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의 반대는못된 것이아니다.
나는 착한 딸이었다.
내가 아무리 못되게 굴고 모진 말을 해도 아빠에게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p.167
"우리 딸 착하지"
"소피아는 착해"
어렸을 때는 착하다는 말은 칭찬이었다. 내가 무언갈 할 때마다 착하다는 말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착하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부모님 말 잘 듣고 하지 말라는 것 안 하면 듣던 그 말이 마냥 좋았다. 그 말이 발목을 잡기 시작한 것은 결혼하고 나서였다.
나는 착한 딸, 착한 아내, 착한 며느리로 살고 있었다. 어쩌다 내 생각을 말하려면 덜컥 눈물이 차올라서 그 모습이 창피해서 참고 또 참았다. 겨우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뿐인데도 울지 않으려 심호흡을 하고, 눈치를 살피고, 겨우 용기 내서 말을 꺼냈다. 나는 계속 착한 사람이어야 했다. 착한 사람이 순종적인 사람은 아닌데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눈치를 보는지 몰랐다. 착한 사람이 되지 않기로 결심을 하고 양가 부모님께 매주 한 번씩 드리던 안부 전화와 방문을 이주에 한번, 한 달에 한번 하기 시작했다. 이런 행동이 마음이 썩 편하진 않았지만 내 나름의 반항이자 회피였다. 남편에게는 울면서라도 마음에 있는 말은 담아두지 않기로 했다. 남편은 눈물이 무기냐고 했지만 동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 해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니 그저 내 말을 들어주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들어주고 토닥여주고 그것만 해달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오은영 선생님이 나와서 한 말이 떠올랐다. 남이 불편해하는 게 싫다는 것은 내 생각일 뿐이니 나의 감정을 감추지 말라고 하셨다. 상대가 불편한 것은 그 사람이 감당할 몫이라고. 내가 그 불편함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만약 내가 짜증을 내더라도 받아주고 안 받아주고는 상대가 판단할 일이지 내가 신경 쓰지 말라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나는 얼마나 내 감정을 표현하고 살았었나. 아이와 감정사전이라는 책을 보며 이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말들이 있었는데 나는 슬퍼, 기뻐, 화나, 짜증나 등 몇 개의 단어로만 내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었다.
미리 이런 감정 단어들을 알았다면 나는 좀 더 내 감정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
착하다는 말이 결코 좋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아이를 낳고 육아서를 읽으면서 였다.
아이에게 칭찬을 할 때 착하다고 하지 말 것.
아이가 칭찬받은 일을 한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선물 받은 레고를 혼자 힘으로 조립을 끝냈다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우리 ㅇㅇ이 혼자서 조립하고 참 착하다"라고 하겠지만 진짜 칭찬은 "우리 ㅇㅇ이 스스로 조립을 해냈구나,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낸걸 보니 정말 대단한걸."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후 나는 의식적으로라도 아이에게 착하다고 칭찬하지 않는다. 최대한 아이가 성취해낸 부분에 대해 칭찬해주고 실패를 하면 아이가 어느 부분에 속이 상했을지를 달래준다.
하지만 착한 딸로 살던 엄마는 아이들에게 다른 부분에서 착함을 강요하고 있었다. 고함쟁이 엄마로 변하면서 강압적인 말로 아이들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하고,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키우고 있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쩍 짜증도 늘고, 그 짜증의 시작과 끝에는 나의 영향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점점 내가 편하다는 이유로 버럭 거리고 있는 나를 보며 점점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아이들에게 내 감정을 쏟아내고 있던 나를 자책하고 있을 때, 신부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이미 잘하고 있다고, 자책하지 말라고,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속상해하지 말라고.
나에게 그 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아무 기준 없이 불안 속에서 아이 둘을 잘 키워보겠다고 아등바등 매달려있는 내 마음에 용기를 주는 말이 필요했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자존감만 더 낮아지고 있었다. 만약 옆에서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나는 덜 불안해하고 좀 더 일찍 나를 사랑했을까?
"우리 딸, 아빠가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착한 딸로 되돌아가야 할 것 같은 마법의 주문 같은 말, 요즘 들어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미안함과 짜증이 몰려와 다른 말로 화제를 바꾼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늘 예쁘고 착한 딸이라고 말해주던 아빠의 사랑 표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착한 것은 순종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니 착한 딸이 되려고 억지로 뭘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착한 딸이 아니라 부모님의 사랑 듬뿍 받고 자란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