임이 남의 일이 같지 않은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때문일 것이다.


오징어게임의 첫 게임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출연하여 강한 인상을 남긴 술래 인형 영희 모습. 영상: KBS뉴스  출처:넷플릭스


셋째, 한국의 따뜻한 정(情)의 문화와 가족애 및 희생정신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수라판 생존게임이지만 잔인하고 살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돈에 목숨을 거는 물질만능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훈훈한 정과 따뜻한 인간애도 있다. 숫자를 줄이기 위해 밤에 서로 죽이는 야만성과 착한 외국인 근로자를 속이고 자신은 사는 상우의 거짓과 배신과는 달리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영은 탈북자인 새벽에게 구슬치기에서 양보한다. 할아버지 일남은 구슬치기에서 기훈에게 “우리는 깐부”라며 속아주면서 그를 살린다. 새벽은 죽으면서 기훈에게 어린이집에 있는 자신의 동생을 부탁한다. 기훈은 새벽의 동생을 상우의 어머니에게 부탁하면서 거액의 현찰이 든 가방을 남긴다. 이들 장면은 殺身成仁 (살신성인)하고 朋友有信 (붕우유신)하는 한국적 위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기독교인에게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한 성경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국적과 계층, 종교를 불문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주인공들의 죽음에는 친구와 자신의 가족이 잘되게 하려는 희생정신이 깔려있다. 놀이할 때 짝을 구하지 못한 한미녀를 극적으로 살려준 훈훈한 '깍두기' 문화도 한국만의 정서적 산물이다. 소외층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배려와 동행은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는 시장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미덕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작금의 코로나 위기를 거치면서 세계인은 이것을 실감하고 있다. 가족애와 희생정신 및 깍두기 문화가 잔인함과 물질만능과 서구적 개인주의와 비교되면서 전세계 시청자의 심금을 울리는 힘을 발휘하였다. 


넷째, 한국적이고 세계적인 소재가 뒤섞여 조화를 이루며 전통적인 인기 스토리텔링 방식인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비빔밥처럼 엮어낸 것이 세계적 흥행의 비결로 보인다. 비빔밥은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한식 메뉴 중 하나다. 밥과 다양한 반찬을 섞지만 조화로움과 함께 희한하게 맛이 더 좋아지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은 비빔밥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재와 장치에서 한국인과 외국인의 취향을 골고루 만족시키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놀이의 내용은 한국인의 취향에 맞는 것으로 어릴 쩍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것들이다. 하는 방법이 단순해 외국인들도 쉽게 이해하고 따라 할 수 있다. 가면을 쓰는 것은 외국인들에게 익숙한 것인데 세모, 네모, 동그라미의 기하학 문양은 한글의 자모를 연상시킴으로써 한국적인 것도 살렸다. 화려한 가면을 쓰고 게임을 구경하는 VIP 외국인들의 등장은 드라마의 긴장과 흥미를 더 높인다. 우리의 전통과 문화만 고수하지 않고 다른 문화를 수용하고 잘 녹여내는 것이 비빔밥 정신이다.


한국인들의 생존게임에 왜 외국인들이 구경꾼으로 등장한 것일까. 그것은 경제의 글로벌화와 외국 자본가의 득세 및 일부 악덕 자본가의 부도덕성을 상징한다. 가난한 서민들의 고통과 살기위한 몸부림을 처절한 데스 게임으로 만들고 구경거리로 삼은 천민자본주의적 향락은 대중에게 의분을 느끼고 벌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악당과 보안관이 싸우고 보안관이 이기는 것은 서부극은 물론 모든 범죄수사 및 전쟁 드라마의 흥행몰이 비결이기도 하다. 천민자본주에 저항하는 기훈과 프론트맨 형에게서 총상을 입고 절벽에서 떨어진 형사의 활약상이 시즌2에서 펼쳐질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승자와 패자,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시장참여자의 관계가 갈등이냐 상생이냐는 세계적· 시대적 관심사이기도 하다. 현실적이고 내 삶과 관련된 드라마는 시청자의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   


오징어게임의 우주인 모습을 한 진행요원 모습. 영상: KBS뉴스


다섯째. IT강국의 드라마답게 최첨단 디지털 트렌드와 감각적이고 환상적인 색채와 디자인을 잘 반영하였다. 게임을 운영하는 기업의 게임 진행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며 진행과정과 게임의 결과도 디지털 화면으로 제공된다. 붉은 옷에 검은 가면을 쓰고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은 외계인처럼 보여 우주 시대를 연상케 호기심을 자극한다. 데스 게임을 하는 장소와 이동하는 곳의 계단, 벽, 바닥의 색채도 초록색, 분홍색, 노란색으로 동화 속 놀이 공원에 온듯하다. 살벌한 곳이 환상적인 색채와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눈길을 계속 사로잡는 흥미로운 곳이 되게 하였다. 진행요원의 절도있고 정감있는 방송 음성과 클래식 유명곡을 사용한 효과음향도 극적 분위기를 잘 살렸다. 오징어 게임은 한국적이고 세계적이며 인공지능 시대의 흐름에 맞는 첨단적인 소재와 예술적 디자인과 색채를 적절히 배분하고 적용하여 세계인이 공감하는 맛있는 비빔밥 드라마로 승화되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의 열정과 신명을 펼칠 자유민주주의와 수출주도형 성장 경험이 작동하고 있고  전 세계적인 콘텐츠 유통망이 구축된 것이 주효했다. 한국의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 성공을 거두자 중국에서는 “왜 우리는 못 만드는가”라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어 다양한 유형의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으나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로 폭력성이 강하면 금지되는 등 표현의 자유가 제약받고 있어 오징어 게임과 같은 대작이 나오기 어려운 실정이다. 1994년 이후 하국 정부가 한류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고 하지만 드라마 제작에 관여하거나 간섭하지는 않는다. 드라마 작가와 감독, 배우 등 제작진이 열심히 실력을 발휘하여 인정받으면 된다. 그래서 ‘기생충’(오스카 작품상, 감독상), ‘미나리’(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이어 ‘오징어 게임(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작품)’이 나온 것이다. 오징어게임의 주역인 배우 이정재, 이병헌, 박해수, 위하준, 정호연 등은 글로벌 스타가 되었다. 


한국은 콘텐츠의 내수시장 규모가 작아 처음부터 해외시장 진출을 목표하여 제작하는 것도 한류 드라마가 강한 이유 중 하나다. 해외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 드라마와 영화가 큰 규모의 내수시장에 안주하다가 한국에 밀린 것과 비교된다. 제조업의 수출주도형 전략의 성공이 한류 콘텐츠에도 이어진 것이다.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글로벌 OTT의 한국 진출은 한류 콘텐츠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황 감독은 막대한 제작 예산을 투입하고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넷플릭스의 제작 환경을 칭찬했다. 넷플릭스 등은 국내 창작자의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시청되고 팔릴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디즈니가 11월부터 국내에서 콘텐츠 제작과 공급을 시작하면 한국 창작자의 입지는 더 강화될 것이다. 그로 인해 한국 창작자와 OTT 간의 이익배분 구조도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오징어게임에서 참가자들이 다음 게임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영상: KBS뉴스  출처: 넷플릭스


한류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 성공을 거둔 것은 기뻐할 일이지만 일부 아쉬움은 있다. 먼저 게임을 단순화하고 극적효과를 높이기 위해 폭력적인 요소가 많았겠지만 인명 경시가 지나치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아야 하고 국가 이미지나 전통 양식과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불리며 서로 양보하고 싸우지 않는 미풍양속을 가진 나라에서 전쟁이 아닌 소재로 만든 드라마가 국내외 학부모들이 놀라고 경계할 정도로 잔임함을 드러낸 것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패배자가 처할 운명을 덜 극단적이면서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창의적 방식은 없을까. 여기에다 기독교 폄하와 왜곡이 지나친 점도 문제다. 드라마 제작에서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하겠지만 특정 종교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덧입히는 것은 적절치않은 대목이다. 이런 아쉬운 점들이 충분히 고려되고 개선이 되어 오징어 게임 시즌2가 더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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