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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Apr 04. 2022

아이들 용돈도 최저임금이 정해지면 좋겠다

애들 용돈 얼마씩 주세요?

4학년 첫째 아이가 묻는다.

"엄마 나도 다른 집 아이들처럼 한 달에 만원 받고 싶어. 그러면 안돼?"


우리 집 아이들은 주 1회 분리수거 배출일에 모아둔 재활용품을 내다 버리고 500원을 받는다.

그렇게 모은 2000원에서 2500원이 한 달 용돈이 된다.

이것은 아이가 스스로의 노동으로 벌은 돈이기에 부모의 관여를 받지 않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다.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사 먹든, 문구점 앞에서 뽑기를 하든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물론 돈을 모아 장난감을 사도 부모는 절대 관여하지 않는 아이의 돈이다.


간혹 어른들에게 과자 사 먹으라며 받는 돈은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바로 통장으로 저금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엄마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쓸 수 있는 돈이 생긴다는 기쁨에 신나 했는데

1년이 지나고, 아이들도 슬슬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면서 비교대상이 생기자 아이도 부러움 섞인 투정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 맘 때의 나도, 용돈 많이 받는 아이가 제일 부러웠으니까.

그리고 요즘 물가에 한 달 2000원으로 간식 사 먹는 것도 빠듯하다는 걸 안다.

학교 앞 컵볶이만 하더라도 1000원은 있어야 하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첫째는 용돈을 벌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물건값을 비교하는 눈이 생겼다.

그 전에는 무조건 잡히는 대로였다면, 가격을 비교해서 구매의사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편의점 삼각김밥을 먹기 위해, 포켓몬 카드 사는 것을 참을 것인지, 먹는 것을 택할 것인지 고민을 했다.

때로는 더 돈이 아까워 쓰지 못하고 모아둔 돈을 동생 빌려주는데 다 써버릴 때도 있다.

2살 어린 둘째는 플랙스를 즐긴다. 용돈 받는 날을 즐기는 스타일. 받으면 바로 마음속에 품었던 것을 사기 위해 과감하게 돈을 다 써버 린다. 그리고 기쁨에 젖어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처음 용돈을 주기로 결정했을 때가 첫째가 2학년 말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시기였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집콕 생활을 하던 터라 돈 쓸 일도 거의 없었지만, 어릴 적부터 제대로 된 용돈 교육을 시켜주기 위해 고민하던 찰나, 그때 구독해 서보던 어린이 경제신문에 용돈 관련 기획 기사가 시리즈로 왔었다.


처음부터 용돈의 개념과 범위를 올바르게 인식시켜야 올바른 금융교육으로 이어진다는 말에 혹했다.

그러려면 돈의 가치를 알아야 하는데, 돈은 노동으로 벌어야 하는 것이니 집안에서 아이들이 적절한 노동력을 사용해서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한 가지 주의사항은 당연히 해야 하는 집안일 (설거지, 빨래, 청소)은 돈 버는 항목에 넣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이 재활용품 분리수거 일에 버리기였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 부담도 적고, 미리 모아둔 것 한 가지씩 들어다 버리기만 하면 되니 아이들도 귀찮아하면서도 잘 따라주었다. 


그럼 용돈을 더 받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돈을 더 벌자고 했다. 둘째는 코로나 시국답게 아침마다 가족들 열 체크하기 첫째는 고혈압인 아빠의 혈압을 재고 기록하기가 추가되었다.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빠짐없이 해야 하는 것이 었으니 한 달에 1만 원씩 받기로 했다. 그렇게 아이들의 용돈은 1만 2000원이 되었다.


아이가 클수록 용돈의 액수도 커져야 하고, 커진 만큼 용돈에 포함되는 항목도 늘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용돈의 액수를 어떻게 정해야 할까? 

그 시기에 적정한 금액은 얼마일까? 하는 고민이 이어지다 보니 문득 아이들 용돈도 최저임금처럼 기관에서  일괄적으로 정해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이들끼리 비교하고  부모하고 용돈으로 싸우지도 않겠지라며... 만약 기준 금액이 생긴다면, 그 금액을 못주는 부모도 있을 것이고, 아이 기죽이기 싫다며 일부러 더 주는 부모도 생길 것이다. 어차피 비교는 하게 돼있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내가 결정하기 곤란한 것들 누가 대신 정리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 때문이다. 살다 보면 주변에 물어봐도 명확하게 답변을 듣기가 어려운 일들이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명확하게 답을 찾기 어려운 것들, 내가 직접 자료를 찾고, 실행으로 옮겨봐야 알게 되지만 그마저도 100프로 정답이 아니다. 심지어 결과도 내가 고스란히 책임을 져야 하는 것들이 생기면 정말 "누가 한 번에 정리해서 알려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특히 육아 분야가 그렇다. 아이마다 기질이 다르고 집안 환경이 다르니 정답이 없다. 임신 출산 육아 책에 임신과 출산까지는 상세하게 정리가 되어있는데 육아 챕터는 왜 얇았는지. 낳고 키워보니 그제야 이해가 앗다. 아기 엄마의 바이블이라는 '삐뽀삐보119'라는 책에도 결국에는 아이 아프면 소아과 의사에게 데려가라는 걸로 정리가 되니 말이다. 


따지고 보니 용돈을 고민하는 나의 이면에 '경제교육'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결국 교육. 언제쯤 나는 아이의 교육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욕심은 끝이 없고, 이상과 현실 속에서 아직도 나는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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