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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 Nov 28. 2023

프렌치토스트

'왜 나만...'


정아는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결혼하기 전 회사에서 팀장으로 승승장구하던 정아. 결혼과 함께 찾아온 소중한 생명에 정아는 모든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육아 휴직을 내고 복직하라는 회사의 말을 끝내 거절했다. 아이가 말문이 틀 때까지는 함께 있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지옥이 시작될 거라는 건 정아도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처음이라 그렇겠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매일 시간을 가리지 않고 싸워야 하는 육아 전쟁. 싸운다는 표현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정아는 정아 스스로와 늘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다스려야지. 화내지 말아야지. 우울해하지 말아야지.

하루에 백번을 다짐하지만 정아에게는 벅찬 하루하루였다. 퇴근한 남편이 도와주긴 하지만 그것도 잠깐. 다음 날 일을 가야 하는 사람을 밤새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을 복직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그것 또한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정아의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였다. 정아는 첫 돌이 지난 후부터 여러 사람의 손에 맡겨졌고 애정 형성이 되지 않아 늘 부모의 사랑을 갈구했다. 다정하고 좋은 부모님이셨지만 어릴 때 채우지 못한 사랑은 성인이 되어서도 채워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 놓고 왜 불만을 가지냐라고도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는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

2교시가 지난 후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엄마는 일찌감치 먼저 출근을 했고 정아는 잠시 집에 와서 돌봐주는 이모님의 손에 등교를 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쏟아지는 비에 좋아하기도 하고 혹시나 엄마가 오지 않을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아는 이미 엄마가 오지 않을 걸 알았기에 집에 가기 전에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도 있었지만 결국 그날 비를 맞고 집으로 간 건 정아와 다른 남자아이 한 명뿐이었다. 아빠가, 혹은 엄마가 여의치 않으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우산을 들고 학교 건물 현관에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까치발을 들고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역시나. 정아는 실내화 가방을 머리에 올리고 앞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걸어갔다.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이 우산이라도 쥐어주려고 '얘' 하고 불렀지만 정아는 멈추지 않았다. 다른 엄마들의 호의를 받으면 그게 더 마음이 아플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을 겪었던 정아였기에 내 아이는 내 손으로 케어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못해도 말을 틀 때까지, 아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이라도 아이 옆에 있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었는가.'


정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화내거나 짜증을 내고 나면 어김없이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다는데 왜 자신만 유독 우울해지고 마음이 가라앉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1년. 점점 더 우울함에 빠진 정아는 이제는 아이의 모습이 이쁘지 않았다. 먹는 것도, 청소도, 아이를 케어하는 것도 모두 귀찮아졌다. 잠만 자고 싶었다. 남편은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자신의 생활을 찾으라고 했지만 그 또한 싫었다.


"싫어. 다 싫어."

"그럼 언제까지 이럴 건데? 차라리 복직을 하던가. 내가 육아 휴직 내면 돼."

"그것도 싫어. 이제 경단녀라고 손가락질할 텐데."

"이럴 거였으면 애초에 아이 낳고 복직한다고 하지 그랬어. 결국 네가 고집부린 거잖아."

"남편이라는 게 말하는 거 하고는. 너는 위로는 못하니?"

"어떻게 위로를 해줄까? 얼마나 더 해줘야 할까? 나도 할 만큼 했어."


남편은 결국 아이를 안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남편은 정아의 산후 우울증을 모르는 척하지 않았었다. 어떻게든 함께 해주려고 했고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도 찾아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싫어. 이제는 도와주고 싶지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정아에게 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의 상처만을 주고 말았다.

컴컴한 거실, 쾅 닫힌 안방 문. 정아는 텅 빈 거실에서 오롯이 혼자라는 생각에 끔찍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이 시간을 바랐던 거 아니야?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거 아니야? 왜 외로워해? 왜 힘들어해? 정아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아이러니했다. 모든 게 귀찮고 하기 싫었는데 막상 또 혼자가 되니 두려웠다.

남편의 말대로 복직을 하든, 혼자 여행이라도 가든, 친구들을 만나든 하면 될 텐데 스스로를 가둬버리고 내미는 손을 뿌리쳤으니 남편의 행동이 이해되기도 했다.

정아는 그대로 굳었다. 다 망가져버렸구나. 정아는 뻐근한 다리를 움직여 냉장고로 향했다. 먹다 남은 소주 반 병을 큰 컵에 담고 맥주 한 캔을 같이 부었다. 조금 남은 맥주를 마시고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때 아이를 재운 남편은 방문을 열고 나왔다. 또다시 한바탕 하겠구나 생각했는데 남편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들어본 음성이었다. 아니 아마도 오랜만에 정아가 자각했을지도.


"왜 안주도 없이 그러고 먹어. 기다려."


남편은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서 달걀을 꺼냈다. 큰 대접에 달걀 세 개를 풀고 우유를 조금 넣는다. 설탕과 함께 저은 후 식빵을 차례대로 계란물에 적신다.

치익 소리와 함께 집 안에 빵 굽는 냄새가 가득해졌다. 이 또한 오랜만에 맡는 맛있는 냄새인 것 같았다. 얼음장같이 짱짱하게 얼어 있던 마음이 남편의 다정한 목소리에 풀린 건지, 아니면 그전 홀로 남은 거실에서의 외로움이 두려웠던 건지 그동안 들리지 않던 다정함과 느끼지 못했던 허기에 괜스레 눈가가 붉어졌다.

잠시 후 남편은 식탁으로 오라며 정아를 불렀다. 정아는 못 이기는 척 다가가 식탁에 앉았다. 먹기 좋게 잘린 프렌치토스트에 군침이 돌았다.


"당신 이거 좋아했잖아. 술이랑 같이 먹어."


정아에게 젓가락을 건네고는 맥주 한 캔을 꺼내 정아 앞에 앉았다. 정아는 술을 잠시 잊고 허겁지겁 토스트를 먹었다.


"천천히 먹어. 아까는 미안해. 당신 힘든 거 알아."


정아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남편과 눈을 마주쳤다.


"아니야. 여보. 나 괜찮아질 수 있을까?"


처음으로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 정아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까 봐 문득 겁이 났다.


"그럼. 하나씩 차근차근해보자. 당신은 은우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싫다고 했지?"

"응. 힘들긴 해. 그런데 말문을 열 때까지만. 그래야 어떤 일이 있어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여보. 그럼 당신 글을 써보는 건 어때? 회사 다닐 때도 가끔 회사에서 발행하는 매거진에서도 글을 썼었고 당신 정도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니."


남편은 별안간 글을 써보라는 제안을 했다. 작가도 아닌데 무슨 글을 쓰라는 건지. 회사에서 발행하던 매거진은 회사일에 대한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짧게 두 어번 실린 게 전부였다.


"내가 무슨 글이야. 그리고 이 상황에 무슨 글을 써."


남편의 이야기는 이랬다. 자신의 회사 동료인 사람이 어느 날 브런치라는 사이트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자신이 그곳에 글을 발행 중이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고 있다고. 물론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도 많은 사람들의 글에서 위로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 회사 생활 하면서 힘들었던 것들을 쓴 사람이 있었대. 그런데 다 자기 이야기더란거지. 누군가의 글을 읽고 공감을 하게 되고 자신의 글을 읽고 누군가가 위로받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겠지만 당신처럼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거나 잘 나가는 회사 임원에서 결혼과 동시에 경단녀가 되어버린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도 있을 거 아니야. 그 안에서 공감하고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거지."


공감하고 위로를 주고받는 다라. 책 읽는 건 좋아했지만 결혼 후에 한 번도 책을 읽은 적이 없던 정아였다. 육아에 지쳐서도 맞지만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아무 주제도 없이 무슨 글을 써. 내가 그런 글재주나 있게?"

"그러니까 일단 읽어보라는 거지. 육아에 대해 쓰는 것도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이런 것들이 힘들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행복하다. 아주 단순하지만 엄마들이 겪는 공통점 같은 것들 말이야. 누구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당신의 마음 치유를 위해서."


정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런 마음으로 글을 썼다가는 자신의 우울함을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염시킬 것만 같았다. 아무 말 없이 생각에 빠져있는 정아를 보고는 남편은 방으로 들어가 태블릿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블로그부터 브런치까지 침을 튀겨가며 설명해 주었다. 정아와 남편은 두 시간을 쉬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점점 화색이 도는 정아의 얼굴을 보니 남편은 더 흥분하며 이야기를 했다.


"음 그럼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정아는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남편에게 과감 없이 쏟아냈다. 남편은 신나게 맞장구를 쳐주다가도 아니다 싶은 부분에서는 냉철하게 잘라냈다. 그런데 그런 말이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아의 의지를 더 북돋아 주었다.


"내일부터 하나씩 정리해 볼게. 은우 잠들 때 차근차근."

"잘 생각했어. 나도 많이 도와줄게."

"잘 할 수 있을거라는 장담은 못해. 내 마음이 다시 건강해질 거라는 장담도 못해. 하지만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 사랑하는 은우가 미워지고, 사랑하는 당신이 미워지는 그런 삶. 살고 싶지 않아."

"우리 가족이잖아. 이런 아픔도 같이 안고 서로 일으켜줘야지. 그치?"


정아는 남편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정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아 있는 토스트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상쾌한 기분으로 식탁을 정리했다.


"근데 자기야."


설거지를 하려던 정아는 남편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맛있었어?"

"응?"

"어떻게 한 조각도 먹어보란 소리를 안 하냐!"


풉 하고 정아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남편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돌아섰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구운 프렌치토스트를 남편은 한 입도 먹지 못했다.


"미안. 내일 내가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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